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사 대신 글
-《노인과 바다》를 읽으면서 곰곰이 생각해 봤다. 나는 누구일까? 애써 잡은 물고기를 지키기 위해 힘겨운 사투를 벌이는 불운한 노인일까, 아니면 노인으로부터 그 물고기를 빼앗기 위해 피냄새를 맡고 몰려든 탐욕스러운 상어일까?
오함마가 《노인과 바다》를 다 읽었다고? (뻥치시네!)
-그런데 어젯밤에 나는 깨달았어. 나는 노인도 아니고 상어도 아니야. 나는 바로 그 노인에게 잡힌 물고기야.
노인이 멧돼지라도 낚았나?
-낚싯바늘에 입이 꿰어 고통에 몸부림치다 곤봉에 맞아 끝내 아름다운 몸체를 뒤틀며 숨을 거둔 물고기. 고깃배에 매달린 채 상어들에게 살점을 물어뜯기고 피를 흘려 바닷물을 붉게 물들였던 바로 그 청새치. 그러다 마침내 온몸의 살점이 모두 떨어져 나가 거대한 뼈만 남은 채 돛대에 수치스럽게 매달린 청새치...... 그게 바로 나야.
-난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양아치지만 그래도 언제나 네 형이라는 사실이 자랑스러웠다. 잘 있거라. 오감독. 나는 간다.
천명관, 《고령화 가족》 중에서 147쪽~148쪽에서 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