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북청로 로데 Aug 19. 2023

여행, 누적되어 가는 자신의 총량

라오 여행의 기록 7

대문사진은 스콜이 그친 뒤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찍은 사진이다.

어두워지는 비엔티안 여행자거리는 습하고 무더웠던 기억이 떠오른다. 대부분의 기억에 약간의 왜곡과 과장이 있듯 날씨 역시 주관적으로 기억하고 있다. 습기 가득한 거리 곳곳엔 오후에 내린 비로 물 웅덩이가 만들어졌다. 조심스럽게 걸어도 신발이 더럽혀질 것이기에 크게 긴장할 필요는 없었다.


비가 그친 뒤 해그림자도 없는 친구의 뒷모습이 비엔티안 거리와 참 잘 어울렸다.



# 여행 기록은 공식이 없다

 그곳에서 찍어둔 사진은 곰탕 우려내듯 여러 가지 용도로 쓰고 있다. 공회전하며 헛돌고 있는 흐트러진 생각들이 쉴 곳이 있으면 좋겠다. 그래서 목상 쉼이라 하고 기억을 반복해 본다. 과거 카세트테이프로 음악을 듣던 8,90년대에는 지겹도록 한 가지에 빠져서 헤어나질 못했다. 듣고 듣던 테이프에서 늘어진 소리가 들릴 때쯤이면 테이프를 봉지에 담아 냉장고에 넣어보기도 했다. 그것은 일종의 시장에 떠돌던 민간요법으로 기기를 고쳐 보려 했었다. 냉장실 냉기가 늘어진 테이프를 약간이라도 팽팽하게 조여줄 거라는 기대도 없지 않았다. 그 방법의 근거를 따져 묻기보다 한번 해보는 무모한 용기가 앞섰다. 그래서 누가 늘어진 테이프를 복구할 방법을 물어오면 태연스럽게 '냉장고에 넣어봐'라고 비법을 전수했었다. 서투른 반복이 사람들에게 전달되었다. 그리고 나중에는 반복했던 시도들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날이 왔다.


라오스를 가기 전, 그곳에 대한 정보를 찾다 보면 라오스 첫 여행자부터 수년간 여행을 하고 있는 셀럽들의 각종 경험담들이 차트를 올리고 있었다. 지나치리만큼 과한 라오스 여행 정보를 접하면서 최종 선택은 내가 하는 것이고 그에 대한 실패와 성공도 내 몫인 것을 느꼈다. 사람마다 호불호가 다를 것이 뻔한 일이다. 감정과 즐거움의 경험이 다름에도 정보를 확인하는 이유는 '낯선 곳'에서 생존하고 다시 본국으로 살아서 돌아와야 하기에 그렇다고 본다. 실패가 적을수록 성공적인 여행이 되는 것이다. 불행하게도 여행에 대한 기대에 부풀어 떠난 타국에서 사고를 당하는 경우도 있다. 국가 간 외교적인 문제로까지 확전 되어 긴장감이 고조되기도 한다. 어쨌든 여행은 안전하고 즐겁게 다녀오는 것으로 마무리되면 좋은 추억이 되어 다시 한번 더 그곳으로 갈 수도 있다.


 즐거웠던 여행. 좋았던 여행. 의미 있던 여행에 기본은 직접 가보는 것이다. 수려한 문장으로 여행지를 묘사하는 글은 독자로 하여금 그 장소로 가보고 싶도록 만드는 촉매제 역할을 한다. 문장에 낚여서 여행을 결정해도 결정권자는 자신이기에 자신만의 각별한 문장을 재창조할 임무가 있다. 떠나기로 결정하면 항공권, 여행경비, 숙소, 지도, 유심칩, 친구 등 필수 아이템을 준비해야 한다. 그것들 가운데 어느 것은 더 많이 가져가도 다 사용하지 못하고 짐이 되기도 하고, 필히 챙겨야 했던 물건을 미처 가져가지 못하기도 한다. 아무리 완벽하게 여행 준비를 하드래도 부족했던 것과 아쉬운 게 남는 것이 또한 여행이다. 왜냐면 여행은 실험과 닮았기 때문이다. 많은 여행자들의 경험들이 파일링되고 누적되어서 그것의 안정성이 일정 정도 보장되긴 해도 여행 험자들의 목적과 성취도가 수량화되는 게 아니다. 여행을 느낌과 기억과 경험치로 대답하기에 서로의 다름이 난무하는 것, 그리고 그 각각의 여행 이야기 중심을 잡았던 사람이 다르기에 특이할 수밖에 없는 사건이 여행이다. 




