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라노로 향하던 열차 안에서>

다음에는 더좋은 걸로드릴게요, 몰라요, 사랑한다고요

by 톨슈

아빠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장면이 있다. 파리에서 밀라노로 가던 열차 안. 그 기억은 정말 특별해서, 잊을 수가 없다. 사람은 가장 행복했던 순간의 힘으로, 남은 나날을 버텨낸다는 말을 믿는다. 그 순간은 틀림없이, 인생의 그러한 빛나는 순간이었다.


덜커덩 덜커덩. 열차는 밀라노로 달려가고 있었다. 한여름, 이등석의 열차 칸 안에서 우리는 덥고 불편했다. 좌석은 그렇게 넓지 않았고, 이미 파리에서 거래처 2곳을 돌고 밀라노로 향하는 길이었기에, 모두가 지쳐있었다. 일을 위해 파리에서 머물고 있던 기러기 아빠는 딸의 여름 방학을 맞아, 가족을 파리에 초대했던 터였다. 불러놓고서는, 하루 종일 일하는 곳만 끌고 다니다니.


그런데, 아빠는 밀라노행 기차에 탈 때부터 어딘가 어색해 보였다. 기차만 타면 늘 혼자 잠들어버리던 아빠였는데, 웬일로 주무시지 않고 혼자 얼굴빛이 붉으락 푸르락. 혹여나 불똥이 튈까 싶어, 슬그머니 자는 척 눈을 감고 있기 시작한 지 오 분 뒤. 맞은편에 앉아있던 엄마에게로 아빠는 말을 꺼냈다. 심지어 긴장한 탓인지 볼륨 조절조차 되지 않았던 크고 빠른 목소리였다.


“나랑 결혼해줘서 고맙다. 우리 딸 낳아줘서 고마워.

.... 아이고, 모르겠다. 이거 받아. 더 이상은 못해...... 다음에는 더, 큰 걸로 해 줄게. “


만일 기차 안에 다른 한국인이 타고 있었더라면, 굳은 떡 같은 그 어색한 말투에 모두가 쿡쿡 웃었을지 모르겠다. 그래도, 마음속 어딘가에서 따뜻한 용암이 터지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그 순간을 놓치고 싶지 않아 바로 눈을 떴다. 아빠는 눈도 잘 마주치지 못한 채 엄마에게 민트색 상자를 건넸다. 작고 네모난 예쁜 상자. 프러포즈로 유명한 반지 브랜드 티파니의 1캐럿 다이아 반지.


느닷없던 아빠의 고백에, 엄마와 나는 처음에는 야유하다가, 나중에는 웃기다고 웃다가, 끝내는 울고 말았다. 우리는 부둥켜안고 훌쩍이며 생각했다. 아빠는 말하지 않았을 뿐 우리를 아직 많이 사랑하는구나.


아빠가 파리에서 일을 시작한 뒤로, 아빠는 육 개월에 한 번 정도 볼 수 있었던 사람이었기에 우리는 늘 그가 그리웠다. 그의 부재로 인한 상실의 기억들이 한순간 파도처럼 밀려왔다가 다시 밀려갔다. 고마웠다. 다행이었다. 그리고 웃겼다. 아빠는 정말로 로맨틱한 남자가 되는 일에는 소질이 없네, 하하. 그래도 이상하게도 낡은 2등석 기차 칸마저도 로맨틱할 수 있구나- 하고 생각했다. 나는 그때의 안도감을 잊을 수가 없다.


그 뒤로, 낡은 열차 칸 창가 자리는 늘 나에게 최고의 로맨틱한 장소이다. 그도 그럴만한 것이, 가장 로맨틱하지 못할 것 같은 사람이 벌인 에피소드였기 때문이다. 아빠는 내가 기억이 있을 무렵부터 늘 집에 안 계셨고, 늘 피곤에 절어있었고 갑자기 화가 나 속사포처럼 말을 쏟아낼 때만 아니면, 말이 없었다.

철없던 시절의 난, 아빠를 이해하지 못했다. 좀 더 시간을 내어 함께해주는 것만이 사랑의 방식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 방식이 그 당시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음을, 이제야 난 이해하겠다. 그를 이해하는 만큼 그에게 감사하고, 유럽의 그 여름날은 더욱 눈부시게 빛이 난다.

평생을 무뚝뚝하고 무서웠던 아빠를, 처음으로 ‘좋은 사람’으로, ‘멋진 남자’로 인식하게 한 장소였기에.


이런 아빠와의 추억 때문인지, 많은 사람들이 로맨틱한 영화로 뽑고 있기도 하지만, 나에게는 영화 ‘비포 선라이즈’ 또한 더욱 특별하게 여겨진다. 그들의 사랑의 시작은 유럽 열차 안에서 시작되었기에. 나의 아빠를 향한 인정과 사랑도, 그 여름- 그 기차 안에서 시작되었기에.


언젠가는, 코로나가 없어지는, 그 미래의 여름날에는, 엄마와 아빠를 데리고 밀라노행 열차를 타고 싶다. 그리고 역시나 꽤나 무뚝뚝한 나는 창밖을 바라보며 중얼거리면서, 선물 꾸러미를 내밀겠지.

“다음에는 더 좋은 걸로 드릴게요. 모르겠는데, 사랑한다고요 ”


미래에 가장 가고 싶은 꿈의 여행이자, 꿈의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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