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북청로 로데 Jul 31. 2023

 LAOS, 잘 놀면 쉽니다

라오 여행의 기록 5



"밀크티  깊고 진한 맛"

 '사브낫바네아'에서 티소믈리에가 만들어준 밀크티


    여름 내내 주제는 '폭염'일 것 같다.

   



복기하다 [복끼하다]

다시 라오스 여행을 복기해 본다. 복기라고? 라오스 완전 정복이라도 하겠다는 작심 발언으로 들린다. 복기란, 알다시피 한 번 두고 난 바둑의 판국을 비평하기 위해 두었던  다시 처음부터 돌을 놓아보는 것을 뜻하는 말이다.

그렇다나는 지금 평은 접어두라오스 여행을 복기하는 중이다.


 라오스 방비엥 여행의 꽃이라 할 장소는 블루라곤 이었다. 하늘과 구름이 지상으로 온전히 내려와 호수에 담긴 풍경은 장관이었다. 여행객들은 여름장마철로 인해 뿌옇게 된 석회수물속으로 첨벙첨벙 다이빙을 했다. 물론, 액티비티를 즐겨보지 않던 나는 그 호수에  발만 담그는데 만족했다. 대신 버기카로 오프로드를 신이 나게 달리는 것으로 충분히 만족했다.

 <꽃보다 청춘>에서 소개된 라오스편의 영상이 대박을 터뜨렸다고 한다. 그 전언이 사실이라면, 최근 몇 년 전부터 각광받는 여행지로 부상한 라오스는 tvN에 명예 관광대사를 임명해 줘도 무방할 듯하다.

방비엥에 블루라곤
오프로드를 달리는 버기카

블루라곤 호수 위에 풍경은 자연만그려낼 수 있는 생생한 원초적 아름다움이었다.

한국라면 그곳의 인기 메뉴라고 해서 주문해서 먹었는데 안**면을 진하게 끓여낸 맛이었다. 곁들여 나온 김치도 한국의 김치맛 그대로였다.

편의시설이 왠만하면 다 구비되어 있어서 오지탐험이 불가능해 보인다. 세계화가 만들어낸 닮음꼴들이 세계 도처에 있다.



  


은빛묘 동상이 제대로 블링블링한 주말이다.

사브낫바네아 앞 은빛묘. 환한 오후 7시


애틋하다 [애트타다]


몇 년 전 드라마 <눈이 부시게>에서 맘에 들었던 장면 하나. 자(한지민)와 준하(남주혁)실내포차 같은 데 앉아서 술을 마시는 이었다.


혜자: 또 애가 좀 후져...

준하: ......

혜자: 내가 좀 애틋하거든.

           나란 애가 좀 잘됐으면 좋겠어


드라마를 보던 당시 나는 술에 취해 혀가 반쯤은 말린 채 취중진담을 하는 한지민(혜자)의 대사가 마음에 와닿았다. 나도 내가 좀 후지다는 걸 알고, 내가 좀 애틋해서 나란 애가 좀 잘됐으면 좋겠는 거였지.


나는 혜자의 저 말이 솔직하게 자기 자신을 표현하는 말로 들렸다. 그래서 잠깐 나를 돌아보니,  외향은 너무 강인하고 단호하게 생겨서 약할 수가 없는 캐릭터이다. 강하다는 인상을 심어주는 건 나의 직설화법 때문이 아닌가 싶다. 가끔 나한테 자신에 관해서 솔직하게 얘기해 달라는 사람이 있다. 그 솔직함의  레벨이 사람마다 다를 테고, 화자의 말하는 습관마다 다를 것이다.

근데 좀 솔직하게 얘기한다는 것이 듣는 입장에서는 모질게 들리기도 한 것 같다. 그러니 자신에 대해 투명하게 타자의 시선으로 청취하겠다는 사람들이라고 직설적인 말이 아프지 않을 리 만무하다. 그런 상대의 말을 잘 해석해서 말을 골라서 해야 한다는 배우는데도 상당한 세월이 필요했다. 니 대화하기는 현재 진행 중이다. 계속 사람의 마음을 살피지 않으면 스크레치를 내기 십상인 게 말인 것 같다.