찬타판야호텔 앞 풍경



# 데이터에 없고 말해야 아는 것이 있

구글맵에 나의 타임라인에는 매일 자신이 얼마를 걸었는지, 소요 시간과 이동 장소와 걸었던 주변 유명지까지 빅브라더가 체크하고 있는 걸 확인할 수 있다. 그래서 굳이 노트에 따로 기록하지 않는 편의성을 제공한다. 색 속도면에서 정확도에서 구글맵을 어떻게 쫓아갈 수 있겠는가. 그래서 내가 낼 수 있는 속도를 지니고 있는 인간인 것을 발견하기도 했다. 게다가 내가 사용하는 폰은 타임라인이 체크되는 기기가 아니다. 구글에서 잡지 못하는 기기를 사용하고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래서 매일 나는 손글씨로 그날그날의 시간과 장소와 동행했던 친구들 이름을 자세히 써야 했다. 손으로 기억에 의지해서 틀리기도 하는 날마다의 행동반경을 기록한다는 그것이 여행의 즐거움이기도 하다. 왜냐면 '속도' 때문이다. 속도가 나지 않고 느리게 하루를 기록으로 남기기 때문에 그날마다 있었던 풍경과 대화들과 음식을 음미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날로그식으로 손 글씨 쓰기를 좋아하는 나는 구글 기능을 읽지 못하는 내 폰이 아쉽긴 해도 손해 본다는 기분이 들진 않았다. 


내 손은 매일 수고로이 움직였다. 기록을 멈추는 날이 있었어도 눈과 귀와 입이 했던 일을 손이 마스터하는 밤이 오면 남은 날이 짧아진 걸 확인했다. 그때마다 아쉬웠다. 하루가 이렇게 짧았는데 남아있는 여행지의 시간도 동시에 줄어들고 있었던 거다. 집과 직장에서는 희귀하게 찾아오는 시간의 단축이 여행지에서는 매 번 느낄 수 있었다. 그런 시간들이 반복되다가 마지막에는 감정도 뜨거워진다. 더는 반복이 없을 거라는 현실이 더운 열기처럼 덮쳐왔다. 라오스에서도 나는 같은 사람이라서 다른 장소와 다른 맛을 경험해도 내 방식으로 받아들이고 모국어로 그 느낌을 현했다.


내 방식은 한국 사회에서 상식으로 받아들이는 태도일 것이다. 특히 도어보이와 벨보이가 떠오른다. 중학생 나이 정도의 소년들이 호텔 입구에서 우리를 맞이했다. 친구와 함께 머물렀던 숙소가 찬타판야호텔. 그곳에 도착하자마자 소년들이 재빠르게 나와서 우리의 짐들을 번쩍 들고 들어갔다. *당시 팁문화를 몰라서 머뭇거렸지만.  

친구는 '청소년 인권'에 대한 얘기를 했다. 일종의 노동 착취라는 것에 대해 되돌아봐야 했다. '노동과 임금', '노동과 연령'에 관해 사회적으로 특이할만한 이슈가 등장하지 않으면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는지조차 관심이 없었던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 어린 도어보이가 호텔 문을 열어줄 때마다 "캅 싸이"라는 인사를 전하면서 동시에 노동과 인권에 관해 고 말할 수 있어야겠다는 숙제를 안고 지냈다.





찬타판야호텔 로비와 정문 앞

# 실수해서 이방인이고 여행자이다.

라오스의 낮은 뜨겁다. 걷기에는 추천하지 않는 시간대에 도로를 활보하는 두 부류가 있다고 한다. 여행자와 가난한 사람이라고 한다. 여행자? 가난한 사람? 둘을 합치면 '가난한 여행자' 나를 가리키는 말이 될 수도 있다.


