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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옥상희 May 27. 2022

결석! absence말고 stone!

자다가 깼다. 새벽 3시였다. 허리 뒤쪽이 묵직하게 아팠다.

자다가 아프면 으레 하듯이 뭘 잘못했나 생각했다. 

뭘 잘못 먹었나? 짜게 먹었나? 많이 먹었나? 아니었다. 

무리했나? 과로했나? 스트레스 받았나? 아니었다. 

곧 아랫배까지 아파왔다. 

자궁선근증 때문인가 의심했다. 생리예정일이 일주일 정도 남아있긴 했다. 

그렇다고 허리까지 이렇게 아프다고? 


응급실을 가자고 남편을 깨우기가 미안했다. 백수가 된 이후로 남편의 눈치를 많이 본다. 전업주부라고 하지 않고 백수라고 하는 이유는 나는 전업주부라고 말할 만큼 집안일을 하지 않기 때문에.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아침에 먹느라 쓴 그릇, 냄비들이 싱크대에 들어찬 것이 보인다. 남편은 그 다음날 출근을 해야 하는데 백수 아내 때문에 잠도 못 자게 할 수는 없었다. 나는 이리 뒤척, 저리 뒤척하면서 참았다. 


아침 7시에 남편이 일어나고서야 아파서 병원을 가야겠다고 했다. 3시부터 아팠으니까 병원가기 딱 괜찮은 시간이다. 4시간이 넘도록 배가 엄청 아프면 그때는 병원을 가야 한다! 참아야 하는 경계선은 지난 거다! 8시 30분에 병원이 문을 여니까 그때 맞춰 가기로 했다. 엑스레이나 CT를 찍을지도 모르니 쇠붙이가 없는 옷만 입었다. 아주 훌륭한 선택이었다. 아파 죽겠는데 옷을 입었다 벗었다 언제 그러고 있겠는가!  


요로 결석 때문일 거라 어느 정도 예상은 했는데도 관성 때문인지 비뇨기과로 가지 않고 평소 다니던 내과 진료를 기다렸다. 비뇨기과보다 내과 대기 시간이 훨씬 길었는데 멍청하게. 내가 끙끙 앓으니까 우선 이런저런 검사에 앞서 진통제와 다른 주사부터 맞자고 했다. 


CT 검사실 앞에서 대기 중에 간호사가 링거를 끌고 다닐 수 있는 바퀴 달린 지지대를 끌고 와서 수액을 매달고 내 손에 꽂힌 주사 바늘과 연결하고 떠났다. 잠시 후 어지럽기 시작했다. 남편에게 어지럽다고, 토할 거 같다고 했다. 

검은 봉지를 든 남편이 간호사와 함께 나타났을 때 이미 아무 것도 먹지 않은 빈속에서 무언가 올라오고 있었다. 검은 봉지를 잡고 토했다. 입에서도, 코에서도 물이 흘러 나왔다. 간호사는 급히 수액을 멈췄다. 몸에 들어가던 수액을 멈추자 증상도 가라앉았다. 맞았던 주사액이 ‘티램’이라는 주사였는데 이것 때문이었다. 간호사는 ‘티램’이라고 포스트잇에 적어주면서 앞으로 이 주사는 맞지 말라고 알려줬다. 


스펙터클한 아침이었다. 


왼쪽 신장에 결석이 하나 있었고, 왼쪽 신장에서 열심히 나와서 방광 가까이 다가간 결석이 하나 있었다. 방광 가까이 다가간 그 놈 때문에 새벽부터 아침까지 이 난리 부루쓰였다. 

의사는 내가 일반 환자라면 좀 기다려볼 수도 있지만 다낭신 환자니까 혹시라도 요관이 폐쇄되어 신장이 나빠지면 안 되니까 빨리 수술을 하자고 했다. 내시경을 집어넣고 빼내면 된다고 했다. 척추 마취를 하고 입원은 하루만 하면 되는 간단한 수술이라고 했다. 


나는 잠시 망설였는데, 남편이 빨리 하자고 독촉해준 덕분에 수술을 하기로 했다. 수술 일정은 오후 5시 넘어서. 남편은 늦은 출근을 하고 나는 입원 수속을 밟았다. 피를 계속 계속 뺐다. 이런 핑계로, 저런 핑계로. 다섯 번째로 뺄 때, “제가 빈혈이 심하거든요.”라고 말해봤다. 간호사는 그래도 검사는 해야 한다고 했다. -수술 후 며칠 있다가 생리를 시작했는데 극심한 생리증후군을 앓았다. 빈혈로 인한 두통, 가슴 두근거림, 무기력, 통증까지. 진짜 그렇게 내 피가 많이 필요했는지 지금도 묻고 싶다- 


수술복으로 갈아입고 침대에 누워서 이동했다. 사실 이동할 때는 기분이 좀 들떴다. 다리를 쓰지 않고 공간을 이동하는 즐거움을 느꼈달까.


수술실에서 몸을 암모나이트처럼 둥글게 말았다. 척추 마취를 하는 주사를 맞기 위해서였다. 엄청 아플 거라고, 치과 치료를 하기 전 맞는 마취 주사만큼 아플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만큼 아프지 않았다. 입 안보다는 등쪽이 신경이 적어서 그런가? 

마취 주사를 맞고 나서는 마취가 잘 되었는지 확인했다. 마취과 의사는 내 배꼽을 꼬집었다가 팔을 꼬집으면서 감각이 둔해지는 느낌이 있냐고 물었다. 확실히 감각이 둔해지고 있었다. 다리가 열감이 있는데 차가워지는 느낌이었다. 희한한 느낌이었다. 조그만 손가락으로 다리를 콕콕 찌르는 것 같았다. 