그런데 갑자기 왜 '애틋하다'는 말을 끄집어냈냐면, 라오스에서 만난 어린 친구들이 떠올라서이다.

라오스에서 체류하는 5박 6일 가운데 친구와 함께 3일간 마사지를 받으러 갔었다. 한국인 주인이 운영하는 마사지숍이 숙소에서 5분 거리에 있었다. 종업원들 대부분이 이십 대 초반의 연령층일 것으로 추측한다. 한국에서는 마사지 비용이 비싸서 오히려 정형외과 도스치료를 받는 편이 더 나을 것이다. 그런데 다행히 라오스 마사지 비용은 두 시간에 150,000낍(한화 13,000원 정도) 정도였다. 그러니 이번 기회에 마사지로 목이며 어깨 뭉친 데를 좀 풀고 가자 싶었다.

생전 처음 받아보는 VIP 환대에 반응하는 팁 문화도 배웠다. 보통 시간당 한 끼 식사 정도의 팁을 준다고 해서 시간당 20,000낍 정도를 건네줬다.

마사지숍을 두 번째 방문해서 마사지를 받으면서, 그들 또래의 여조카가 떠올랐다. '조카 나이 정도의 아가씨들이구나.' '그래도 이 사람들은 직장이 있으니 다행이다.' 여러 말들이 떠올랐다. 그들이 앞으로 잘 됐으면 좋겠다고 기원하게 되었다.


혜자가 스스로 후지다고 말해놓고도, 내가 잘 됐으면 좋겠다는 진심을 토로했던 그 애틋함. 나는 라오스의 젊은 친구들이 애틋했다.








[카페 밖은 더워. 그곳에 은빛묘 동상]


 7월의 태양 아래 시들시들 나른해지는 거리에 상인들나타나면활기가 생기기 시작했다. 그들은 이 길거리에 상수인 존재들이다.

     은빛묘 동상이 햇볕 아래서 반짝인다. 불빛에서도, 어둠에서도 반짝이는 은빛묘가 저 자리에 어울려 보인다. 블링블링한 고양이 동상 옆으로 50미터 정도 길게 벼룩시장이 린다. 매주 토요일 오후 두 시부터 개장을 고 30분 전부터 준비하고 있다. 상인들 간에 속한 시간을 준수하는 이유는 '규칙성'이 영업에서 중요한 요인이기 때문이다. 아무 때나 기분 내키는 곳에 좌판을 연다고 누가 지적질할까마는. 장사를 해본 사람들은 정한 자리에서 고객맞이가 더 효과적이라는 사실을 체득했을 것이다. 고객은 몇 시부터 그곳에 가야 할지 미리 동선을 체크할 수 있기에 시간을 정해놓는 게 양쪽 모두에게 효과적이다. 그렇기에 늘 같은 땡 샤워를 하며 거리 부스에 물건들을 펼쳐놓는 것이겠다.





[만원 카페 한 구석에서 책을 펼친다]


     몇 년 전 이곳에서 한 잔의 밀크티를 마셨던 날부터 이곳은 나의 최애 카페가 되었다. '사브낫바네아'라는 이름까지 맘에 들었으니 심신을 정화하고 싶을 때면 찾게 된 최적의 장소이다. *'사브낫바네아'란 뜻은 '꿈꾸는 자가 오는도다.'로서, 구약성서 창세기에 등장하는 요셉을 일컬어 불렀던 호칭이다.


상인들의 부산한 움직임들을 쳐다보다가 책을 꺼내 들었다. 이병한의 <유라시아견문>이다. 2017년에 독서 룹에서 읽으려고 구입했다가 시간을 놓치는 바람에 혼자서 고군분투하며 읽었던 책이다. 까지 읽었지만 완독이 목표였는지 기억하는 내용들이 거의 남아 있지 않다.

나는 연필로 모르는 지명들에 밑줄을 그어놨다. 어떤 날에 볼펜으로, 또 다른 날에는 노란색과 그린색 형광펜으로 밑줄을 그었다. 그때 나는 이 무수한 지명과 호칭과 의미들이 이해되지 않았기에 자꾸 줄 긋기를 해댔었다. '무슨 말이야?'냐며 따지는 밑줄 위엔 해독이 필요했던 단어와 문장이 정중하게 인쇄되어 있다. 

