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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아이 Jul 16. 2023

비상벨

비상벨을 눌러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한 5년 전일까. 길거리에서 운 적이 있다. 


그땐 내가 아직 20대였고,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며 막 일을 배우기 시작하던 때였다. 정신은 늘 어딘가  흘리고 다녔고, 정신을 주울 시간조차 없어 정신없는 채로 살아갔다.


그날도 야근하고 홀로 퇴근하였다.

사무실 불을 끄고 문을 잠그고 복도로 나오니 복도는 어둠 그 자체였다.

무섭지는 않았다.

어렸을 땐, 이 어둠이 그렇게 무서웠는데, 이제는 아무렇지도 않다.

공포라는 감정도 잊히는 가보다.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자, [웅]하는 소리가 거대하게 울렸다. 

이 작고 오래된 건물이 무언가 소화하는 듯한 소리였다.

사람들이 내뿜는 욕설, 화, 질투, 피로 기타 등등…

그런 걸 소화하려면 더부룩하고 거북한 소리를 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띠리딩]


엘리베이터의 아가리가 열리며 밝은 빛이 새어 나왔다. 

그래 이번엔 나를 소화해 보렴


문은 천천히 아가리를 닫고 다시 [웅] 거리며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잠깐 관성으로 인해 몸이 흔들었다.


그래, 이제 삶을 움직이는 원동력은 관성밖에 남질 않았다.

새로움이란 것도 ‘덧없음’이 된 지도 오래이다.

개도 15년 살면 시큰둥해지는데 나는 이미 너무 오래 살았다.

앞으로 60년은 더 산다면 도대체 무슨 재미로 무슨 의미로 더 살아야 할까.


문득 눈앞에 비상벨이 보였다.


어렸을 때 이 비상벨이 마치 망토를 두른 한 사내로 보였다.

어린 나는 비상벨을 누르려 하자 어머니는 나에게 혼을 냈다.

나는 그저 망토를 두른 사내가 그려진 버튼을 누르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궁금했을 뿐인데 말이다.


거울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어린 적 호기심에 눈이 초롱 거리는 사내아이는 온대 간데없고 

사망선고를 기다리는 젊은 하지만 이미 늙은 사내가 있었다.


‘차라리 사라지는 게 나을지도’


생각해 보니 살면서 비상벨을 누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매번 눈앞에 있었는데도 말이지. 

나는 뭔가에 홀린 듯, 비상벨을 꾸욱 눌렀다.

비상벨이 진짜 작동을 하는지도 궁금하기도 했고 어렸을 때 어머니가 누르지 못하게 한 복수심이랄까. 


[삐익]


가늘고 뾰족한 경고음이 울렸다. 양심에 찔리진 않았다. 

아마 경비실은 이미 퇴근했을 거고, 만약 누군가 연락이 오더라도 

‘죄송합니다, 기대다가 잘못 눌렀어요’라고 둘러댔으면 됐으니까.


엘리베이터가 [웅]하는 소리가 급히 잦아졌다.


[띠리링]


4층에서 엘리베이터가 멈췄다.

다시 한번 관성이 내 몸을 관통하였다.

누굴까 이 시간에?

나처럼 야근하는 사람이 있나?  


문이 열렸다. 그리고 나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어둠 속에서 천장에 닿을 듯 말 듯 한 거대한 사내가 망토를 두른 채 엘리베이터 앞으로 다가왔다.

사내의 숨소리가 [웅웅] 울렸다.

사내는 엘리베이터에 타지 않고 나를 내려다보았다.

그렇다 그 사내는 엘리베이터를 타러 온 것이 아니다. 나를 찾으러 온 것이다.


[날 찾았나]


나는 둘러댈 수 없었다. 왜냐면 거짓말하면 더 크게 혼낼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냥… 진심은 아니었습니다]


사내는 굵은 한숨 소리를 [후욱] 길게 내뱉었다. 

한숨은 정말 길고 그리고 우직하게 뿜어져 나왔다. 

그리곤 묵직한 주먹으로 내 정수리를 쥐어박았다.


[쿵] 하고 내 머리통이 크게 울렸다. 그 덕에 혀를 씹어버렸고 눈물이 찔끔 났다.  


그리고 사내는 다시 어두 컴컴한 복도 속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문이 닫혔다.

그리고 [웅웅] 거리는 소리와 함께 엘리베이터는 다시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나는 거울을 보았다.

정수리를 맞은 덕에 조금 얼굴이 눌리고 눈가에 물기가 촉촉한 사내가 한 명 서 있었다.

처참했다.


1층에 도착하였다. 나는 서둘러 건물을 빠져나와 지하철을 타러 걸어갔다.

겨울바람에 눈이 참 시렸다. 그래서 그런 건지, 아니면 아까 운김에 운 건지 

길거리에서 나는 울었다.


그냥 울었다.


집에 도착해서 오래간만에 먼저 어머니에게 전화했다.

물론 울었던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그냥 밥은 먹었다. 건강하다. 할만하다. 잘 지낸다.라는 평범한 대화 

그리고 어머니는 늘상 하시는 말.

‘연락 좀 자주 해라’


이 이야기는 그동안 누구에게 말한 적이 없다.

길거리에서 질질 짠 이야기를 누가 좋아하겠는가

그 뒤로 길거리에서 운 일은 그 일이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무튼


함부로 비상벨을 누르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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