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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북청로 로데 Aug 13. 2023

여행은 계절을 타지 않습니다

라오 여행의 기록 6



# 다녀오니 알겠네요. 여행은 계절을 타지 않습니다.


여행은 잠시 다른 공간에 다녀오는 것이고, 그곳에 적응할라치면 떠나와야 하는 내가 이방인 시간입니다.  집에 돌아오면 머잖아 금방 잊어버리는 것이 여행이기도 합니다. 출발할 때 입었던 옷 그대로 입고 돌아왔는데 다른 사람 옷을 입은 것처럼 내가 나를 낯설어하는 것 또한 여행입니다. 하룻길 여행에 하루치 타인이 되고 한 달 여행이라면 그곳이 더 편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도 남아있는 흔적은 보이는 게 아닙니다. 내가 만났던 사람의 방언들이 환청처럼 귀 언저리를 맴돌기도 합니다.

먼 길을 걸어서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왠지 내 집으로 귀가한다는 안도감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그 길 위에서 거리를 찍고, 전봇대 전신줄을 찍고, 사람들을 찍었습니다. 하지만 여행지의 풍경을 담은 사진들은 감정을 대변해주지 못합니다. 그런데도 사진을 남기는 이유는 내 기분이 어땠는지 말하기 위한 수단이 있어야겠에 그렇습니다. 집에 돌아와서도 나는 폰에 저장한 사진들을 자주 들여다봅니다. 그날의 기분과 이야기들이 사진 속 채도와 색감의 차이만큼 달랐을 것 같습니다.


집에 돌아와 보니 여행지의 기운이 이곳까지 따라왔네요. 눈부신 일몰의 휘황찬란함이 긴 스펙트럼의 붉은색 밤이 되어도 사라지지 않습니다. 나는 눈을 찡그리며 비엔티엔 여행자 거리의 햇살을 여기서도 봅니다. 시야에서 금방 사라지지 않는 그곳은 무엇일까요? 즐거움인지 슬픔인지 측량되지 않는 내 맘에 깔려있는 그림자를 봅니다.

그래서 '겨울 이야기'라는 노래 가사를 읊어봅니다. 봄부터 가을까지 연인들은 계속해서 겨울 얘기만 하는 노래입니다. 그 노래는 이번 겨울에 여름 이야기를 할 것 같은 나의 자화상이 될 것 같습니다. 봄에도 겨울에도 여름 이야기를 하고 있을 나를 그려보며 흐뭇해집니다. 올여름 내가 가장 잘한 일은 라오스 여행이었던 것 같습니다. 하늘 길을 날아서 서쪽으로 서둘러 가도 네 시간은 걸렸던, 좁은 좌석에서 아무리 몸을 뒤집었다가 펼쳤다 해도 편하지 않았지만 마음이 안 불편하면 괜찮았습니다. 마음이 즐거우면 불편한 게 극복됩니다. 뻐근한 몸은 푹 쉬고나면 회복이 되니까요. 비과학적이지만 마음이 몸을 끌고 가는 가는 걸 알았습니다.





# 다음을 기약하기보다 지금을 즐거워하자


무모한 말이 아닌데도 '다음을 기약하자'는 작별인사가 다소 무겁게 느껴졌습니다. 기내 자리에 앉아서 얼른 눈을 감고 잠을 청하는 급한 행동에도 무거움이 실렸습니다. 얼마나 즐겁고 행복했던 여행 기간이었는데 이런 허전함과 아쉬움이 찾아드는 것인지 알겠습니다. 기분 따라 왔다갈 수 있는 곳이 아닌 내가 떠난 그곳은 라오스였고, 5박 6일 동안 정을 띄운 곳입니다. 한국에 돌아와서 안 하던 행동도 합니다. 라오스 국가명을 들으면 왠지 친구 이름을 듣는 것 같습니다. 내가 알고 있는 정보가 팽창되고 라오스에 대해 잘 아는 척 말이 많아집니다. 리고 그동안은 관심 밖이었던 라오스의 역사를 읽고, 덤으로 인도차이나 지도를 살펴보았습니다. 정을 주고 돌아온 사람의 후유증 치고는 꽤 진지하고 학구적이 되었습니다.


원 없이 즐거워하고 다음 날 하루 계획만 잡고 지냈습니다. 끝끝내 적응되지 않았던 라오 화폐 낍! 원화에 동그라미 하나가 붙었던 낍 산수가 복잡한 미적분이 되기도 했습니다. 겨우 동그라미 하나 더 그려진 라오낍이 문화의 차이였나 봅니다. 말귀도 못 알아듣고 고맙다는 인사말을 수십 번 해도 혀가 돌아가지 않았던 '캅 싸이~라이?'

라오인들은 두 손을 모으고 합장하듯 인사를 합니다. 불교식 인사 같기도 하고 그들식 예절이 덕스럽게 보였습니다. 작은 것에 감사할 줄 아는 사람들과 인사를 주고받아서 좋게 보였을 수도 있습니다. 자주 가던 마사지샵 직원들이랑은 '우리 내일 한국으로 간다. 잘 지내~'라는 작별인사를 하지 않았습니다. 매일 다른 고객들에게 서비스를 베푸는 그들 삶에 나는 한 사람의 여행객이었으니까요.



