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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북청로 로데 Oct 27. 2023

내가 되는 작은 것들 이야기

소소한. 나 자신.


충무김밥과 섞박지, 부추무침을 먹고 허기를 달래던 유월의 여름 부산 국제시장이었다. 사진으로 남아있는 인상이 매일 바뀌는 일기만큼 른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 이야기가 그곳에서 벌어진 일인지, 대화였던지 시간이 뒤범벅되어 있다. 함께 남포동 시장통을 누비던 사람한테 물어보지 않고 혼자 추억하는 일은 혼자만의 것이다. 허기를 달래려고 먹었던 간이음식의 맵고 짭조름한 간간한 맛은 입에서 사라졌다.

유월과 시월 사이 넉 달간 벌여놓은 시간 간격은 나의 기억 속에서만 좁혀질 뿐이다. 그리고 내 머릿속 어딘가에는 끊어진 필름을 이어놓은 듯 기억들이 듬성듬성 성글게 린다. 성근 기억들이 그때 그 장소로 달려가서 얻을 수 있는 일종의 수확물 같은 과실이 되었다. 을이 자기 오는 날을 어림짐작으로 느끼도록 했기 때문에 나는 오늘은 가을이네, 다음날은 여름이네라고 말하는 변덕스러운 사람이 되기 일쑤다. 이렇게 시나브로 가을은 멀어졌다 가까워졌다를 반복하면서 도심 속 사람들과 밀당하는 중이다. 참 변덕스러운 계절이지만 내년에도 이런 가을이 왔으면 좋겠다.



나는 금요일부터 주말 기분을 만끽하면서 해가 길어지는 열 시쯤 일어났다. 늦은 아침에 빈둥거리기 좋은 일거리는 청소. 거실 카펫에 찌개 국물 자국이 말라있었다. 세제로 문질러 흔적을 지우면서 청소하기로 결정했다. 어제 걸레질하지 않고 못 본 척 넘어갔던 집구석구석을 청소했다. 한 주먹만 한 회색 먼지덩어리진공청소기에 휘말려 들어와 통에 모아졌다. 집에는 날마다 아드는 먼지들이 수북해다. 청소기를 돌린 날에는 눈이 선명해진다. 그렇지 않은 날에는 시야가 뿌옇다.

머릿속에는 먼지처럼 내려앉는 생각들이 있다. 일일이 기록해 둘 만한 내용들보다 지나가는 뜨내기 같은 생각들이 쌓일 때마다 나는 생각하기를 잠깐 멈춘다.

무엇이 중한 일인지를 되물어가며 방 청소하듯 머릿속을 비운다. 머릿속을 비우지 않으면 아래로 흘러 내려가 마음을 복잡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나는 그 잡다한 상념들을 일일이 신경 쓸 만큼 한가한 사람이 아니다. 누구보다 나 자신을 소중하게 여기는 한 사람이다. 아무 일이 없는 날에도 나를 위해 시간을 허투루 허비하지 않는다.

이른 아침에 눈을 뜨면 뜨는 데로 하루를 시작한다. 화분에 물 주기를 하면서 잠을 깨우는 습관을 들이고 있다. 거의 매일 베란다 화분들을 둘러보면서 주인 노릇을 한다. 그렇지만 내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화초들을 종 부리듯 하지 않는다. 언젠가 때가 오면, 아니 때를 정하면 모든 화분들을 다 처분할 계획이다. 하나둘 이쁘다고 키우겠다며 사들인 화분들이 이제 와서 키우기 싫다고 변심해서이다. 이별을 통해서 나도 화분 속 나무와 화초들도 반뼘 정도는 성장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공원 밖에 어둠이 내렸다. 유리창으로 내 모습이 거울을 보듯 선명하게 비친다. 한참 동안 앉아있어서 푸석푸석해진 몰골의 얼굴이 오랜만에 자기를 기록하느라 분주하다. 바깥은 싸늘한데 낮에 맞춰 입고 외출한 옷을 어떻게 싸매고 이곳을 빠져나갈까 궁리 중이다. 늦은 밤인 도 나와 비슷한 사람들이 무언가를 읽고 쓰고 훌쩍이고 훌쩍댄다.


십여 일 전부터 고대근동 역사 공부에 몰두하고 있다. 조금 전까지 세 시간가량 강의를 들으면서 지적 욕구가 채워지는 충만함을 만끽했다. 정말 무지함이란 내가 모르고 있다는 사실도 모르는 것이라는 말에 공감하는 요즘이다. 지식이 내 안으로 들어와서 굳은 땅을 기경하는 삽질을  해댄다. 세상에는 자신이 배운 지식으로 사람을 이롭게 하는 학자들이 곳곳에 있다. 그들이 수 십 년을 연구한 노고에 숟가락을 얹어 밥을 떠먹을 수 있는 시대를 나는 살고 있다. 이것은 은총의 일종이다. 학자들의 지식으로 나의 허기를 채우고 나도 누군가의 굶주린 배를 채울 정리된 음식을 만들어 내고 싶다.


이곳 대공원 지관서가에 도착해서 아이스 카페라테를 주문해서 테이블에 놓자마자 컵을 엎질렀다. 이런 실수를 하지 않았는데.... 내가 앉으려는 창가 테이블 쪽에 잠시 소란스러운 걸레질과 서로 괜찮다. 미안하다는 말들이 오고 갔다. 그런데 카페 주인은 돈을 받지 않고 같은 메뉴를 만들어냈다. 무엇이 서로 괜찮고 미안한 것인지를 확인시켜 주는 라테 한 잔이었다. 자주 찾아오겠습니다~ 공짜 라테 한 잔에 맘을 주는 말을 했다. 공허한 말이 아니라 고마움의 표현으로 전한 말대로 가을과 겨울을 지나는 동안 자주 여기를 찾아와야 할 텐데. 빈말로 휘발되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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