어찌 됐든, 수요일(7.12)은 친구랑 둘이서 비엔티안 주변을 둘러보기로 했다. 여행 기간이 이틀 밖에 남지 않았다. 매일처럼 우리는 제일 먼저 조식을 먹고 근처에 있는 Le trio cafe를 찾아갔다. 이틀간 마신 커피 양이 아마도 내 한 달 커피 분량이었을 거다. 다양한 커피를 음미했고, 커피를 즐기는 게 어떤 것일지 상상이 되기도 했다. 뜨거운 태양 아래서도 야외 테라스에 앉아서 모닝커피를 마실 수 있다면 그런 모습 아닌가 싶다. 몇 군데 카페를 돌아다니며 마시다 보니 이곳에서 생활하는 친구들이 추천해 준 Le trio coffee가 가장 좋았다. 친구들에게 줄 선물용으로 제 것 같았다. 그래서 선물할 사람 인원수만큼 원두커피를 사기로 결정했다.


그렇게 해서 알게 된 것이 여행자 거리 주변 상점과 카페들이 일찍부터 장사를 시작한다는 사실이다.  대부분 7시 반이면 가게 문을 열고 손님을 받는다. 여름 계절과 개장 시간이 관련이 있는 것 같다. 그래서 퇴근시간이나 카페 폐점시간도 이른 것이었다.

 Le trio coffee캐나다인 주인 역시 개점 시간보다 일찍 출근해서 원두를 볶는 것 같았다. 주인이 직접 원두를 볶으면 종업원들은 볶아진 원두를 250그램부터 3킬로그램까지 macho(풀시티)와 matahari(프렌치) 두 종류를 구분해서 장한다. 가게 안은 카운터와 원두 볶는 원통형 화로와 포장한 커피 제품들을 진열하는 선반으로 꾸며져 있다. 그리고 가게 바깥에 원형 테이블들이 있으니 에어컨 아래서 커피를 즐기겠다는 생각은 일찌감치 접었다. 


이곳에서 생활하는 유럽인들처럼 보이는 손님들이 모닝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아침 여덟 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으니 모닝커피가 맞는 거겠지. 친구와 나는 각자가 필요한 만큼의 원두를 구입했는데 진열대 한쪽 열이 금세 비었다. 그래도 물건만 사고 그냥 가기엔 아쉬운 마음에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시켜 마셨다. 강배전으로 볶은 마타하리의 진한 커피 맛에 기분이 좋아지는 아침이었다. '아~ 이 맛이구나!' 신선하다는 맛. 풍부한 산미라는 그 맛을 알게 된 모닝커피의 맛이었다.

그리고 궁금했던 D-mart 위치를 카페 종업원에게 물었다. 그녀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도로 끝에서 턴해서 걷다 보면 찾을 거라고 설명했다. "컵 짜이~!"(고마워요)


주황색 파라솔이 있는 LE TRIO COFFEE

거리로는 1킬로미터, 두 시간가량 숙소에서 떨어진 곳에 있다는 D-mart를 찾아가기로 했다. 두 시간 가까이 외출에 돌아와서 생각하니 구글이 잘못 알려줬다는 웃지 못할 해프닝. 참고로 숙소 옆 5분 거리에도 D-mart가 있었다. 말귀를 잘못 알아들었던지. 카페 종업원이 가리킨 방향을 너무 멀리 추정했던지 해서 우리는 정오의 땡볕 아래 좀 멀리 걸었던 거다.


*우리는 걸었다. 뜨거운 땡볕 아래 모자를 쓰고 걸었다. 낮에는 개도 안 다니는 비엔티안의 거리를 D-mart를 찾으러 1km 이상을 걸었다. 친구들 차로 우릴 안내해 줄 때 그것이 얼마나 호강이었던지를 알게 된  기회였다. 걸으면서 비엔티안의 도시 구조가 대충 머릿속으로 그려졌다. 우리가 묵고 있는 호텔이 어디쯤인지 동서남북 좌표를 정하고 걷다 보니 똑똑해지는 것 같았다.

카페 종업원과 우리의 의사소통에 하자가 있긴 했어도 무익한 시간은 아니었다고 말하고 싶다. 그래서 이방인이고 여행자인 거다. 모르는 게 많아서 자주 묻게 되는 사람. 궁금한 게 생겨도 답답함을 견디는 사람. 발품을 팔아서 그곳을 알기 시작하는 사람인 거다.

 





작가의 이전글 여행은 계절을 타지 않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