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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북청로 로데 Nov 10. 2023

변하지 않는 사람아

인생(1)

 이사가 했던 말이 있다.

"나이 팔십에는 책을 한 권 쓸까 한다."

당시 일흔일곱 살이었으니까 열심히 쓴다면 책을 낼 수도 있겠다 싶었다.


'올해 저분의 나이 일흔일곱 살이니까 몇 년 안 남았네'

건조한 반응이었다. 그리고 팔순이 되는 2018년이 길지 않다는 셈을 했다. 하지만 책을 내겠다는 사람 치고는 책 읽는 모습을 거의 볼 수 없었다. 대신 자신감이 넘쳐 보였다. 과연 무슨 책을 쓰고 싶은 걸까? 그 책의 독자들은 누가 될까?


맘먹었으면 일흔 살에라도 책을 냈을 텐데 굳이 십 년을 묵히고 지낸 이유가 궁금했다. 하루 한 장씩 일력을 뜯듯 자신의 버킷리스트를 십 년 주기로 넘기고 있는 건 아닐까.


"사님, 어떤 내용의 책을 쓰고 싶으신데요?"

여기서 그 책 내용까지 밝히고 싶지 않은 마음을 이해해 주시면 좋겠다.

강 이사가 쓰고 싶은 책 내용은 서점에 가면 수두룩 하다고 정확하게 말해주고 싶었다.

"네, 책을 꼭 쓰시기 바래요~"


아마도 내 기억이 맞다면, 그가 팔십이 되던 해 봄이었다. 사월생이니 거의 팔순에 맞춰서 책을 쓸 작정이었던 것으로 보였다.

"내가 책을 엄청 많이 구입했거든. 글을 쓰려고 마이 샀다 아이가. 이제부터 열심히 읽어야지!"

그가 종이 가방에 한가득 책들을 짊어지고 사무실 문을 들어섰던 날이 있었다.


"그러네요. 책을 꽤 많이 구입하셨네요. 서두르셔야 할 것 같습니다."

책을 내겠다던 자신의 버킷리스트를 채우려고 그는 여러 권의 책을 구입했고 열정을 과시했다. 마지막 한 줄기 불씨까지 다 태우려는 노년의 열심이었던가. 내 눈에는 노익장을 과시하는 모습 정도로 보인건 사실이지만 해보겠다는 그 용기는 박수를 치고 싶었다.  


그렇게 도전하는 은퇴자의 열정을 지켜보면서도 나의 기대감은 거의 없었다고 할 수준이었다.


그렇게 그는 책 구입 이후에도 사무실에서 진행하는 모임과 행사 진행을 위한 일을 계속했다.

늘 모든 일의 중심에서 진두지휘를 해야 하는 사람. 이십 년 내공의 노하우로 스스로 노련한 노년의 이사는 대단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굳이 책을 내지 않아도 되고 자신의 이름 석 자를 선전하지도 않아도 될 만한 위치에 있는 사람이었다.


"요즘 글 쓰세요?"

"올 해가 이사님 팔순이신데. 책을 출간하려고 하셨잖아요?"

나는 굳이 애정과 존경과 기대가 빠진 질문을 그에게 던졌다.


"아... 그게.  안 하기로 했다."

...

"그러시군요"



[불통의 전화]

"내가 어디 아프나?! 이 일을 계속 못하도록 국장이 흐트릴라고 하는게 아니냐고. "  

강 이사는 전화기 너머에서 불을 뿜으며 나를 향해 호통을 쳤다.


"특별히 아프신 데는 없으시죠. 그렇다고 건강하신 건 아니잖습니까. 그리고 지금 저한테 전달하시는 말씀이요. 그 내용을 후원자로부터 직접 들었는데. 아니랍니다. 잘못 알아들으신 거예요."


 불통의 현실이 서글펐다. 후원자와 어제 직접 통화를 했는데 강 이사가 이해했다는 내용과는 상반된 이야기였으니까. 말을 할수록 길어지고 더 헷갈릴 뿐이다.

