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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owa Sep 12. 2023

이별하는 방법

양쌤의 픽 11 <여행 가는 날> 서영/위즈덤하우스

 코비드 19로 시립도서관의 모든 수업이 전면 중단되었다가 실시간 온라인 수업으로 대체되었을 때였다. 어른들을 대상으로 한 그림책 수업이 온라인 수업으로 바뀌면서 달라진 점이 있었다. 아이들이 어려서 수업 참석이 어려웠던 젊은 엄마들이 많이 참여하게 되었다.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 가지 못한 아이들은 엄마와 함께 수업에 참여하기도 했다.


 오전 10시 화상 회의 창이 열렸다. 네모난 창 안에 열일곱 개쯤의 작은 네모난 창이 열렸다. 각자의 이름이 달린 창 안에는 마스크를 쓰지 않은 반가운 얼굴들이 있었다. 그렇게라도 서로 얼굴을 마주 보고 이야기를 나누며 일상을 계속할 수 있다는 것이 참 다행인 날들이었다.

 매주 다른 주제의 그림책을 소개하고 읽어주기도 했는데 그날은 아이들보다 어른들이 더 공감할 만한 그림책들을 준비했다. 그중 한 권이 가족들과 영원한 이별을 앞두고 유쾌하게 떠날 준비를 하는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그린 책 <여행 가는 날>이었다.


 처음엔 제목과 표지만 보고 할아버지가 혼자 꽃놀이를 떠나는 줄 알았다. 뽀얀 안개 같은 손님을 보고서 할아버지의 여행이 내가 생각한 그런 여행이 아니라는 걸 알았다.

 할아버지는 먼저 떠난 부모님과 아내와 친구를 만날 날을 설레어하며 준비한다. 혹시 아내가 알아보지 못할 까 젊은 시절의 사진도 챙기고 친구와 대결하려고 바둑책도 챙긴다. 콧털 가위, 탈모 방지 빗, 돋보기 안경과 은단까지 꼼꼼하게 여행 준비를 한다. 남겨질 가족들에 대한 배려도 잊지 않는다. 최선을 다해 살아간 뒤에 새로운 세상을 향해 떠나는 할아버지의 모습은 주저함이 없다.

 그림책은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무겁지 않다. 할아버지가 먼 길을 떠나는 모습은 뜻밖의 위로가 되었다. 슬퍼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는 것 같다. 떠나는 사람의 마음이 이러하다면 보내는 사람도 슬픔이 상처처럼 남지 않을 수 있을 것 같다.

   

 

 수강생들의 모습을 둘러보며 그림책을 읽다가 왼쪽 가장 구석에 있는 창에 시선이 머물렀다. 그녀는 햇빛을 등지고 앉았는지 실루엣만 진하게 보였는데 그림자 같은 실루엣이 살짝 들썩거리는 것 같았다.

 ‘웃고 있는 건가?’

 '그럴 수도 있지. 오랜만에 아내를 만난다고 얼굴에 팩을 하고 삶은 계란까지 챙기고 있으니.'

 그런데 그녀의 손이 자꾸 오르락내리락했다. 하얀 무언가를 쥐고.

 아! 그녀가 울고 있었다.

 그녀의 오디오는 꺼져 있었지만 흐느낌이 들리는 것만 같았다. 소리 없는 눈물이 더 슬플 때가 있는데 그때가 그랬다. 그녀는 17개의 창 속에 숨어있었다고 생각했을지 모르지만, 수업하면서도 시선이 자꾸만 그녀를 향했다. 궁금했지만 묻지 않았다. 묻는 것이 어려울 때가 있다. 그녀가 대답하기 힘든 질문을 하고 싶지도 않았지만, 어렵게 대답했을 때 내가 뻔한 위로밖에 할 수 없을 것 같아 묻지 않았다.

 분명 그녀는 그 순간 떠오른 이별이 있었을 테고 희석되지 않는 슬픔이 몰려와서 감당하기 어려웠는지 모른다. 그녀가 너무 안쓰러웠다. 아침부터 그녀를 울린 것만 같아 미안했다. 소리가 없는 화면 속에서 간간이 들썩거리던 그녀의 어깨를 토닥여주고 싶었다. 시간이 약이라는 걸 알지만 그녀가 슬픔에 덤덤해질 때까지 너무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으면 했다.

  그녀는 이후로 오랫동안 그림책 수업에 참석하고 있고 나에게 특별한 수강생이 되었다.     



 

 내가 떠나는 날은 어떤 날일까? 그림책 속의 할아버지처럼 연분홍 꽃이 흩날리는 날, 그런 날 나도 떠날 수 있으면 좋겠다. 꽃놀이하러 가듯 떠나면 좋겠다.

  ‘꽃이 떨어졌다. 떨어진 꽃잎이 바람에 날려가는 것 또한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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