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부터 2022년을 돌아봤다. 실패로 점철된 한 해였다.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심혈을 기울여 단편소설을 몇 편 썼다. 그 중 잘 쓴 한 편을 고치고 고치고 고쳐서 여러 공모전에 냈다. 세 번 떨어졌다. 브런치북 출판 공모전에 '포도송이 콩팥이랑 알콩달콩'을 공모했다. 떨어졌다. 이사를 가느라 전에 살던 집을 큰 손해를 보면서 팔았다. 행복하게 살던 우리 집을 그렇게 큰 손해를 보고 파는데도 매수자는 끊임없이 집의 흉을 봤다. 내 추억이 훼손되는 느낌이었다. 학부 졸업 전공과는 다른 과의 대학원 입학을 위해서 준비하고 있다. 1월 초에 면접을 보는데 만약에 이것도 떨어진다면, 2022년은 그야말로 실패의 한 해이다. 준비한 모든 것이 떨어지고 손해를 보게 되는 셈이다.
속상한 마음에 남편에게 얘기를 할까 싶다가도 남편은 이해해주지 않을 것 같아서 하지 않기로 했다. 남편은 시크릿을 믿는 사람이다. 내가 대학원에도 떨어지면 '실패의 한 해'를 보낸 셈이라는 얘기를 꺼내면 왜 대학원에 불합격하리라고 생각하냐고, 합격만 생각하라고, 왜 실패를 떠올리냐고 성공을 떠올리라고 할 것이다. 타고나길 비관주의 쪽으로 살짝 기울어진 현실주의자에게는 힘든 요청이다.
이런 생각으로 며칠을 보내고 침대에 누워 유튜브로 베이킹 영상을 보다가(나는 제과제빵을 할 줄 모르지만 빵이나 과자를 만드는 영상을 보면 마음이 차분해져서 보기를 즐긴다) 내 한 해는 그게 다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침, 오후에 스트레칭을 하는 습관이 있다. 매일 하지는 않지만 한 달에 적어도 10회, 많게는 20회는 한다. 이 정도면 '띄엄띄엄하는 습관'이 잘 붙은 편이다. 다낭신으로 조금만 과식을 해도 복통이 생기는 바람에 소식을 하면서 천천히 먹는 습관을 들였다. 최근에는 과식 때문에 아픈 일이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 일주일마다 도착하는 시사인도 꼬박꼬박 읽었고 많이 읽진 않았지만 한 달에 한 권 정도, 책도 꾸준히 읽었다.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했고, 집안일도 적당히 하고 있다.
매일 매일 하루를 살긴 살았다. 중도 포기하지 않고. 그게 중요한 거다.
계속 실패할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가끔은 성공할지도. 내가 너무 하찮아서 죽고 싶을 때는 상상을 한다.
외계인이 갑자기 하늘에 나타나고 인류를 포획하기 시작한다. 끌려가던 중에 앞에서 걷던 어린 아이가 넘어지면서 외계인의 심기를 건드린다. 외계인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만드는 광선총을 아이를 향해 겨누는데, 그때, 아이 대신 내가 맞는 거다. 그 순간을 위해 나는 살았던 거다.
전쟁이 일어나 지역구민들이 대피소에 모두 모여 있다. 배급받은 식량은 턱없이 부족하다. 옆 이불에서 지내는 어린 아이가 배가 고프다며 칭얼된다. 그러면 내가 배급받은 식량을 아이에게 건네준다. 그 순간을 위해 나는 사는 거다.
어이가 없을지도 모르겠지만 이런 생각을 하면 내게는 꽤 도움이 된다. 지금이야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잉여인간이지만 미래에는 무슨 일이 있을지 모르고 긴박한 순간에 내가 누군가에게 큰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못났던 2022년을 아끼면서 보내주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