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옛날 낭랑하고 또랑또랑한 목소리를 가진 인어공주가 살고 있었어요. 그녀의 목소리는 정말이지 아름다웠어요. 그녀가 단어를 골라내어 말을 시작하면 사람들은 어느새 귀를 쫑긋해 그녀 가까이로 모여들기 시작했어요. 그녀가 무언가를 주장하면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이내 수긍했지요. 그녀가 살고 있는 바닷속 예쁜 도시에서는 그녀의 명성이 자자했어요. 인어공주의 아비이자 바다의 수호신이었던 용왕은 그녀를 무엇보다 보석처럼 아끼고 사랑했어요.
“나에게는 정말 예쁜 목소리를 지닌 딸이 있습니다, 허허허. 그녀는 그 구슬 같은 음색으로 모든 왕국의 사람들에게 사랑받지요. 그녀와 함께라면 그 무엇도 무섭지 않아요. 우리 부녀는 앞으로도 영원히 행복한 바다 왕궁을 꾸릴 거랍니다. 허허허 ”
왕은 딸만 있다면 행복했고 인어공주도 늘 꿈결처럼 즐거웠어요. 인어공주도 타고난 자신의 목소리를 사랑했어요. 좋은 말과 의견을 많이 전해서 왕궁을 발전시키고, 아름다운 시의 문장들을 널리 읽어 퍼트리는 것은 그녀의 기쁨이었지요. 그녀는 자신의 인생이 계속 순탄하고 아름답게 채색되어 가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는 바다에 빠진 인간 세계의 한 남자 인간을 구해주고 말았어요. 태풍으로 갑자기 부서진 선박 사이로 한 남자 인간이 바다에 떨어졌어요. 의식을 잃고 떠내려가는 인간 왕자를 그녀는 지나칠 수 없었어요. 숨 쉴 수 있게 해변까지만 데려다주고 응급처치를 해주고 가야지. 책에서 배운 모양대로 그의 입술에 그녀의 입술을 포개어 인공호흡을 시도하던 순간, 그녀는 지금까지 듣도 보도 못한 새로운 세상이 열리는 소리를 들었죠. 평화롭게 귓가를 스치던 바다의 물결 소리 대신에요, 둥 둥 둥!! 큰 북이 울리는 소리가 났는데 그건 아마도 그녀 자신의 심장 소리 같았어요. 그렇게 크게 뛰며 소리를 낼 수 있는 기관이 내 안에 있었구나, 그녀는 스스로도 깜짝 놀랐어요. 왕자는 서서히 눈을 떴고 그 얼굴은 그녀가 태어나서 본 중에 가장 잘생긴 얼굴이었어요.
“사랑해요. 첫눈에 사랑하게 되었어요.”
하마터면 그에게 그렇게 말해버릴 뻔했지만 그녀는 순간 흥분해서 퍼덕이는 자신의 꼬리 감각을 느꼈어요. 미끌미끌하고 무지갯빛 비늘이 달린 자신의 꼬리. 왕자님이 보면 놀랄지도 몰라, 나는 인간처럼 길고 매끈한 두 개의 다리가 없는걸.. 그녀는 순간 눈물이 날 것 같았어요.
왕자가 내 꼬리를 보고 놀라서 도망치면 어쩌지? 왕자가 제대로 정신을 차리기 전에 집으로 돌아가야 해, 나의 집, 나의 바닷속으로 돌아가면 이런 감정은 사라질지도 몰라. 인어공주는 애써 자신을 달래며 바다로 들어갔어요. 왜인지 모르게 눈에 눈물이 고였어요. 중요한 뭔가를 잃은 듯 심장이 아렸어요. 늘 자신감 있게 움직이던 그녀의 꼬리지느러미가 흐느적거렸어요. 비늘 어딘가에 불이라도 붙은 냥 온몸과 마음이 따끔거렸어요. 사랑이라는 달콤함과 실연이라는 강한 슬픔이 떼어지지 않는 강한 문어의 빨판처럼 그녀에게 진득이 들러붙었어요.
세상모르게 순진했던 그녀의 가슴에 기쁨과 절망이 한꺼번에 내린 날이었어요.
따스한 인간 남자의 숨결.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 봤던 설레는 그 얼굴. 숨결에서 느껴지던 알 수 없던 인간 남자의 뜨거운 내음. 어지러울 만큼 낯선 내음이었지만 다시 한번만, 다시 한번만 더 맡아보고 싶던 인간 사람의 냄새. 주체할 수 없이 매일 뛰는 그녀의 심장에 그녀는 그날 이후로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어요.
