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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아이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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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설이 Sep 08. 2020

엄마, 미안해..

마음 아픈 한 마디

아이가 열이 났다. 예방접종 탓이었을까, 부은 목 때문일까, 갑작스레 추워진 날씨에 훌쩍대던 콧물 탓일까.. 소아과에서의 최종 결정은 편도염이었지만, 저 모든 원인이 복합되었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아이는 정말 오랜만에 고열에 시달렸다. 


점심도 못 먹고 누워있겠다는 아이에게 해열제를 먹이고, 차가운 수건을 이마에 올려주었다.

차갑다고 부르르 떨었지만, 열이 잡히는 것 같았다. 조금은 안심을 하고 전날 약속해둔 중고 거래를 위해 잠시 나가 책을 사고, 돌아오는 길에 아이가 좋아하는 아이스크림도 샀다. 


"우리 이쁜 망아지~~ 아이스크림 먹자!"


"나 어지러워. 그냥 누워있을래."


아이가 아이스크림을 거부하다니! 위기감이 들었다. 다시 열을 재보니 38도가 훌쩍 넘어선다. 교차 복용시킬 해열제는 유통기한이 지났다. 전날 예방접종을 한 병원이 쉬는 날 없이 운영한다는 생각이 불현듯 떠올라 부랴부랴 병원으로 향했다.


왜 이제 왔냐고, 조금 더 일찍 왔으면 수액이라도 맞았을 텐데.. 하며 의사는 해열 주사를 처방해주었다. 주사가 싫다고 도망가는, 40도가 넘는다는 아이의 엉덩이에 주사를 맞았다. 울면서 주사 맞는 게 너무 오랜만이라 당황스러웠다. 심지어 어제의 예방접종도 울지 않고 씩씩하게 맞았다고 했었는데...


아이를 다독여 집으로 돌아왔다. 주사 덕분인지 열이 잡혔고, 아이는 아이스크림을 먹고 힘이 나서 종이로 책을 만들며 놀았다. 삼각김밥도 두 개나 만들어달라고 해서 잘 먹었다. 그리고 해열제를 한번 더 먹고 잠이 들었다. 미지근한 미열이 느껴지지만 자고 일어나면 괜찮을 것이라 위안하고 있는데, 자던 아이가 벌떡 일어났다.


"엄마, 나 !@#$$%^"


무어라 말하는지도 모르게 말과 함께 아이의 입에서는 토사물이 쏟아졌다. 아이의 목소리에 뛰어들어온 남편이 재빨리 손으로 토사물을 받아냈지만 흥건하게 침대로 떨어졌다. 등을 토닥여주는데 아이가 울먹이면서 말했다.


"엄마, 미안해...."


뭐가 미안하냐고, 괜찮다고 힘없는 아이를 일으켜 씻겼다. 말끔하게 씻고 옷을 갈아입은 아이가 눈치를 보며 다시 이야기했다.


"미안해.. 아빠랑 엄마가 다 치워야 하잖아. 화장실에 가려고 했는데, 너무 빨리 토가 나왔어."


우리는 가족이고, 사랑하는 사이이고, 넌 단 하나뿐인 엄마 아빠 아들이기에, 그리고 아파서 일어난 일이기에 전혀 미안해할 일이 아니라고 아이를 안고 몇 번이고 이야기를 해주었다. 춥다고 바르르 떨며 아이는 다시 잠이 들었다. 밤새 열이 오르락내리락, 아이도 나도 참 힘든 밤을 보냈다.


언제 이렇게 커서 철이 들어버린 것일까. 한없이 아기 같았는데 어느새 아이는 뒤처리를 생각할 만큼 불쑥 커버렸다. 많이 컸구나, 대견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마음이 아릿했다.


월요일, 연차를 내고 아이와 함께 소아과에 가서 진료를 보고, 검사를 하고, 수액을 맞았다. 3,4살 무렵 수액을 맞으러 왔을 때는 내내 "빼~ 빼~" 하면서 울더 아이가 이제는 씩씩하게 눈물 한 방울 없이 수액을 잘 맞았다. 누워서 유튜브도 보고, 내가 읽어주는 책을 듣던 아이가 문득 나를 올려다보며 배시시 웃었다.


"엄마, 오늘 엄마가 회사 안 가고 나랑 있어서 너무너무 행복해."


"응, 엄마도 우리 망아지랑 같이 있을 수 있어서 정말 정말 행복해."


7세의 하루 일과표. 전부 해독 가능하다면, 당신은 능력자!


아침부터 이렇게 일과표를 만들었던 아이는 저 중간의 엄마랑 놀기를 무려 5시간이나 했다는 뒷 이야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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