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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일리 Sep 01. 2020

육식주의자의 제로 웨이스트

휘뚜루 마뚜루 대충 해보는 환경 운동

기후위기는 더 이상 위기가 아니라 막을 수 없는 재난이다.
인류는 기후재난으로 멸망할 것이며 이는 사실이고 단지 시간문제일 뿐이다.  

우리의 세상은 더 이상 지속 가능하지 않다.

'내'가 움직이지 않는다면.


잘 알고는 있다.   

그렇지만 나는 꽤 오랜 시간 동안 이 기후재난에 대해 행동을 촉구하는 양심을 가슴속 깊은 곳에 꽁꽁 숨겨두고 애써 눈을 흐리며 지나쳐왔다.

왜냐하면 나는 세상이 내일 멸망한다고 해도 고기를 절대 끊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육류 소비가 현재 기후재난의 가장 큰 원인이 되고 있음을 알고는 있었지만 행동할 수는 없었다.

삼시세끼 반찬으로 삼겹살을 구워 먹고 간식으로도 육포를 뜯는 나에게 고기를 끊으라는 것은 사형선고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던 어느 여름휴가, 다이빙을 즐기던 바닷속에서, 죽어버린 산호들의 무덤과 쓰레기에 엉켜 씨름하다 지친 거북이의 슬픈 눈을 보고서야 결심했다.

나에게 주어진 이 도덕적 책무를 '나 하나쯤이야'생각으로 더 이상 무시할 수 없음을,

'나 하나부터’ 행동을 시작해야 함을.


오래전부터 채식을 주장해오던 녹색당 남편은 쌍수를 들며 "드디어 우리도 채식주의자가 되는 거야?"

하고 좋아했지만 나는 잔머리를 굴려 고기를 완전히 끊지 않고도 환경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았다.

그래서 도전한 '제로 웨이스트'


내가 좋아하는 홍콩의 제로웨이스트 스토어, Slowood 각종 먹을 것부터 입을 것 쓸 것 모두 리필해서 쓸 수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주 꾸준~하게 실패 !

개인으로서 할 수 있는 가장 큰 환경운동은 육류 소비를 끊는 것이지만 그 외 모든 활동들은 사실 바위로 계란 후려치기나 마찬가지였다.

지속 가능하지 않는 소비의 가장 큰 굴레는 기업들이었다.

그들의 어마어마한 플라스틱 생산과 소비는 나 하나가 개인 용기를 들고 다닌다 한들 막기 어려웠다.

매번 개인 용기를 바리바리 싸들고 장렬하게 장을 보러 가지만, 결국 양 손 가득히 더 많은 플라스틱 쓰레기를 들고 돌아오게 되는 이 악의 굴레...


"먹고 싶은 것 마시고 싶은 것 다 참아가면서 열심히 제로 웨이스트 하려고 노력했는데 바뀐 것은 아무것도 없어! 매일 내가 사 오는 쓰레기 양은 똑같고 내 죄책감만 늘어갈 뿐이야!"


하고 울상을 짓는 나에게 남편이 말했다.


"네가 개인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은 사실 없어. 네가 지금 들고 있는 빨대 하나 아낀다고 해서 환경이 바뀌진 않아. 네가 아니라 소비를 제공하는 기업과 정부가 바뀌어야 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주변에 영향을 끼치는 일이야."


그도 어디서 읽고 한 말이었겠지만 정말 그랬다.

한 행동심리학자의 말을 인용하자면 사람은 자신이 어떻게 행동할지 결정하기 위해 주위 사람들을 먼저 본다고 했다.

그래서 직접 행동으로 나서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이를 따라 하는 사람도 많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현재 내가 하는 휘뚜루마뚜루 제로 웨이스트 운동에 주변 사람들을 끌어들이기 시작했다.


소비가 아닌 행동의 전시

누구나 할 수 있는 가장 큰 환경운동이라고 한다.

바로 '편리함을 전시하지 않는 것'

견물생심이라고 인터넷에 올라오는 맛있는 고기 사진과 예쁜 패키지를 보면 누구나 먹고 사고 싶어 진다.

