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작년부턴가 간장게장을 먹고 나면 두드러기가 났다. 초밥에 간장게장 살을 토핑처럼 올려먹기도 하던 내가 게장 알레르기가 생길 줄이야. 갱년기. 다시 태어나는 게 갱년기라더니 하필 게장 알레르기가 있는 몸으로 태어나고 말았네. 너무나 많이 사랑한 죄~ 너무나 많이 그리워한 죄~게딱지에 밥을 비벼 먹지 않은 날은 괜찮은 걸 보니 내장에 알레르기가 생긴 것도 같다. 두드러기 때문에 고생하면서도달콤 짭짤 비릿한 간장게장을 포기하지 못하는 나를 보며 남편이 한소리 했다.
"세상에 먹을 게 얼마나 많은데 그렇게 꼭 간장게장을 먹어야겠냐!"
먹어야겠다. 좋아하니까, 먹고 싶으니까. 게딱지에 밥 안 비벼 먹으면 될 거 아니야!
알레르기약을 챙겨가긴 했지만 혹시나 두드러기 때문에 여행을 망칠까 봐 차마 게장을 먹을 수가 없었다. 두 번째 삶을 사는 나 때문에 친구도 게장 먹는 건 어렵게 됐다.
여수에 발 딛기 무섭게 홀린 듯 바다를 보았지만 배 고픈 건 참을 수 없었다. 여수에서의 첫 끼로 서대회무침을 먹을까 했지만, 돌아가는 기차 시간까지는 8시간도 채 남지 않았고 최소의 동선으로 움직여야 했다. 마침 가까운 곳에 괜찮은 김밥집이 있었다. 감태김밥이라니 줄을 서서라도 먹어봐야지. 뜨끈한 꽃게라면까지 먹고 나니 뚜벅이 여행자의 본분을 지켜 열심히 걸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서울랜드의 코끼리열차처럼 오동도로 들어가는 동백열차가 있었지만 걷기로 했다. 이렇게 하늘과 바다가 예쁜 날에는 걷는 게 맞다.육지와 연결된 800여 미터의 방파제를 따라 오동도에 들어갔다.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산책길 계단에 한 외국인이 앉아서 셀카를 찍고 있었다. 우리를 보더니 혼자 여행 왔는데 사진을 찍어줄 수 있냐고 물었다. 러시아나 북유럽 쪽 사람 같은데 어떻게 여기까지 혼자 왔을까, 무탈하게 여행을 즐기길 바라는 엄마 마음을 담아서 이쪽저쪽 손짓해 가며 열심히 찍어주었다.
3000여 그루의 울창한 동백숲을 걷다 보니 땀이 났다. 구름을 벗어난 햇살은나무의 몸을 흙 위에 새기고, 훈훈한 바람은겨울을지나온녹색잎을살랑이게했다. 봄을 부르고 있었다.
활짝 필 때를 기다리는 붉은 꽃, 그 그늘 아래 옹기종기 앉은 하트 모양 머위, 초록물 든 파란 바다, 숲을 누비는 산비둘기 가족, 손을 잡은 중년의 부부, 소나무가 지키는 하얀 등대, 연인을 맞이하는 시누대길.
작은 섬을 밟고 선 모든 것들이, 작은 섬을 찾아온 모든 것들이 이른 봄기운에 설레고 있었다. 2월의 여수는 그랬다. 힐링 로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