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불씨를 댕겨요

자꾸 꺼져도, 자꾸 불씨를댕겨요, feed the fire!

by 톨슈


터널링 현상에 대해서 들어보셨나요? 촛불을 피워봤다면, 아실지도 모르겠어요.


터널링 현상이란, 촛불을 표면이 전부 녹을 때까지 연속으로 세 시간 정도쯤 켜놓지 않고 중간에 끄고 다시 키는 것을 반복했을 때 주로 일어나요. 심지 근처 중심부만 타고 주변부는 타지 않아 결국 윗부분이 움-푹 파이게 되는 거죠. 일단 모양새가 이상해져요. 마치 맛있는 꿀이 촛불의 제일 중심부에만 박혀 있었던 것처럼, 마치 딱따구리가 촛불의 중앙만 쪼아댄 것처럼, 중앙에 구멍이 훅 파인다는 것이죠. 가장자리로는 벽 같은 부분이 형성되고요. 중앙에 터널을 뚫은 것처럼 파여서 터널링 현상이라고 부르는 걸까요? 이런 이름들은 대체 누가 붙였는지 모르겠지만, 어딘가 모르게 찰떡인 느낌이 들고 어감도 나쁘지 않으니, 그걸로 된 거겠죠.


저는 정말 호기심도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많은데, 한 가지만 계속 붙잡고 있는 지구력이 좋은 편은 아니랍니다. 하나를 시작해서 하나만 단번에 끝까지 가는 경우는 많지 않아요. 그 말인 즉, 느긋-히 기다리면서 중앙에서 가장자리까지 다 탈 때까지 두지 못하고, 중간에 불씨를 끌 때가 있다는 거예요. 그렇다고 그 불씨를 아예 포기한다는 것은 아니에요.


시간이 지난 어느 날, 다시 격하게 신나는 표정을 하고 그 일에 불을 붙여요. 분홍 초를 잠시 태우다가 끄고, 보랏빛 초를 이따금 태우다가 끄고. 가끔 이렇게 이 불 저 불 정신없이 살아가다 보면, 제 삶에도 터널링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고 느낄 때가 있어요. 불을 붙였다 껐다 붙였다 껐다 하느라고, 보통의 사람보다 훨씬 열심히 산 것 같은데도, 어딘가 모르게 볼품없는 모양으로 중간이 푹 파인 사람처럼 보일 때도 있다는 거예요. 때로는 지치기도 하고요. 일단, 기껏 쌓아놓은 가장자리 심지를 쓸 수 없으니 경제적 관점에서 보아도 비경제적이고요. 껐다 켰다 한 흔적이 많은 만큼, 어딘가 낡고 중고 물품 같은 이처럼 보일 수도 있어요.


만일 제가 촛불이었다면, 교체가 쉬웠겠죠. 터널링 현상이 심해져서 더 이상 라이터나 성냥으로는 불을 붙이기 힘든 지경이 되었을 때가 오면요. 환경적인 방법은 아니지만, 그냥 버리고 새로운 양초를 사는 잔인한 방법이 있어요. 그러면 처음부터 없었던 일처럼 평평하고 고른 표면을 가진 새 양초가 집을 채워요. 음, 그다지 내키지는 않네요. 아니라면 과감히 가장 깊게 파인 부분에 맞춰 잘라버리는 방법도 있죠. 하지만 그것도 아깝죠. 드라이기로 강제로 가장자리를 녹이는 방법도 있는데 어딘지 모르게 잔인하기도 하고요. 특히나 초도 아니고 사람이라면, 살아온 인생을 그렇게 쉽게 평평하게 다질 수는 없는 일이잖아요? 지금까지의 나의 시간을 버리고 다시 태어날 수 없는 것은 당연하고요. 사람의 인생을 복구하는 일도, 잘라내는 일도, 갑자기 뜨거운 열로 녹이는 일도, 마법사 외에는 그 방법을 쉽게 해낼 수가 없어요.


