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키나와에서 향유고래와 만나다
10년 전, 오키나와로 여행을 간 적이 있다. 그때 뭐가 그렇게 힘들었는지 모르겠지만 무언가 큰 중압감에 시달리고 있었고, 그 무언가를 훌훌 털어버릴 심산으로 홀로 오키나와로 향한 것이다.
무지갯빛 바다. 푸른 하늘. 작열하는 태양.
오키나와의 바다는 그 당시 나에게는 천국과 같은 곳이었다.
그저 파도에 몸을 맡기고 두둥실 떠다니는 것만으로도 알찬 시간이었다.
무엇이 나를 그렇게 힘들게 한 것일까.
무엇이 나를 그렇게 애타게 만든 것일까.
한국에서 하던 걱정 따윈 오키나와의 무지갯빛 바다로 삽시간에 용해되었다.
그렇게 한 시간을 두둥실 떠다녔을까, 갑자기 다리에 쥐가 났다. 화들짝 놀래 얼른 해변으로 수영하려 했지만, 해변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 버렸다는 걸 깨달았다.
저 멀리 해변을 즐기고 있는 사람들이 어렴풋이 보이더니, 이내 캄캄한 물속으로 빠져버렸다.
콧속과 입속으로는 바닷물이 비집고 들어왔다.
팔을 휘져을 수록 가라앉는 것은 기분 탓이 아니었다.
‘이제 끝인가?’
절망의 절망을 향해 빠지다 보니, 문득 아까 돈이 아까워서 솔트 아이스크림을 먹지 않았던 것이 기억났다.
그게 뭐라고 사 먹지 않았을까. 아이스크림에 소금이라니, 도대체 무슨 맛이었을까. 괜히 서글퍼졌다.
그렇게 정신마저 아득해질 무렵, 몸이 붕 뜨는 느낌이 나더니 이내 물 밖으로 나오게 되었다.
나는 바닷물을 토해낸 뒤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 주위를 둘러보니, 까맣고 커다란 생명체가 나를 물 밖으로 받쳐주고 있었다.
지나가던 향유고래가 나를 바닷물 위로 꺼내주었던 것이다.
나는 너무 감사한 마음에
향유고래에게 [땡큐! 땡큐! 아리가또! 아리가또!] 외쳐댔다.
그러거나 말거나 향유고래는 유유히 나를 업고 뭍으로 향하였다.
향유고래는 나를 뭍으로 데려다준 뒤 말하였다.
[Forget the pain and Enjoy the waves]
그러곤 향유고래는 유유히 떠났다.
나는 오키나와에서 떠나기 전, 시내에 들려 향유고래에게 줄 선물로 LP 플레이어와 모차르트의 곡이 담긴 LP를 샀다.
그리고 다음에 한국에 오면 연락하라고 집 주소도 적은 감사 편지와 함께 향유고래와 내가 만났던 곳에 빠트렸다.
꼭 향유고래에게 이 선물이 가길 기도하면서.
그리고 10년 뒤, 향유고래에 대한 기억도 가물가물해지고, 무지갯빛인가 노란빛인가 했던 바다의 기억도 가물가물해졌을 때, 웬 엽서 하나가 집에 도착하였다.
그것은 오키나와에서 온 향유고래의 편지였다.
향유고래가 어떻게 글을 썼을까.
조그마한 연필을 큰 입으로 물고 썼을까.
지나가던 게에게 부탁했을까.
먹으려고 남겨둔 오징어에게 시켰을까
무튼
편지에는 짧은 글이 쓰여 있었다. 상당히 명필이었다. 그리고 한국말이었다.
[고맙다. 노래 좋다. 다음에 올 때 다른 LP도 부탁]
다음에 솔트 아이스크림도 먹으러 갈 겸,
향유고래에게 선물도 줄 겸,
파도도 즐길 겸
오키나와에 또 가야겠다.
그때까지 또 열심히. 열심히.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