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10화 - 해외살이 250일 후기

0부터 다시 시작해 해낸 것들을 기억해

by 여름청춘


캐나다에 온 지 딱 250일.

나는 지금까지 계획한 바를 이뤘을까?


답은 ‘아니오. 여전히 모르겠어요 ‘

여전히 영어는 어렵고, 여전히 출근하기 싫은 날이 많으며, 여전히 2일의 휴무를 위해 5일을 참는 시간은 그대로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나의 워킹홀리데이는 실패일까?


그 답 또한 ‘아니오. 여전히 잘하고 있어요’

여전한 나날들 사이에서 늘 그렇듯 나는 또다시 방법을 찾아내고, 기어이 행복을 찾아내며, 기어이 해내고야 만다.

여전히 영어는 어렵지만 그럼에도 나는 영어로 다양한 국가의 사람들과 일하고 있으며, 어제는 말하지 못했던 문장을 공부해 오늘은 말하려고 노력한다. 여전히 출근하기 싫은 날이 많지만 그럼에도 출근 준비를 하면서 영어 팟캐스트를 듣고 출근길에 기분이 좋아지게 만드는 노래를 들으며 캐나다 구스들 사이를 지나 카페로 향한다. 오픈 메이트 코워커와 “Good Morning!" 하며 활기차게 일을 시작하고, 매일 아침 내가 한국에서 그랬듯 출근길에 졸음을 쫓기 위한 커피를 사기 위해 카페로 들어오는 손님들에게 커피를 만들어주고 "Have a great day :) "라며 기분 좋은 인사를 건넨다. 매일 같은 메뉴를 마시는 단골손님이 오면 말하기도 전에 미리 그들의 최애 메뉴를 준비해 두고, 오늘 하루는 어땠는지 안부를 주고받는다. 여전히 2일의 휴무를 기다리며, 남편과 같이 쉬는 수요일마다 맛집을 찾아다니고, 공원을 산책한다. 아직은 불안함을 완전히 걷어내지 못하는 미래불안형 인간이지만 캐네디언의 여유로움에 잠시 기대어 여유를 가지려 노력한다. 그저 지금 이곳에서,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을 다 한다.


나는 여전하다. 한국에서는 한국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살았고, 캐나다에서는 캐나다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살고 있다. 그곳이 어디든 현재의 자리에서 내가 세운 목표를 향해 걸어갈 뿐이다. 첫 화에서도 적었듯 헤매기 위해 떠난 길이 꽃 길이라 기대한 적도 없었기에 가시밭길을 걸어도 후회하지 않는다. 물론 타지에서의 생활은 한국에서의 삶과 많이 달랐다. 한국에서 행복과 불행의 파도의 크기가 10점 만점 중 5라고 한다면, 캐나다에서 행복과 불행의 파도 크기는 10이다. 가끔은 정말 세상이 날 억까하나? 싶을 정도로 불행의 끝을 맞이하다가도 그만큼 거대한 크기로 찾아오는 행복에 이러려고 내가 이 땅에 두발을 딛고 서있었구나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매 달 새로운 경험이 미션처럼 펼쳐지고, 한국에서는 평온했을 것들도 이곳에서는 폭풍우처럼 몰아치기도 한다.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다듬어지지 않은 흙길을 걸으며 사이사이 피어난 작은 들꽃들을 보고 미소 짓는다. 한국을 떠나야만 할 수 있는 경험들을 만끽하고, 한국을 떠났기에 맞이하는 고난과 역경을 헤쳐나가며 조금씩 조금씩 더 단단해진다. 얼마 전 본 릴스에서 이런 말이 나왔다. 용감함은 가방 하나만 들고 해외로 이사하는 것이라고. 비자, 은행계좌, 새로운 언어, 새로운 집주인, 길도 잘 모르면서 집을 새로 구하고, 밤에 낯선 버스 노선을 알아내며, 발음도 못하는 라벨들을 읽어내려가는 것. 그걸 해낸 사람은 절대 무너지지 않는다고. 0부터 다시 시작해 해낸 것들을 기억하라고. 편안한 게 하나도 없는대도 버텨낸 너 자신을 무너뜨릴 건 아무것도 없다고.


직접 해봐야만 알 수 있는 것들이 있다.

해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말과 감정들이 있다.

타인이 함부로 실패라고 칭할 수 없는 단단한 것들이 그들에게는 있다.

이건 타국에 살고, 뿌리내려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것들이다.


앞으로 내가 얼마나 이곳에 머물게 될지는 모른다. 타국생활이란 그런 거다. 언제 어떻게 변할지 어떤 일이 닥칠지 예상할 수 없다. 그걸 알기에 미래를 예측하려 용쓰기보다는 현재에 더 충실하게 된다. 앞으로도 지난 250일간 그래왔던 것처럼 두 발 단단히 딛고 있는 지금 이 순간을 열심히 살아갈 것이다. 지금은 비록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타지 생활을 하고 있지만 언젠가 뒤돌아보면 한 계단 한 계단 천천히 걸어 올라온 무수히 많은 계단들을 내려다보며 목표한 삶에 더 가까워져 있을 테니까.

오늘도 나와 같이 모국어가 아닌 언어로 열심히 살아가고 있을 동지들에게 따스한 눈빛을 담아 응원을 보낸다.


오늘도 파이팅입니다 :)




브런치 매거진용 하단 단단로고.jpg

*함께라서 단단한 우리의 이야기, 인스타그램 @magazine_dandan을 팔로우하시고 전 세계 각자의 자리에서 꽃을 피우는 여성들의 이야기를 만나보세요! 글 미리보기부터 작가들과 일상을 나누는 특집 콘텐츠까지, 다양한 이야기가 여러분을 기다립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10화 - 그것으로도 충분한 시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