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량아로 태어난사람
이건 운동하고 와서 씻지도 않고 자리에 앉아 기록한 나의 운동일지다.
처음 운동을 시작한 게 22년 12월 말이다. 본가에서 독립을 하자마자 헬스장을 등록했다. 늘 그랬듯 체중감량, 다이어트가 목적이었다. 4.25kg 우량아로 태어난 나는 어릴 때부터 통통을 달고 살았다. 여리여리한 뼈대도 아니었고 건강하게 낳아주신 덕분에 또래에 비해 머리 하나가 더 큰 아이였다.
어릴 땐 다이어트라는 것을 해본 적이 없었고 스무 살이 되자마자 다이어트가 하고싶었다. 그 시작은 비교였다. 그때의 나는 키 163에 55kg로 보통 체격을 갖고 있었다. 몸무게는 그대로였는데 키가 쑥 자랐다. 대학교에 들어가면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니 내가 갖고 있는 장점보다 남이 가지고 있는 게 더 커 보였다. 그때부터 안 해본 다이어트가 없었다. 다이어트 보조제, 비싼 한약 다이어트, 일주일간 물만 먹기, 살을 빼주겠다고 광고하는 것마다 돈을 부어 투자했고 그때마다 실패 했다. 이유는 뻔했다. 노력없이 결과를 얻으려 했기 때문. 너무 쉽게 성공을 쥐려 했기 때문에. 그렇게 해서 얻은 결과는 쉽게 사라지고 만다.
극심한 스트레스로 폭식과 절식을 반복한 시절도 있었다. 말도 안 되는 양을 먹어 치웠다가 배가 터져도 음식을 욱여넣는 행위는 나를 갈아먹는 일이었다. 그렇게 불어난 몸은 더욱 스스로를 가두었고 집 밖에 잘 나가지 않거나 철저히 혼자가 되는 삶을 산다.
멀리 돌아왔으나 나는 가장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고 싶었다. 자신을 혐오하고 사랑해주지 않는 나를 벗어나 나를 사랑하기로 마음먹었다. 이렇게 한 계기에 대해서는 따로 적은 적이 있어 넘어간다. 나를 사랑하기로 마음먹었다고 해서 하루아침에 내가 사랑스러워 보이는 것은 아니다. 길 가는 사람이 내게 사랑 고백을 한들 내가 그 사람을 갑자기 사랑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사랑하기 이전에 먼저는 알아야 한다. 알아야 사랑할 수 있다. 그때부터 나에 대해 뜯어보기 시작했다. 나의 취향과 선택을 차근히 알아가고 기다려 주기로 했다. 몇 시간이 걸려도 상관없었다. 남들 눈치 보느라 마음에 들지도 않는 물건을 고르는 것보다 충분히 고민한 후 정말 내가 원하는 선택을 하는 게 훨씬 좋았다. 처음엔 3시간이 걸리는 선택도 차츰 시간이 줄어들게 된다. 그렇게 나를 알아갔다. 이제 어떤 것을 고를 땐 바로 고를 수도 있고 충분히 고민할 시간이 필요한 것도 있다.
나는 타인을 지나치게 의식한 탓에 긴장도가 높았다. 목과 어깨는 항상 결려 있었고 혼자 있는 공간으로 돌아오면 모든 긴장이 풀려 음식을 마구 먹어댔던 거였다.
다시 운동으로 돌아가 헬스 4개월 차에 접어들었다. 시작할 때만 해도 선생님과 일주일에 두 번 수업하는 날에만 운동을 나갔다. 호기롭게 시작한 운동도 점점 꾸역꾸역 나가게 됐고 약속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나는 하기 싫어도 운동을 뺀 적은 없었다. 그렇게 3개월이 흘렀고 여전히 나는 개인 운동을 나가지 않았다. 총 20회의 수업이 끝나고 선생님과 면담을 하는 날, 정말 고민을 했다. 이용권만 끊으면 과연 내가 운동을 나갈까? 나조차도 알 수 없었다. 왜냐면 스스로 운동을 꾸준히 나가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내게 저장된 경험치가 없었다. 선생님은 이제 일주일에 한 번만 수업을 하고 나머지는 개인 운동을 하라고 권하셨다. 생각해보니 그게 좋을 것 같았다. 아직 운동기구가 익숙지 않은 상태, 혼자서만 운동을 할 자신이 없었다. 그렇게 나는 주 4, 5회 운동을 나가며 지금까지 꾸준히 해오고 있다.
오늘 비가 내렸다. 예전의 나는 날씨를 핑계로 이유를 대는 사람이었다. 지금은 그런 게 없어졌다. 오히려 궂은 상황, 날씨를 뚫고 성취를 이루어내는 내 모습이 더 좋았다. 남들 다 하는 거 말고 남들이 하기 어려워하는 상황을 뚫는 게 더 행복했다. 우산을 쓰고 걸으며 생각했다. 이렇게 비가 오는 날에도 아침을 깨워 운동을 나오는 나는 의지가 없는 사람이 아니구나. 난 마음만 먹으면 뭐든 할 수 있구나.
운동을 꾸준히 하면서 크게 느낀 바가 있다.
인내. 무언가를 성취하기 위해 인내가 필요하고 그 시간을 견뎌야 결과를 얻어낼 수 있다. 쉽게 얻을 수 있는 것은 없다. 또, 건강하고 긍정적인 마음. 체력이 길러지는 것뿐 아니라 마음이 건강해짐을 느꼈다. 나처럼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부족하거나 아니 거의 없거나 자존감이 없는 사람이 운동을 하니까 작은 성취가 모여 스스로를 믿어주고 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마음이 생긴다.
어느 날 선생님께 고백했다. "선생님 운동이 재미없어요." "저도 재미없어요. 근데 결과만 재밌어요." 선생님의 이 말은 충격이었다. 결과만 재밌다니. 맞는 말이다. 하지만 나는 과정과 결과 둘 다 인정해주고 싶다. 때로는 내가 노력해서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을 수도 있는데. 그 결과에 따라 과정을 실패한 과정이라 여기지 않고 내가 해온 노력, 과정을 충분히 인정해주고 싶다. 물론 결과에 후회가 없을 정도로. 그래서 잊지 않아야지. 내가 어느 대회에서 상을 받지 못한다 해도 난 이 대회를 준비하면서 그 과정에 엄청난 성장을 이뤘음을. 그 경험이 고스란히 내 몸속에 흐르고 있음을 말이다.
사람들은 결과만 기억한다. 하지만 본인은 과정과 결과를 기억한다.
이제 땀이 식어서 춥다. 얼른 씻어야지. (선생님은 모르겠지만 오늘은 내가 처음으로 한 번도 안 쉬고 20분을 달린 날이다. 2분도 못 뛰었던 내가. 10배의 성장을 이뤄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