나 역시 내 핸드폰 속에는 맛있는 음식 사진이 잔뜩 있지만 어느 순간부터 이를 공유하는 것을 중단했고 맛있는 먹방도 안 본 지 오래이다.

이런 소비의 소비를 부르는 '소비 파티'를 근절하고자 함이다.

대신 내가 실천하는 불편함을 더 자랑하려고 노력 중이다.

NO MEAT MONDAY (고기 없는 월요일)에 먹는 맛있는 비빔밥과 개인 용기에 담아오느라 뭉개진 케이크 사진 등 예쁘게 전시된 나의 작은 행동을 보고 친구도 행동을 결심할 수 있다면, 고기 500g 덜 먹는 것보다 훨씬 효과적이지 않을까?

 

블랙컨슈머??
소리 내는 그린 컨슈머 (Green Consumer)

제로 웨이스트에서 가장 큰 단점은 '불편함'이 아니라 '낭패감'이다.

시장에서 구매할 수 있는 것의 옵션이 많지 않아 어쩔 수 없이 비환경 제품을 사야 할 때의 그 낭패감과 죄책감이 가장 힘든 부분이다.

그래서 우리 모두 소리 내는 블랙컨슈머가 되어야 한다.

제로 웨이스트를 실패하게 만든 기업에게 불평하고 투정하며 죄책감의 책임을 우리가 아닌 그들에게 돌려야 한다.

개별 비닐 포장을 해둔 빵집 사장님에게 비닐 포장 때문에 빵을 살 수 없다고 불평하자. 본사 방침이라면 본사에 메일을 쓰자. 이 불평들이 모여 빵집마다 포장되지 않는 빵이 한 줄씩 생기고 우리는 그린 컨슈머가 될 수 있다.


기후재난을 막는 종이 한 장, 투표

개인이 할 수 있는 또 하나의 가장 큰 행동은 바로 투표이다. 위에서도 말했지만 기후재난은 기업과 정부 단위로 움직여야 하기 때문에 기후 재난을 재난으로 인지하고 국가 단위에서 대처할 수 있는 지도자를 뽑아야 한다.

현재 한국의 온실가스 배출 증가율은 OECD 국가 중 1위이다.

국가적으로 온실가스 배출에 대한 제재가 사실상 전무하다는 소리다. 우리나라에서도 그린 뉴딜이 언급된 지 여러 해가 지났지만 본격적으로 그린 뉴딜에 대한 정책이나 진척 속도는 지지부진하다.

때문에 우리는 투표를 통해 지도자들이 환경 관련 정책에 대해 더 관심을 갖고 눈치를 보도록 압박해야 한다.

대통령도 끌어내렸던 민주주의의 나라에서 무엇이 어렵겠는가?

총선에서 녹색당 말고도 하나둘씩 환경 관련 정책을 밀어 넣는 것을 보면 우리나라도 곧 변화할 수 있다고 굳게 믿는다.

Netflix Original Show 'The Politician' 잘 뽑은 지도자 하나가 우리 동네 공기 질을 바꿀 수 있다

오늘 장 보러 간 마트에서는 새빨간 설탕의 유혹을 참지 못하고... 그만 막대사탕을 사버렸다.

찰나의 달콤함 끝에 남은 플라스틱 막대기가 후회스러웠다.

버릴까 하다가 플라스틱 막대기가 꽂힌 채 나를 원망할 미래의 갈매기가 생각나 차마 버리지는 못하고 터덜터덜 들고 들어와 연필꽂이에 꽂아두었다.

언젠가 쓰임새가 있을 날이 와서 나의 죄책감을 덜기 위해....


이렇게 나의 제로 웨이스트는 이론은 빠삭하지만 매일매일 실패의 연속이다.

단 하루도 쓰레기가 'ZERO'된 날이 없었다.

편리함의 죄책감과 불편함에서 오는 자기 성취감이 되풀이될 뿐이다.