그렇지만, 저는 촛불이 아니고 굴러가는 사람이니까, 방법을 강구해 보아요. 아! 사실 터널링이 심한 촛불에게도 복구 말고 좀 더 불을 붙이는 다른 방법이 있긴 하네요. 세상에는 길쭉하게 생긴 본격 점화용 라이터도 있고요. 아니라면 긴 파스타면을 이용해서 안쪽까지 불을 붙여보는 것도 방법이에요.


저도 길쭉한 누군가의 도움을 좋아해요. 제 안의 에너지가 고갈되어 힘들 때는, 주변 사람들의 에너지와 힘을 이용해 닿지 않는 마음의 안까지 손을 뻗어요. 글쓰기를 하다가 정말 막힐 때는 사람에게 영감을 구해 와요. 어떤 사람은 그저 길게 태어났을 뿐인데, 다른 일에는 큰 도움이 안 될지 몰라도 터널링이 심한 사람을 구해내는 데는 정말로 제격이겠죠. 기다란 팔과 기다란 조언들. 사람으로 태어났는데 제 주변에 기다란 사람이 두어 명쯤 모여든 것은 감사한 운명이라고 생각해요. 평생 터널링을 겪을지도 몰랐을 무모하고 촛불 같은 여자를 위해서, 하늘에서 맞춤 짝꿍들을 보내주신 걸까요. 감사합니다. 종교가 없는 저이지만, 어딘가 있을지 모를 거룩한 존재를 향해 감사의 기도를 드려요. 어떤 존재에게든, 감사란 써도 써도 닳지 않는 소중한 감정 중 하나이지요.


그리고 초와는 다른 의미로 인간인 저에게도 파스타를 투입해주면, 그건 또 다른 맛으로 금세 기력이 납니다. 파스타를 참 좋아해요. 정확히는 링귀니나 엔젤스 헤어를요. 길-다란 면을 호로록 빨아들이다 보면, 머릿속의 고민들이 해결되고 탄수화물의 행복이 든든히 보충되니까요. 아, 그러고 보니 촛불과 파스타는 애초의 환상 궁합이기도 하네요. 유명한 레스토랑들에 가면 그렇게 촛불로 분위기를 잡고 파스타를 내주잖아요. 터널링 현상에 지친 사람들에게, 따뜻한 기운과 기다란 기운을 함께 주기 위해서, 옛사람들이 짝꿍을 만들어 준지도 몰라요.


그럼 오늘도 지친 당신에게, 일단 파스타를 넣어주면 어떨까요? 터널링이 심해지지 않게, 오늘은 조금 긴 시간 그윽이 양초도 함께 피워보고요. 여유롭게 자신의 터널링을 지켜보고 치료하기 위한 시간을 가지는 거예요. 지켜보며, 먹으며, 향을 맡으며.






있죠, 가끔 중앙만 움푹 파인 것 같아도, 당신은 어여쁜 존재라고 생각해요. 당신은 다양한 분야에 관심이 많은 매력적인 사람이고, 당신은 어쩌면 포기를 모르는 사람인지도 몰라요. 껐다 켰다 껐다 켰다-. 그 한 몸이 모조리 다 닳아 없어질 때까지, 초를 포기하는 일은 없기를 바라요. 인생은 기니까, 천천히 터널을 만들어서 가 봐요. 또 터널링을 무마시킬 방법도 가끔씩은 함께 생각해봐요.


무엇을 위해서든, 자신에게 지금 가장 뜨거운 것을, 심지 위에 올립시다. 일단 불씨를 댕겨 보세요! 그게 몇 번째 일지라도요!






PS. 실제로는 여러 가지 양초 터널링 현상을 막는 방법이 알려져 있습니다. 포일로 표면을 다 막고 키거나, 초를 냄비에 중탕하거나, 드라이기로 가장자리를 녹여주는 방법, 캔들 워머를 이용하는 방법 등이 있어요. 자세한 사항은 검색해보세요. 세상 모든 일이, 어딘가에는 해결책이 있기는 하더라고요. 하하. 저처럼 끄고 켜대는 촛불들을 위하여, 이 글을 드려요. 자주 끄고 키는 저에게도 여러분에게도 위로가 되기를 바라며 썼어요.

(사진 출처: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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