지금 내가 누구 편에 서는 게 아니라 옳게 전달해야 하는 것인지, 아니면 말하기를 중단해야 하는지, 도무지 결정이 내려지질 않았다.


"있잖아요. 전화상으로 그만 말씀하세요!  계속 말이 헷갈리니깐요. 만나서 이야기하세요. 전화 끊습니다."


그와 전화를 끊고 후원자에게 연락을 했다.


"저, 강 이사님이랑 방금 전화 통화를 했어요. 근데 어제 후원자님이 저한테 말한 내용이랑 정 반대로 이해하시던데요...  제가 지금 말할 기운도 없어서 길게 얘긴 못하거든요. 그러니까 그분한테 연락이 오거들랑 정확하게 전해주세요."




지난 주 금요일이었다. 나는 사무실 일을 오는 12월 까지 정리하고 그만두겠다고 했다. 현재 사무실 일부를 분할해서 사용 중인 독서모임 물건들 겠다고 했다. 그에게는 느닷없이 들린 얘기일지 모르겠다. 그 말을 듣고 그가 눈을 크게 뜨면서 내게 반문했다.

"그럼, 사무는 누가 보는데? 일할 사람을 찾아놓지도 않고 관둔다는 게 말이 되나?"


"사무실 직원 찾는건 제 일이 아니지요. 저는 모르겠습니다."

나는 단단히 화가 나 있었다.


불통의 원인을 찾을 기력도 남아 있지 않았다. 학문과 연륜이 인간관계를 지혜롭게 풀어갈 수 있는 힘을 얻는 시간이면 얼마나 좋은가. 하지만 배움 따로, 삶 따로 굴러가는 게 작금의 현실이다. 속 시끄럽게 더 이상 내가 사무실 운영 때문에 애태우지 말자는 결론을 내렸다.


'늙음'은 무엇일까? 한 가지 일을 오래동안 했다는 경험 많은 연륜이란 또 무엇일까? 무엇이 사람을 고집스럽고 질기게 만드는지 모르겠다. 한 공간에서 일해온지 칠 년이다. 동료애는 없어도 듣고 싶은 말만 듣는건 불가능하다. 알아 듣는 게 아니었다. 그냥 안 듣는거였다.  



[미용실 안에서]

요일 저녁.

나는 미용실 개업을 앞두고 있는 친한 동생 점포에 앉아서 긴  숨을 내쉬었다.

"셈~ 진짜 힘드신가 봐요... 그렇게 긴 한숨을 내쉬네요."

"귤이라도 드실래요? 쿠팡 배달원이 일곱 시에는 도착한다는데... 왜 이렇게 안 오는지... 저희 경주 못 가겠는데요."


"그래? 경주 가도 식당이 여덟 시 넘으면 문을 닫았을 테니까...  지난 3주 정도 인간에 대한 환멸까지 생겼다는 거 아니니. 그런데 나도 팔십이 넘으면 어떤 인간이 되어 있을지 자신할 수가 없으니까. 처음에는 욕을 했다가  나중에는 나를 걱정하게 되는 거라.   늙는다는 건 슬프다. 아니, 모든 늙음이 다 슬픈 일은 아닐 테지만. 지금 내가 감당해야 할 사람의 늙음은 너무 힘들다."


정확하게 일곱 시 오 분 전에 쿠팡맨이 도착해서 짐을 부렸다.

그녀는 서둘러 옮긴 택배 물건 사진을 찍고 급히 사라졌다. 그녀의 뒷모습이 왠지 안쓰러웠다.



"이제 저녁 먹으러 가요! 칼로리 높은 걸 먹고 싶기도 하고... 참, 샘은 그런 거 드시면 안 좋지요. 뭐 드실래요? 라라코스트 갈까요?"


"그래. 거기가 제일 낫겠네. 거기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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