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아와 기적

울다가 웃으면, 얼레리 꼴레리

by 톨슈

어떤 노래들은 마치 주문처럼 들으면 들을수록 나에게 말을 거는 것 같다. 부르면 부를수록 정확히 나의 심정 같고, 정확히 한 순간의 공기와 감동을 불러 온다. 들을수록 더욱 나의 심장 가까이로 다가오는 그녀의 노래와 얽힌 추억을 남겨두려 한다.


'보아'라는 가수는 데뷔전부터 다양한 매체를 통해서 그녀의 준비과정이 알려졌었고, 나는 점점 그녀의 이야기에 빠지다 못해 마치 내 꿈인것 처럼 그녀의 꿈을 열렬히 응원하게 되었다. 소위 덕질의 시작이었다. 나는 그녀의 노래에 늘 울고 웃었다. 그리고 홀로 그녀의 일본 콘서트에 가는 것이 돈있는 어른이 되고픈 이유 중의 하나였었다. 일본어를 공부했고, 경비를 마련하기 위해서 학창시절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그녀가 노래하던 진심 섞인 외로움은 실로 절절했다. 가족과 함께 있어도 어딘가 외롭던 서울의 나는, 일본에서 홀로 활동하며 아픈데도 위로해 줄 사람 하나 없었던 그녀의 순간이 참 마음이 아팠었다. 그때의 그녀가 가사를 쓴 노래. <Moon&Sunrise>. 처음 그 노래를 들을 때부터 알 수 없는 끌림을 느꼈다. 그리고 매일 듣던 그 노래가 평생 잊을 수 없는 노래가 된 것은, 어느 날의 기적 같은 사건을 통해서였다.





“정말 괜찮으시겠어요? 진짜요? 정말 이 표 저 그냥 주시는 거 맞는 거죠?

감사해요 흑 어흑 너무 좋아서 제가.. 흑 근데 너무 미안해서요.. 흑 - 감사해요.. 고마워요..

잊지 않을게요 흑 정말, 정말 감사해요-”


갓 어른이 되었던 나는,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고인 채로 외치고 외쳤다. 도시 도쿄의 어느 곳, 보아의 노래가 뿜어져 나오는 콘서트장 밖으로 나는 한 일본인 남성을 향해 간절한 일본어를 내뱉고 있었다. 남자는 다정한 눈빛과 말투로 말했다.


“저는 다음 콘서트 표가 있어요. 그러니까, 정말 괜찮아요. 어서 이 표를 가지고 저 안으로 들어가서 즐겨요. 빨리요!”


지금 생각해도 드라마의 한 순간처럼 믿기지가 않는다. 미리 표를 구하지 못해서 일단 가서 콘서트의 암표를 살 생각이었다. 무턱대고 도쿄행 비행기에 올랐던 어린 어른의 가을. 서울 집의 출발시간에서부터 치면 일곱 시간 이상을 지하철을 타고, 버스를 타고, 비행기를 타고, 열차를 타고, 택시를 타고 - 그렇게 도착한 곳이었는데, 그 어디에도 암표상은 보이지 않았다. 내가 이 날 하루를 위해서 몇 달을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드디어 그녀의 일본 콘서트를 눈앞에서 보는 꿈이 실현되는 날인데. 현실이 믿기지 않았다.


매표소에 가서 울부짖었다. 얼마라도 좋으니까, 정말 표를 구할 수 없는 거냐고. 매진이라 어쩔 수 없다는 사무적인 직원의 발언 앞에 나는 도쿄의 길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 눈물이 차올랐다. 엉엉 울고 있는데 어디선가 나타난 일본인 청년. 그는 나에게 조심스럽게 자신의 표로 콘서트에 들어가도 된다고 말해주었다. 그리고 몇 번이나 값을 묻는 내 앞에서 정말로 괜찮다며, 무료로 표를 주었다. 내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고. 정말 괜찮다고. 팬끼리는 이렇게 도와주는 거라고. 다시 이렇게 쓰고 있는 지금도 믿기지 않는 다정함이었다.





그렇게 들어간 콘서트장. 한창 진행 중인 콘서트 사이로, 피아노 반주만을 둔 애절한 보아의 목소리가 흘렀다. “푸른 하늘은 언제나 똑같아서 고독하고 신기한 수수께끼 같아...” 첫 소절이 들리는데, 가장 좋아했던 노래이기도 했고 결국은 콘서트장에 들어온 내 상황이 믿기지가 않기도 하고, 그렇게 라이브를 듣고 있다는 것이 더없이 기쁘기도 했다. 눈물이 줄줄줄 흘러내리는데, 좋아서 웃음이 헤실헤실 나왔다. 태어나서 그렇게 심하게 엉엉 울다가 웃으며 노래를 목청껏 따라 부른 것은 처음이자 마지막이 아니었을까. 울다가 웃으면 엄마가 큰일 난다고 했는데, 맘껏 울다가 웃으니까 정말이지 커다란 개운함과 행복이 밀려오는 듯했다.


보아의 곡 문앤썬 라이즈의 마지막 구절은 이렇다.


“거짓이라도 웃어 보이는 건 멋진 일이야. 눈물만이 솔직하게 울고 있어. 다시 만나면, 웃을 수 있도록.”



나는 이 노래 라이브를 직접 듣게 되었던 말도 안 되는 운명에 휩쓸리면서 ‘운명’이란 것을 믿게 되었고, 사람의 온정을 믿게 되었다. 그 일은 세상에 대한 따뜻함을 글자가 아닌 마음속 깊이 내게 심어 주었고, 여전히 살기 힘든 현실 속에서도 미래에 다가올 행운을 기대하게 만들었다. 비록 더 많이 큰 지금도 자주 눈물이 흐르는 삶 속에 있다 하더라도, 있는 힘껏 힘을 내서 거울을 보며 웃어본다. 마음이 답답할 땐 큰 소리로 문앤썬 라이즈를 따라 부른다. 서정적인 선율이 흐를 때, 마음에 따뜻한 꽃이 피어난다.




다시 한번 좋은 사람을 마주했을 때, 좋은 운을 마주했을 때, 그리고 보아의 신곡을 마주했을 때 - 더 환하게 웃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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