하지만 인간의 모든 발전의 시발점은 죄책감과 불편함 아니던가?


죽을 것 같았던 고기 없는 월요일 (No Meat Monday)을 처음 시작했을 때 물론 나는 죽지 않았고, 내가 만든 채식은 꽤 귀엽고 의외로 맛있었다.

게다가 이 채식에 성공했다는 자기 효능감이 점점 고취되어 NO MEAT FRIDAY까지 채식 데이를 이틀로 늘렸다.

그리고 곧 다가오는 고기 없는 11월 (No-meat-vember)에 도전하기 위해 여러 가지 채식 레시피를 수집하고 있다. (페스토 정도의 채식이지만...)

고기를 줄이자는 남편의 애원에도 고기를 끊느니 이혼을 하겠다던 내가 이렇게 바뀐 것은 '제로' 웨이스트에 실패한 나의 죄책감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첫 고기없는 월요일의 채식 요리, 두부 캐서롤! 야채를 또각또각 써는 느낌이 좋다.


이 자기만족에 지나지 않을 불편함이 나의 일상이 되고,

나의 일상을 보고 다른 이들이 '불편함'으로 환경 운동을 위한 한 걸음을 내딛을 때까지,

이 엉망진창의 휘뚜루마뚜루 제로 아닌 제로 웨이스트는 계속될 것이다.  



+내가 실천하고 있는 휘뚜루마뚜루 제로 웨이스트 작지만 큰 변화들

대나무 칫솔모가 단단해서 의외로 치석제거와 잇몸건강에 좋아요!

정육점에 갈 때는 스테인리스 용기를 가져가는데 비닐보다 더 위생적이고 소분해 얼린 고기도 용기에서 쉽게 떨어져서 사용하기 좋아요!  

노어플리케이터 탐폰을 사용하는데 덕분에 화장실에 쓰레기통이 필요 없어졌어요.

샴푸, 클렌저, 핸드워시, 주방세제 등 액체 비누류를 최대한 고체 비누로 바꾸거나 리필샵에서 액체만 구입해서 사용하고 있어요.

NO DELIVERY ! 집안 쓰레기 중 가장 많이 발생하는 것이 바로 배달 포장 용기예요. 배달음식을 끊고는 만들어먹거나, 아니면 나가서 외식을 해요. 코로나로 외식이 금지됐을 때에는 주문 후 직접 찾아가서 음식을 개인 용기에 받아와요. 쓰레기도 쓰레기지만 눈에 띄게 절약되는 식비가 가장 큰 장점!

재래시장=제로 웨이스트 마켓, 사실 대형 마트는 대량 포장 판매가 많아 쓰레기를 만들지 않기 어려워요. 하지만 재래시장은 원하는 만큼의 과채소와 곡식류를 원하는 용기에 담아올 수 있어 좋아요! 가격도 더 저렴하고 더 신선해요!

맥주도 테이크아웃! 고기 안주가 자꾸 당기기 때문에 집에서 음주는 최대한 자제하고 있어요. 하지만 친구들과 파티하거나 유독 술이 필요한 날에는 Growler라는 대용량 맥주 전용 저그(Jug)에 생맥주를 직접 사 와서 마셔요. 수제 맥주를 파는 펍에서는 맥주 테이크아웃이 꽤 흔해서 흔쾌히 담아준답니다.

두부는 채식의 생명줄과 같은 존재예요. 맛도 좋지만 여러 가지 질감의 종류도 많아서 고기를 대체하기 아주 좋아요. 언두부(동두부)는 스펀지처럼 육수를 빨아들여 라면의 차슈 고기를 대체할 수 있고, 두부를 만들 때 겉에 생기는 얇은 막을 걷어내어 말린 푸주는 꼬들꼬들한 식감으로 볶음 요리에 좋아요. 그 외에도 건두부, 건두부의 껍질로 만든 두부 누들 등 팔색조의 매력을 갖고 있는 두부를 만나고 고기에 대한 집착을 쉽게 버릴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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