엽편 <오픈카가 너를 닮았어>
2045년. 2018년 박물관이 생긴다면?
탁탁 타 타탁 툭 - 툭 -
소프트 컨버터블 차를 타고 비가 보슬보슬 오는 날 고속도로 위를 달린다.
그러면 천장이 부서질 것 같이 투투 툭 탁탁-빗방울이 차의 천장을 때리는 소리가 크게 들렸다. 한 번이라도 그 소리를 들어본 사람은 잊지 못하고 있을 것이었다. 그 리듬감 있고 아름다우면서도 시끄러운 소리를. 그 소리에 맞춰 쿡쿡 웃으며 키스를 나누던 연인이 조수석에 앉아 있었다면 더욱 그러할 터였다.
지금은 2045년.
이제 더 이상 차들은 도로 위로 기름을 떨구며 달리지 않는다. 마치 예전에 놀이동산에 있었던 범퍼카처럼 일정한 속도로 줄지어 길을 지나가는 자율주행 전기차들을 보면서, 나는 여전히 놀라고, 또 강하게 그리워한다. 친환경과는 거리가 멀지는 몰라도 휘발유를 낭비하며 부왕-하고 가속도를 높이던 그 바보 같던 자동차들을 나는 매우 사랑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그리운 것은 나의 첫 컨버터블카였다. 그 차와 함께했던 기억은 모조리 그와 함께 했던 기억이기도 했다. 프랑스의 한 회사에서 나왔던 작고 귀여웠던 컨버터블카.
몇 년 동안 일한 돈으로 처음 중고로 구매한 그 자동차. 그와 함께 사러 갔었고, 그와 헤어지고 팔아버렸다. 젊었던 나는 주말이면 뚜껑을 열고 강릉으로, 가평으로 마구 그와 함께 드라이브하곤 했다. 운전은 여자가 하는 게 진짜 멋있는 거라고. 오빠는 그저 내 옆에서 웃어 달라고. 이떠올리기만 해도 유치할 그런 대사를 마구 읊어대던 나이였던 터다.
그는 그 시대 유행했던 대만식 샌드위치 집을 운영했던 한 여자의 아들이었다. 그를 만날 때면 그는 달큼한 소스 냄새를 풍기며 내게 말했었다.
“차가 너를 닮았어. 조그만 주제에, 성질은 급하고, 욕심도 많아서 기능도 많고 빨라. 모두를 만족시킬 만한 차는 아닌데, 강한 마니아층을 형성하는 차야. 누구나 건드릴 수 있을 것처럼 몸의 반쯤을 내보이며 달리고 있다가도, 진짜 차 안에 마음대로 타려고 하면 부드러운 뚜껑을 확 덮어서 보호해 버리지. 그래서, 좋다고.”
그는 그렇게 묘하게 눈썰미와 말솜씨가 좋았다.
영원할 마냥 함께 있으면 반짝였던 우리였지만, 그는 어느 날 해외 발령을 받았다. 처음에는 자주 그를 보러 베트남에 갔었다. 그러나 멀어진 물리적 거리만큼 나와 그의 관계는 자연스레 굴뚝 위 연기처럼 피어올라 어느새,하늘로 사라졌다.
그와 함께했던 2018년의 하노이를 생각한다.
길거리의 1500원짜리 쌀국수를 매일 같이 사 먹으며, 우리의 할머니의 할머니는 베트남인이 아닐까, 어떻게 이렇게 매일 먹어도 맛있을까에 대해서 진지하게 논했다. 우리는 호안 끼엠 호수를 걸으며 사랑을 속삭였고, 하노이 야시장을 걸으며 서로에게 말도 안 되는 장난감 따위를 사서 주었다. 그리고 후식으로 길거리 팥빙수를 먹으며 쿡쿡 거렸지.
오십 가까이가 되어도 머릿속에 잊히지 않는 어떤 소중한 순간들이 있다면, 그와 베트남에서 걸었던 추억도 그중에 하나일 것이다.
그를 추억하며 하노이 공항 근처에 있는 2018년 체험 박물관에 꼭 가보고 싶다 생각했다. 나처럼 그리운 추억의 조각들을 만나기 위해 찾아든 사람들이 많겠지. 그 시대 무거운 스마트폰들이 수두룩한 전자제품 전시장을 지나서 자동차 전시장 쪽으로 향했다.
있다! 나의 2018년식 은회색 컨버터블 차. 뒷 범퍼만 보아도 그 시절의 향이 나는 것만 같다.
하노이에 머무르는 동안 매일 2018 체험관을 여행할 것이다. 혹시 알까? 아직 베트남에 있는 늙은 그를 만날지도 모르지. 그럼 반갑게 인사 할 수 있을까. 예전처럼 웃을 수 있을까. 두려우면서도 설레인다.
특정한 연도의 박물관은, 그 존재만으로도 누군가에게 감탄과 위로를 일으키는 존재인 듯하다. 그리운 것들을 마음에 품고 사는 이들이 나처럼 위로받을 그곳으로, 어딘가 존재할 그 박물관으로, 지금 꿈 속 비행길에 올라보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