남북으로 길게 뻗은 모양의 라오스 지도 서쪽에 메콩강을 사이로 태국과 국경을 접해 있습니다. 메콩강에 얽힌 역사도 모르면서 한 번쯤 들었던 그 이름 '메콩강'을 보려고 걸어가 보았습니다. 7월 우기라고 하지만 비가 자주 내리지 않아서 야시장 상인들이 매일 저녁 천막을 치고 있었습니다. 그곳 야시장 끝자락에서 계단을 올라가서 도로를 건너면 화려한 야간 놀이시설이 있습니다. 강 수위는 낮고 곳곳에 키 높이만큼 풀이 자고 있었습니다. 그 강을 따라 건너편 마을 집들이 쭉 이어져 있는데... 거기가 태국입니다. 서로 다른 나라가 평화롭게 강을 공유하며 생활한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습니다. 왜냐면, 남북한으로 분단된 대한민국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국경선 풍경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부자 되세요~'라는 말을 미신적으로 믿고 싶어 하는 세상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가난한 사람들이 평화롭게 국경선을 마주하고 아가는 현실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헤아리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평화를 원한다고 평화가 찾아옵니까? 평화를 원하지만 그것이 우선순위가 아니기 때문에 평화가 더디 오고 멀어지는 게 아닌가 합니다. 메콩강의 야경은 밋밋했고 구미가 당기는 재미를 주지 못했습니다. 모든 것이 화려한 대한민국에서 날아간 여행자여서 그곳에 야간 조명등과 자유로운 사람들의 야시장 풍경이 소박한 옛 풍경인 듯했습니다. 어쩜 평범하고 밋밋하고 대단한 게 없는 라오스의 모습이어서 좋았습니다.


부산 센텀시티를 지나는 길 - 광안리 해수욕장을 향해서

(*사진 속 다리밑을 흐르는 바닷물이라~ 강이 아니었습니다. 부산 광안리 해수욕장을 향해 가던 길 바깥 풍경입니다.)



# 여행에 대한 기억이 흐려지는 동안 날 수를 셉니다.


8월 15일이 되면 여행에서 집으로 돌아온 지 한 달이 됩니다.

오늘 떠올리는 어제의 기억은 재생된 기억입니다. 내가 엮여있는 기억에는 오류로 보이는 것들이 꽤 있습니다. 그런데 오류가 난 기억도 한 사람에게는 정확한 사실일 수 있습니다. 행 때를 떠올리며 쓰는 지금의 기록 자체가 사실과 과장이 범벅되어 있습니다. 다행스러운 사실은 짧은 여행의 추억들이 다음 여행의 가능성을 열어놨다는 것입니다. 라오스 뿐 아니라  라오스와 국경을 접한 태국, 캄보디아, 베트남, 미얀마를 패키지로 여행하는 꿈도 꾸어봅니다. 흐려지는 그곳에서의 추억들이 지나가는 날수만큼 멀어지고 있습니다. 멀어지지만 잊을 수는 없습니다. 라오스에 대한 연민이 생긴 걸까요? 여행에서 돌아온 뒤 몇 주간은 라오스 앓이를 좀 했습니다. 인도차이나가 나의 관심 안으로 들어왔고 그곳 소식에 귀를 기울이게 되었습니다. 여행 전에는 소식지 정도로 막연하던 라오스에 대해 여행을 다녀온 뒤에는 실감 나는 현실로 보고 듣게 되었습니다. 아마도 여행은 책 보다 발을 통해 더 깊고 넓게 한 나라에 대해 나에게 가르쳐준 것 같습니다. 친구가 그럽니다. "걸을 수 있을 때 여행하라."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좋은 사람과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여행은 끝나서도 그 날수를 셀 수밖에 없으니까요.



라오스 여행 전에는 이미 고인이 된 후배의 이름을 부를 자리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번 여행에서 그 친구의 이름이 우리들 대화에서 소환되었습니다. 세상에 생명으로 태어난 존재는 삶과 죽음을 무조건 경험합니다. 선택지가 아닌 필수 문항인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자꾸 자기 존재를 주관적 시각으로만 관망하고 싶은 유혹에 빠집니다. 그게 아닌걸 알게 될 때가 도둑처럼 살그머니 오고 있는데 말입니다.

후배가 하늘 나라로 가고 살아 있는 사람으로서 지금 오늘은 그 의미가 다릅니다. 시간은 소유가 아닌데도 네 것 내 것으로 구분 짓고 살다 보니 망각하고 있었습니다. 시간은 내게 허락된 것이지 나의 소유는 아니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생각하는 자리였습니다. 매일매일을 살아가는 사람은 사는 것에 대해서 더 집중하게 됩니다. 언젠가 죽음은 오겠지만 지금 당장은 아니기에 그럴 것입니다. 그런데 삶과 죽음의 경계가 코 끝에 한 줄기 숨에 좌우된다고 생각하면 오늘을 잘  살지 않으면 안 되겠다고 다짐하기도 합니다...그래도 다짐처럼 안 되어도 너무 당황하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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