인어공주는 하루 중 가장 좋아하던 시간인 ‘어린 물고기를 위한 동화 낭독회‘에도 참여할 수가 없었어요. 열대어들과 함께 궁전 한 바퀴를 달리며 시합하는 소중한 오후 일과에도 갈 수 없었어요. 그녀에게는 더 이상 “자아- 출발!”하고 우렁차게 시작 신호를 할 힘이 없었죠. 옆 바다 왕궁으로 빨리 가기 위한 물길을 공사하는 안건이 용궁 회의에 올라왔을 때도 그녀는 평소처럼 사람들을 설득할 수가 없었어요. 사랑하는 아빠의 얼굴을 봐도, 애정 하던 물고기 친구들을 만나도, 그녀는 오로지 인간 왕자님의 얼굴만 떠올랐어요.
그가 보고 싶어, 그가 보고 싶어. 그와 함께 있고 싶어. 그의 심장소리를 들으며 살고 싶어. 지금껏 살아왔던 나를 모조리 버려도 좋아. 그 순간에 있고 싶어. 그의 얼굴을 만지고, 그의 입술에서 나오는 내음을 느끼고 싶어.
누구에게도 말로 소리 내어 할 수 없는 생각들이 인어공주의 마음 안에 가득 차올랐어요. 그녀는 점점 말수를 잃어갔어요. 인어공주의 아버지인 용왕도 슬퍼졌어요. 딸은 목소리를 잃지 않았지만 목소리를 잃은 것처럼 살아가고 있었어요. 어느 날부터 말을 거의 하지 않았고, 더 이상 그 아름다운 목소리로 자신에게 노래를 불러 주거나 동화 속의 파랑새처럼 지저귀지 않았어요. 그래도 그녀는 딸을 사랑했지만, 그녀가 그렇게 계속 슬퍼하도록 내버려 둘 수가 없었어요.
그는 그녀를 마녀에게 보내기로 결심했어요. 무언가 그녀가 강하게 원하는 것을 마녀라면 알아채고 줄 수 있을 테니까요. 그래서 딸을 지금처럼 자주 볼 수 없다 하더라도, 왕궁의 일들이 그녀의 아름다운 목소리의 도움으로 술술 풀리지 않더라도, 그 자신이 그 슬픔을 감내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왕은 세상의 모든 아비가 그러하듯 극진히 그녀의 딸을 사랑했어요. 딸이 잘못된 길로 갈 때 자신의 모든 것을 버려 막을 수는 있겠지만, 그래도 그것이 딸이 원하는 길이라면 보내주어야 함을, 그는 딸이 태어난 순간부터 알고 있었죠. 신의 축복이 언제까지 계속되지 않을 것임을, 그녀는 언젠가 떠나갈 것임을요. 그게 아비가 책임지고 버텨내야 할 운명임을요. 슬픈 용왕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어요. 그의 눈에서 눈물이 하염없이 떨어지기 시작하자, 며칠이고 바다에는 태풍이 몰아 쳤어요. 물결의 일렁임이 거세지고 비바람은 멈출 줄을 몰랐죠. 모든 바다 생물들이 함께 바위 밑에 숨어서 울었어요. 그 며칠간은 아마도 인어공주가 태어난 이래로 가장 슬픈 바다의 날들이었을 테지요.
드디어 마녀가 도착했어요.
“인어공주야, 아름다운 너의 목소리와 인간의 다리를 바꾸겠느냐. 그렇게 해서 인간 왕자를 만나러 가겠느냐”
“네. 마녀님. 그렇게 해주세요.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인간의 다리와 제 목소리를 바꿔주세요”
세상에서 제일 아름답던 인어공주의 목소리는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인간의 다리와 바뀌었어요. 누구라도 그 다리를 보면 뒤돌아 볼 만큼이요. 인어공주가 당당히 바다에서 해변으로 걸어 나가요. 저기 왕자님이 보이네요. 아름다운 얼굴에 황금 같은 머릿결, 완벽한 각선미의 인간의 다리. 이제 왕자가 인어공주에게 반할 타이밍이에요!
사람이 된 인어공주와 인간 왕자는 결국 행복하게 살았겠지만, 요즘도 바다에는 때때로 예측할 수 없을 만큼 커다란 태풍이나 해일이 일어나곤 해요. 인어공주가 너무 보고 싶은 용왕이 거세게 우니까요. 용왕은 매일 아침 세수를 할 때마다 조금씩 눈물을 흘려요. 인간의 시간과 달리 바닷속의 시간은 느리고 느리니까요. 그 때문에 바다의 물결이 흔들리고 해변가에 파도가 밀려와요. 딸의 행복을 위해서 자신의 행복을 포기한 한 바닷속 남자의 눈물이 오늘도 흘러넘치고 있어요. 파도가 솨아- 하고 거품을 일으켜요. 용왕은 또 인어공주가 보고 싶나 봐요.
슬픈 아빠의 눈물, 바다의 눈물.. 파도에는 그런 전설이 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