그런데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2017년 이후 칠 년이 지난 지금 나는 그의 '유라시아견문'록이 이해되는 데다 재밌기까지 하다. 무슨 조화인가 싶다. 여기서 라오스 여행의 복기의  중요성이 있다. 내가 직접 걸었다는 '걸어서 라오스 여행'이 지적 이해의 폭마저 넓혀줬다는 사실이다. 이병한 작가의 앎의 내용과 앞으로 일어날 가능성이 높은 사건들이 현실화된 사건들이 나타났다. 심도 깊고 밀도감이 높은 견문록이라고 느껴진다.




2023년7월29일(토) 성남동 풍경

맹렬한 더위가 임계점을 지났지만 거리는 열돔에 갇혔다. 투명한 북반구 열층 속 세상을 걷는 기분이다. 드라이어를 켜놓은 것 같은 바람이 약하게 불고 훅한 상황 가운데서도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들었다. 고객들과 행인들이 지나는 동선이 이리저리 그려진다. 그들은 지구라는 행성에 생명체가 있음을 몸으로 증명하고 있는 산 증인들이다.

 



[벼룩시장의 경제 주체]


토요 벼룩시장 길목 끝은 과거 울산초등학교가 자리했던 곳이다. 지금은 이곳 일대가 재개발 구역으로 묶여 대단위 아파트들이 건설되고 있고 이미 완공된 아파트는 곧 입주를 앞두고 있다. 드물지만 이곳 주변에 몇몇 주민들은 재개발에 불참하면서 자신들의 땅을 지키겠다고 나섰다. 건설사들은 내 땅 지킴이에 나선 원주민의 토지를 로 도려내듯 한치 오차도 없이 측량하고 구분 지웠다.  


변하지 않을 것 같았던 초등학교 주변 구멍가게와 문방구들이 하나둘 문을 닫고 이곳을 떠났다. 학생수가 줄어들자 양사초등학교 한 곳만 남기고 울산초와 복산초는 폐교를 했기 때문이다. 등하굣길에 뻔질나게 문방구 문턱을 밟던 코흘리개 초등학생들의 발걸음이 중단되자 학교 인근의 경제가 휘청다. 작다고 위력이 없는 게 아님을 실감하게 된 현실이다.


그렇게 아이들의 재잘대던 소리도 사라지고, 사부작사부작 발소리도 사라지고 십 년, 이십 년이 지났다. 폐교한 울산초등학교 자리는 과거에 보부상들이 머물렀던 막과 객주가 있던 장소였다. 폐교된 학교 부지에 건설이 시작되굴착기가 파는 곳마다 보부상들이 머물렀물건들이 땅 속에서 굴되었다. 그 물건들의 보전 가치를 평가하는 작업에 들어갔다.

*이 동네 사람들이면 학교 부지였던 땅 밑에 박물관에 전시될만한 그릇들이 있다는 건 알고 있었을 거다. 누구만 몰랐나? 행정의 수장만 이곳을 마치 미개척지처럼 취급했던 게 아닌가 조심스레 추측해 본다. 관료주의 행정의 병목 현상이라고 이해해야 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몇 십 년을 미리 내다보고 일을 추진하면 얼마나 좋을까.


이 일대는 저녁이 되면 유동 인구가 거의 없다. 주택살이 하는 노인들이 제 집에서 투박한 삶이 엿보일 뿐이었다. 이젠 집을 팔고 떠난 마당마다 무화과나무가 무성하게 자라고, 나물 반찬하려고 일구던 손바닥만한 텃밭엔 단단해진 채소들이 억척스럽게 키만 키우고 있다.


 재밌게도 벼룩시장의 주요 고객이 아이들이다. 어른의 돈이 아이들을 통로로 상인들의 경제를 살려주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부모들은 철벽을 두른 듯 아이들 뒤에 호위무사를 자처하고 섰다. 각 테이블마다 어린 자녀들이 그림을 그리고 색칠하고 가죽 공예에 한창 참여하고 있다. 경제를 굴리는 굴렁쇠 아이들이 주말에 부모와 함께 이 길거리를 앞으로도 계속해서 채워주었으면 좋겠다.






