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을 살아가다 보면 억울한 일은 끝도 없이 나를 차올리고 밀어 올린다. 이해하기 어려운 사람이나 이상한 일들은 마치 뜨거운 한 여름 속 입추에 불쑥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듯, 어느새 내 곁에 다가와 마음의 작은 돌풍을 일으킨다.
살면서 크게 억울한 일을 겪은 경험이야 누구든 한두 가지쯤 있다지만, 오히려 그런 커다란 일보다 나는 늘 일상의 작은 억울함에 더 힘들어하곤 했다.
동사무소에 들어가서 민원 업무를 보다가 옆에 오신 할아버지가 내 엄지발가락에 무거운 돌 지팡이를 떨어트린 적이 있다. 한 달여를 불편하게 걸어야 했고 물리치료를 받아야 했다. 내가 왜 이런 일을 느닷없이 겪어야 하는지 정말 억울하고 화가 났지만, 사과를 받았고 의도적인 악의가 없었던 큰 일은 억울함까지 번지지는 않는다. 불편한 일이었지만 쉽게 지나가진다.
그런 일보다도 더 큰 억울함으로 두고두고 생각나는 것은 작고 해결할 수 없는 것이다. 이를테면 은행에 갔는데 나한테만 불친절하게 대하는 은행원의 태도에 매우 기분이 상했던 일, 분명 집의 식탁 위에 올려놓고 나온 중요한 물건이 사라져서 두고두고 가족의 원망을 듣는 일, 나는 좋은 의도로 말했는데 상대방이 받아들이는 게 달라서 사이좋은 사람과 사이가 틀어졌던 일. 이런 일들은 사건이 발생했을 때 보다도 조용히 마음속에 남아서 잠이 오지 않는 어떤 밤, 점점 더 커지는 억울함의 감정이 되어 나에게 다가왔다. 내가 의도한 게 아닌데, 나는 최선을 다한 것만 같은데, 내가 큰 실수를 한 것도 아닌데, 더 이상 해결할 방법도 잘 모르겠는데. 끝도 없는 생각들이 침대 위 천장을 뫼비우스의 띠처럼 고리를 형성해 무한히 돌고 돈다.
그럴 땐, 마음속의 억울함을 정화하러 떠난다. 신이 사람이 사는 곳에 산과 바다와 하늘을 함께 내려준 것은 해결할 수 없는 인간의 어둡고 억울한 마음을 자연으로 치유해주기 위함이 아닐까? 여행을 떠나서 마주하는 초록과 파랑들, 그 푸르름과 눈부심은 신비하리 마치 마음을 달래준다.
부여의 낙화암에 올라섰다. 눈앞에 펼쳐진 금결처럼 반짝이는 물결의 찰랑임과 강을 사이에 두고 켜켜이 형성된 바위들의 불규칙한 배열과 우직함에 탄성이 나왔다. 그와 함께 나라를 잃고 쫓겨 결국은 절벽에서 뛰어내려 생을 마감했을 어떤 이들의 절박함과 억울함도 마주한다. 이렇게까지 아름다운 금강을 앞에 두고 인생의 아직 피우지 못한 꽃을 마음에 품은 채 꽃잎처럼 떨어졌을 그들의 팔랑거리는 낙화 장면을 상상한다. 그러다 보면 내가 마주한 사람들의 짜증과 괴로움은 어느새 작게 느껴지곤 한다.
살아있는다는 것은 작은 억울함 들을 계속 마음에 쌓아 올리는 일이기도 하지만, 그 억울함을 떠나보내고 자가 치료하는 숭고한 작업을 몇 번이고 다시 해내는 인간의 신비를 마주하는 일이기도 한 것 같다.
자동차를 몰아 김제의 평야를 달린다. 정말 한 시간을 달리고 달려도 온통 초록색이다. 여름의 시골 풍경이란, 어디서든 보이는 한국의 초록 산들과 낮은 지붕 건물 몇 개 그 외에는 계속되는 들판과 하늘과 구름의 낙서장이다. 독기를 품고 있지 않은 자연의 냄새와 풍경은 맘 속에 중첩된 억울함이란 독약을 단숨에 해독시켜준다. 작은 오토바이나 경운기에 몸빼 바지를 입고 나란히 올라선 노부부의 모습에서는 세상의 억울함을 지나쳐온 자들의 여유와 단념이 동시에 느껴진다. 바람이 그들의 머리카락을 흔들고 지나가도 무던히 계속 살아간다. 지금 이 들끓듯 뜨거운 나의 억울함도 지나갈 것이고 나도 저런 눈과 표정으로 이 지구에 머물며 그저 모든 것들을 다정히 바라볼 수 있기를, 꿈꾸게 한다. 모두 괜찮아지겠지, 그 누구가 그러하듯 나도 버틸 수 있겠지-. 그런 희망의 마음을 얻는다.
일상의 억울함들이 배꼽에서부터 쌓여 목구멍으로 차고 넘어 올라오기 전, 몇 번이고 여행을 떠났다. 창밖으로 흘러가는 단아한 풍경을 질리도록 바라본다. 어렸을 적에는 남동생을 괴롭힌다고 부모님께서 혼내실 때가 가장 억울했었다. 동생이 먼저 장난을 걸었는데, 동생이 내 물건을 훔쳐갔었는데! 모두 지나고 보니 웃음 지어지는 추억이다. 관광지에서 어깨동무를 하고 활짝 웃으며 사진 찍는 남매를 바라볼 때, 자동차 안에서 과자를 투닥거리며 나눠먹고 끝말잇기를 할 때, 지나간 누나로서의 억울함은 어느새 괜찮음과 피를 나눈 다시없을 존재에 대한 거대한 그리움으로 변모한다. 좋은 추억으로 이토록 힘겨웠던 감정과 억울함이 메꿔지는 것임을 나의 시간과 유전자에 오늘도 아로새길 수 있다.
여행은 어떤 억울함을 미화시키고 어떤 억울함을 당연한 삶의 순리로 승화시켜 밀어낸다. 그래서 나처럼 사람들은 여행을 떠나나 보다. 억울함이 가득 낀 등에 등목 하듯 시원한 계곡과 바닷물, 그리고 저 푸른 하늘을 뿌려보는 여름이다.
아아, 시원-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