곧 여성들이 산부인과에서 보통 하는 쇄석위로 자세를 잡았다. 수술대 끝에 엉덩이를 걸치고 양 다리는 넓게 벌려서 고정시키는 자세다. 의료진은 간호사 두 명과 인턴으로 의심되는 한 명, 마취과 의사, 비뇨기과 의사, 총 5명이었다. 


요도로 내시경을 집어넣어야 하니 요도 주위로 넓게 소독을 시작했다. 시원하게 아랫도리를 드러내놓고 있자니 부끄러웠겠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뭐, 어렸을 때부터 쭈욱 이런저런 이유로 2차 성징이 시작된 가슴이나 성기를 의료진들에게 보여야 했던 일이 여러 번이었기 때문에 속으로 “괜찮다, 괜찮다, 나는 살 덩어리다, 살 덩어리다”라고 되뇌이면서 다리에 힘을 빼려고 노력했다. 


마취를 했기 때문에 아프지 않았다. 정신도 말짱했고. 전신마취보다 훨씬 마음도 편안했다. 내시경을 집어넣고 보던 의사는 “결석이 없다”고 했다. 아마도 수술을 기다리는 중에 소변으로 빠진 것 같다고 했다. 아이 참, 그래 오후부터는 배가 안 아프더라니. 진통제 때문인줄 알았는데.

그래도 결석이 나오면서 요관이 좀 부은 곳이 있으니 원활한 소변 배출을 위해서 스텐트를 집어넣어 놓겠다고 했다. 스텐트는 며칠 있으면 뺀다고 수술 전 자세히 설명을 들었었다. 


그렇게 수술이 끝나고 다리를 움직이지 못하니 침대에 누워서 병실로 이동했다. 간호사는 앞으로 6시간 동안 머리를 들지 말라고 했다. 그 전에 머리를 들면 진통제도 듣지 않는 두통이 생긴다고. 6시간 동안 푹 자라고 했다. -간호사 말대로 나는 그대로 잤다. 자고 일어나서 6시간이 지난 줄 알고 고개를 들었고, 수술한 지 2일이 지난 후부터 심한 두통을 겪었다. 옆으로 누워있으면 두통은 좀 나아진다- 


다낭신 때문에 나는 평소 물을 많이 마시는 편이었다. 수술이 끝나고도 물을 계속 많이 마셨고 소변줄을 통해 나온 소변주머니가 새벽 무렵엔 가득 찼다. 간호사는 소변줄을 뺐고 -소변줄을 빼는 것은 그리 많이 아프지 않다. 짧게 ‘읍!’하고 소리 한번 내면 끝난다- 화장실을 가서 붉은 소변을 봤다. 


스텐트는 며칠 후에 빼자고 했다. 의사가 스텐트로 인한 불편감은 드물게 느낀다고 했는데 나는 드문 축에 속했다. 스텐트가 있는 쪽의 배와 허리가 불편하고 아팠다. 아침에 일어나면 진한 핏빛 소변이 나왔고 낮동안 옅어지다가 잘 때가 되면 거의 핏기가 없는 소변이 나왔다. 하지만 다음날 일어나면 다시 진한 핏빛 소변이 나왔다. 스텐트를 빼기 전까진 이런 하루가 반복됐다. 


스텐트를 빼러 간 날은 걸어서 수술실로 들어가서 말짱한 맨 정신으로 쇄석위(다리를 벌린 자세)를 취하고 소독을 하고 기다렸다. 의사가 와서 “조금 불편합니다”라고 말하고는 소변줄을 뺄 때처럼 슈슈슉 하고 끝나버렸다. 스텐트를 빼고 수술복을 벗으려고 움직이는데 벌써부터 배와 허리가 편해진 게 느껴졌다. 이제 다 좋아질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아직 신장에 결석이 하나 더 남아 있다. 이 결석이 또 요관으로 빠져나올 때 같은 일을 겪어야 한다고 생각하니 암담하기도 하다. 그때도 지금처럼 소변으로 나올지도 모르니까 수술하지 말고 좀더 기다려보자고 말해볼까 싶기도 하다.


다낭신 환자는 다낭신이 없는 일반 사람들보다 요로 결석이 생길 확률이 2~3배 정도 높다. 결석이 있으면 식이관리를 잘하라고도 하는데-물 많이 마시기, 싱겁게 먹기, 육류 섭취 줄이기, 과일 채소 많이- 내가 물을 하루에 얼마나 많이 마시며, 내가 짜게 먹어봤자 얼마나 짜게 먹으며, 고기를 먹어봤자 얼마나 먹겠는가. 다낭신 때문에 물은 하루에 3리터를 마시고, 대부분의 음식을 밍밍하게 먹는 데다, 빈혈 때문에 섭취하는 고기도 손바닥 반 정도 양에, 요즘에는 밥 한그릇만 먹어도 배가 아파서 잠을 못 자는데. 관리는 무슨. 

그냥 운이다, 운!


 수술한지 10일 정도 지났다. 이제는 체력도 좀 돌아오고 배도 안 아프다. 살 만해서 글도 쓴다. 아플 때는 영원히 아플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아프지 않은 잠깐이 지나면 계속 이어지는 통증의 영원이 지속되는게 인생인 것 같은. 다낭신을 겪고 있는 분들과 신장·요로 결석으로 힘든 분들 모두 힘내셨으면 좋겠다. 사실 우리 앞으로 남은 인생 중에 안 아픈 날보다 아픈 날이 더 많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개중에 안 아픈 날을 아픈 날 때문에 망치지 말자. 안 아픈 날은 아쉬움이 남지 않도록 행복하게 보내자. 좋아하는 일을 하고,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고, 최대한 즐거움을 찾으면서 살자. 나한테 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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