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나고 보니, 대부분의 사람이 그러하듯 나는 저 높은 산 위의 굳건한 바위라기보다는 작고 귀여운 계란이었다. 마트에 일렬로 가지런히 자리한 계란들. 이 계란과 저 계란이 무엇이 다른지 전문적인 계란 감별사가 아니고서야 구별하기도 어려울 만큼 고만고만하게 생긴 계란 한 알. 생김새만큼 영양가도 평균인 계란. 그런 계란들이 모여서 몸을 함께 던지면 콧대 높은 세상의 바위들은 과연 상처를 입을 수 있을까. 저 완벽한 경사면에 작은 자국이라도 날까. 그게 이 ‘서른의 반격’이라는 책의 시작이 아닐까 했다.
책은 제목부터 달콤했다.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까. 우선 ‘반격’이라는 단어가 내 마음을 자극했다. 사회생활을 해 본 자라면 느낄 것이다. 세상은 매번 ‘반격’하고 싶은 일들의 연속이었다. 반격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다는 것은, 부조리를 나도 모르게 묵인하고 승인하며 심지어는 계승하는 일이 되기도 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이해가 되지 않던 일 투성이었다. 버티기 위해서는 생각을 멈추는 수 밖에는 없었다. 그런데도 이따금씩 욱하고 의문점이 차올랐다. 어딘가를 향해 알 수 없는 분노를 풀고 싶기도 했고,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서 문제를 향해 아무런 반격도 하지 못한 채 자극적인 소비와 욕망에 올인했던 이 시대의 평범한 사회 초년생이 나의 모습이었는지도 모른다. 만일 내가 반격을 했다면, 작고 작은 나라는 존재가 과연 무얼 할 수 있었을까. 내가 괜한 반격을 했다가 나만 이 사회에서 도태되는 것은 아닐까. 덜 익은 용기와 불안, 그리고 억울함과 참담함의 교차 속에서 서성이던 날들을 지금도 많은 이십 대 후반과 삼십 대들이 겪고 있을지 모르겠다.
이 책에서는, 그중에서도 처음 세상의 부조리와 맞닿아 가기 시작한 서른이 된 두 남녀를 메인 주인공으로 내세운다. 어느 정도 사회적 위치가 올라가, 사회 속에서 파워를 가지고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40-50대가 반란을 벌여도 통할까 말까인데, 이 발칙하고 어린 서른들이 과연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서른’이 할 수 있는 반격이란 대체 무엇일까? 두근거리며 책을 집었다. 사실은, 엄청나게 바라며 책을 잡았다. 현실이 아닌 소설 속에서라도 무언가 반란을 일으켜 답답한 내 속을 대신 통쾌하게 청소해 주길 기도했다. 그런데, 책은 다른 의미로 속을 청량하게 해 주었다.
소설은 88년생 지혜의 이야기로 시작하면서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남들처럼 열심히 살았고 공부했지만 정규직 전환을 기대하며 인턴이라는 이름의 노동력 착취를 버텨가는 지혜의 삶. 언제 앞으로 더 굴러갈 수 있을지도, 언제 병아리로 부화할 수 있을지도 알 수 없었지만 그렇게 조용히 계란으로 깨지지만 않고 사는 것이 보통의 심장을 가진 우리네의 모습일 것이다. 무례하고도 차별적인 상사 앞에서 오늘도 그녀는 점심시간 가상의 친구까지 만들어 내며 겨우 숨 쉬는 시간을 만들고 있다. 그런 그녀 앞에, 조금 다른 계란이 나타난다. 바위에 몸을 내던져보는 일에 의미를 두는 한 뜨거운 심장을 가진 규옥이라는 이름의 계란이. 그리고 그들이 교감하며 벌이는 반격은 유쾌하고도 참으로 소소하다. 책을 끝까지 읽어 내려가면서 혹시라도 세상을 흔드는 엄청난 전개나 반격이 있지 않을까 했으나 그런 것은 없었다.
그래도 그들의 반격 이야기는, 희망적이었다. 위안이 되었다. 그들이 반격을 벌인다고 해서 세상이 크게 움찔하지는 않았지만, 영향을 받은 개인들이 있었다. 나중에라도 그 언젠가 그들이 던진 작은 계란을 누군가는 떠올릴 것이다.
책을 읽으며 80-90년대 생인 나와 내 주변의 사람들에 대해 계속 생각했다. 이 책을 읽고 공감하고 또 분노하고 또 웃다가 괴로워하기도 할 한국사회를 살아내고 있는 많은 얼굴이 지나갔다. 한 살 한 살 먹을수록 낯빛이 어두워지는 그들의 모습에서 우리 사회의 빛을 가늠해 본다. 다들 마음속에 억울함이 차오르는데 그게 무어라고 말하지 못했던 이유는, 작은 부당함과 불의들을 사회에 나오면서부터 조금씩 참아오는 습관을 들였기 때문인 것 같다. 다 그렇게 하니까, 몸을 던져도 아무것도 변하지 않을 것이니까, 그래야만 하는 줄 알았다.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것을 이 유쾌한 소설은 시사한다. 우리는 소소하게라도 반항했어야 했고, 반항할 수 있는 작지만 반짝이는 계란들이다. 던져진 계란은 어쨌든 바위에 터져서 흔적을 남길 터이다. 무엇보다 한 번이라도 반격을 해본 자와 그렇지 않은 자의 삶은 다른 방향을 향해 갈 것이다.
반격의 맛을 아는 자는, 불합리한 상황을 다시 마주했을 때 작은 반항이라도 할 수 있는 본인 자신을 믿을 수 있게 될 것이다. 그 힘은 엄청나다. 설령 반격의 결과가 기대한 바와 다르다 하더라도, 실패는 후대에 더 나은 변화와 도전을 불러일으킬 것이고, 결국은 커다란 변화의 초석이 될 것이다.
이 책이 만일 서른의 반격들로 엄청난 일들을 이뤄내는 걸 그렸다면, 나는 이것을 완전한 소설로 치부해 순간의 쾌감만을 느끼고 덮었을지 모르겠다. 소설은 역시 소설일 뿐이라면서 말이다. 그렇지만 그들이 함께 작당하여 작은 반격을 벌이고, 결국은 크게 바뀐 일 없는 사회 속에서도 다만 자신을 조금 더 믿고 묵묵히 현실을 살아나가는 엔딩이 좋았다. 그들의 다음 스텝을 기대하고 응원하게 되었다. 그들처럼 작은 반격을 벌이는 이들이 실제로 이 사회 어딘가에 잔뜩 숨어있을 것만 같아서 키득키득 웃음이 났다. 나도 작은 반란쯤은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용기가 조용히 차올라왔다. 어딘가 모르게 통쾌한 바람이 심장을 살랑이고 지나가는 기분이었다.
이 소설을 읽고 살아오면서 반격해야 했지만 못했던 일들을 떠올려 보거나, 다음에 반격할 상황을 마주했을 때 어떻게 행동할지를 구체적으로 상상해보았다. 자신을 이용한 나쁜 사람에게 큰 타격까지는 주지 못했더라도, 다만 그 상대방에게 잘못했다고 크게 소리 지르는 것, 그것만으로도 마음에 체증이 내려가는 것 같았다는 규옥의 이야기를 다시 한번 되새겨본다. 그렇게 조금씩은 바뀔 세상과, 그리고 더 단단해질 나를 기대하면서, 책장을 덮는다.
뜨거운 사막의 무더위 속, 그늘에서 순간 마주한 한 줌의 바람. 그런 아주 소소한 유쾌함과 반격이 이 소설에는 있었다. 작은 반격을 준비할 힘을 얻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