여자 아이가 물건을 하나 팔아달랬다.

 늦은 저녁이었다.

방비엥 여행자 거리
방비엥 저녁. 갑자기 쏟아지는 스콜

  늦은 저녁에도 식당은 북적이는 손님들 테이블 위로 음식 차려졌다. 지붕이 있고 없는 곳으로 실내외가 구분되는 식당이었다. 여닫이 문 대신 안팎을 판자로 구분한 개방적인 곳이었다.  한국식으로 하자면 샤부샤부 식당에서 친구들과 저녁을 먹을 참이었다. 스콜로 쏟아지자 불어난 빗물은 금세 개울물처럼 세차게 도로를 흘러내려갔다.




[어떻게 라오스와 태백을 잇지?]


한참 전에 태백 하사미 동네 산골짜기에 있는 예수원에 대천덕 신부님이 살고 계셨다. 혹시 예수원을 방문하는 사람들은 마을 입구 정거장에서 하차해서 다리를 건너 외나무골길을 따라 산 쪽 방향으로 걷다 보면 맨 먼저 입구에 세워진 토지비를 만나게 된다.

"토지는 하나님의 것이라."는 구약성서 레위기 25장 23절 글귀를 새겨 넣은 비이다. 토지비에서부터 세시 방향으로 십 분 정도 더 걸어올라 가면 비로소 예수원 본원이 나타난다. 예수원에 처음 세워진 집 지붕은 들에서 쉽게 얻을 수 있는 짚으로 덮여있다. 집마다 동화 속에서 봤음직한 창문들이 짙썹을 한 눈동자 같다. 한 겨울 폭설이 내리는 날에는 마치 눈을 뜬 눈사람이 버티고 앉아있는 모양새다.


처음부터 하사미 외나무골길이 지금처럼 포장되지 않았으니 그곳을 찾아가기가 쉽진 않았을 거라고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세월이 지나면서 사람들의 방문이 늘어나고, 늘어나는 방문객을 위해 본원을 매주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개방하게 되었다고 한다. 어찌 보면, 평범하게 살림하는 가족 공동체의 집을 열었다는 것이기에 그곳에서 요구하는 규칙들을 따르는 건 당연한 일이다.


다양한 종교를 신앙하는 사람들이 해마다 그곳 예수원을 찾고 있다. 대천덕 신부님이 살아 계셨을 때 하셨다던 말씀을 떠올려본다.


 "저 길로 사람도 올라오지만 세상의 많은 것들도 함께 올라온다."


"방비엥이 수도원도 아니고. 저렇게 아름다운 풍경과 액티비티와 즐길거리가 많은데. 여행객들이 더 많이 와야 이곳 사람들 경제도 돌아갈 것 아냐."라고 반문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날 봤던 원시적 자연의 아름다움 앞에서 나는 경외심과 감탄을 연발했다. 나만 보면 안 될 것 같은 자연을 누군가에게 보이고 싶은 마음에 폰카에 담았다. 여행객으로 돈을 쓰고 시간을 보내는 게 죄가 되진 않는다. 더 많은 사람들이 방비엥을 관광하기를 바라고 알려지기를 바란다. 그래도 임계점이 있으면 좋겠다. '오버투어리즘'이라는 용어의 속뜻은 무엇이겠는가. 정도껏 즐기고 침범하고 있지는 않나 나를 살피지 않아서 생겨난 말이라고 본다. 약탈적 여행이 되면 안 되는 거다.


방비엥에서 1박 2일 짧은 여행에서 잘 놀았더니 보상으로 쉼이 되어 돌아왔다. 여행을 이어가면서 나는 내가 계획한 대로 움직여야 쉴 수 있다는 공식을 지울 수 있었다. 계획은 진리를 세우는 게 아니니 계속 유연하게 바뀔 가능성 때문에 안달하지 말자는 것. 이번 여행은 나를 계속 가르치고 성장시키고 있었다.


식당 벽 위를 기어다니는 애완용? 도마뱀들


작가의 이전글 그대로의 얼굴로 만나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