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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lvin Dec 26. 2023

카타르시스

사람은 누구나 나름대로의 어두움을 간직하며 산다

연말을 맞아 평소와는 다른 조금 특이한 글을 써보려고 해. 첫 문장에서 보다시피 이번 글에만 말투도 좀 친근하게 바꿔봤어. 그 이유는 이번 글의 내용은 조금 친근하지 못할 수도 있기 때문이야. 내 안에 조금 어둡고 밖으로 잘 티 내지 않는 모습을 살짝만 보여주려 해.


다들 한 번쯤은 우울해본 적 있지? 얼마나 심하게? 얼마나 자주? 나는 감정의 격차가 크지 않고 살짝 모노톤이라 해야 할까, 그래서 그냥 엄청 기쁘지도 슬프지도 우울하지도 않은 그런 감정선으로 지낼 때가 많아. 그래서 정말 가끔이긴 하지만 조금이라도 그 감정선의 평형을 벗어나는 일이 생기면 걷잡을 수 없이 기쁘거나 아니면 보이지 않는 구렁텅이 속으로 빠져드는 것 같아. 후자의 경우인 암흑 속으로 빠져들어갔던 내 경험의 내막을 찬찬히 들여다보려 해.


때는 내가 대학교 4학년 일 때야. 비록 길진 않았지만 내 기준 첫 슬럼프다운 슬럼프를 겪어봤어. 이유는 복합적이었어. 굳이 구체척으로 들어갈 필요는 없을 것 같고. 그때 경험을 비유적으로 표현하자면 온 세상이 흑백으로 보이는 것 같았어. 아침에 일어나서 수업을 가고 알바를 가고 도서관에서 과제 좀 하다가 이어폰 꼽고 집에 걸어가는 길, 이 모든 과정 속에서 내 주변 모든 것들이 색깔을 잃고 흑백이 된, 그래서 점차 내 마음속까지 빛과 색을 잃어가는 그런 느낌이었어.


슬프진 않았어. 오히려 반대로 감정이 메말라가고 있었던 것 같아. 내가 대학교 1학년때 새 친구 사귀기도 어렵고 새 환경 적응하는 게 너무 힘들어서 기계처럼 그냥 해야 할 일 하면서 쓸데없는 감정 없이 지내다 보면 어느새 적응해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포털사이트에 "감정을 죽이는/없애는 법"을 찾아본 적이 있어. 당연히 마땅한 답이 없었지. 사람이 어떻게 능동적으로 감정을 죽이고 살아. 그래서 그냥 될 대로 돼라 하면서 열심히 살았지. 근데 대학생활 막판에 슬럼프를 겪으면서 나도 모르는 새 저절로 감정이 죽어가고 있는 것 같더라고.


사실 내가 슬럼프인지 나도 몰랐어. 주변에 친한 후배가 "형, 지금 정상 아니에요"라고 말해주면서 잡아주기 전까진. 슬럼프를 겪어본 적이 없었으니 이게 슬럼프인지 알 수 있었을 리가. 그때서야 내 상황을 인지하고 내가 지금 어떤 상태인지 돌아보고 나서야 내가 지금 마음이 좀 아프구나라는 걸 알 수 있었지.


알아차릴 수 있었던 결정적인 계기는 그때 내가 반복적으로 듣고 있던 노래들이었어. 나는 보통 음악 포털사이트에 나와있는 노래 중에 좋은 게 있으면 저장하거나 우연히 길거리나 카페에서 들리는 좋은 노래가 있으면 그때그때 저장하는 스타일이야. 그런데 한창 슬럼프일 때 평소에 안 하던 음악 검색을 하곤 했는데 그 주제가 절망과 자살을 노래하는 곡이었더라고. 난 죽고 싶단 생각은 한 번도 한 적이 없어. 그때도 마찬가지로. 하지만 한 가지 달랐던 건 보통 내가 저런 부정적인 노래들을 듣는 걸 꺼려했는데 슬럼프를 겪는 동안엔 저 곡들이 되게 편하게 들렸고 게다가 검색해서 찾아들었다는 점이야.


그때 들었던 곡들과 그 가사 일부분을 몇 개 써볼 거야. 딱히 추천하는 건 아니긴 하지만 이 곡들의 가사들과 분위기가 그때 내 심정을 조금은 대변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해.




1. 51분 전 - 넬


"고통의 눈물은 흐르질 못하고, 애원의 말들은 입가를 맴돌고

구원의 손길은 자취를 감추고, 갈기갈기 찢긴 상처의 흔적만"

...

"소외의 칼날에 두 다릴 잘린 채, 일어설 수 없는 나는 앉은뱅이

자살과 자유는 고작 한 글자 차이, 사라져 버린대도 이상할 게 없어"


2. 그녀의 사연 - 프리스타일


"아픔만 주고 나만 홀로 남기고

신이 있다면 이렇게 나를 외면할 수가 없잖아"

...

"쓴 소주에 수면제를 수십 알씩 삼켜가며 말을 했지 살아가는 게 정말 좆같다고,

몸과 맘을 난도질한 엿같은 이 세상은 살기 위해 바둥거려도 결국 여기라고"


3. 한강 위에서 - 타이미


"흐르는 강물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지

외로움과 괴로움 고통을 집어삼킨 깊이가 보이지 않는 한강이 무서운 걸까

도시의 불빛이 수면 위에서 몸을 떤다"

...

"흘러가는 강물을 바라봐 하염없이, 살아간다는 건 언젠가부터 벌칙

벼랑 끝에 걸친 채로 버티는 거지, 너의 손을 잡기에는 턱없이 멀지

내가 기다리는 행복은 지금 어디쯤일까, 혹시 날 못 보고 지나쳐버린 건 아닐까"




그때 내 감정이 어땠는지 있는 그대로 보여주기 위해 일부러 자체 필터링 안 하고 조금 적나라하게 가사 그대로 써봤어. 지금 이렇게 읽어보니까 꽤 자극적이네.


그때 슬럼프를 겪고 있다는 걸 깨닫고 특별하게 어떤 조치를 취하거나 그러진 않았어. 우울증일 정도로 심한 것도 아니었기도 하고. 그런데도 천천히 괜찮아지더라고. 흑백이었던 내 세상도 다시금 색깔을 되찾아갔고. 문제를 해결하는 것의 본질은 가끔씩 해결책 그 자체가 아닌 문제의 원인을 인식하고 경청하는 것에 있는 건 아닐까?


이때 이래로 한 가지 후유증(?)이라고 한다면 이후에도 쭉 이런 곡들을 거부감 없이 들을 수 있게 됐어. 저 곡들 모두 내 플리에서 지우지 않고 그대로 내버려 두는 중이야. 그래서 가끔 랜덤으로 돌릴 때 들리기도 하지. 그렇다고 해서 옛날 내 부정적인 감정이 들끓고 그러진 않아. 오히려 어루만져주는 느낌이랄까.


슬럼프를 겪고 나서 한 가지 느낀 점은 내 마음속 구석 한 켠에 이 어둡고 무채색인 감정을 고이 담아두고 있는 것 같아. 바쁘게 행복한 나날들을 살다 보면 이 감정을 간직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망각할 때도 있어. 그런데 한 번 어떤 "트리거"로 인해 이 판도라의 상자가 열릴 때가 있어. 그 감정 속에 집어삼켜지지는 않는데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하지만 나쁘지 않은 느낌이 들어. 최근에 이런 느낌을 한 번 받았었는데 너튜브에서 이 노래를 처음 들었을 때야.




김철수 씨 이야기 - 허회경


"우두커니 서서 세상을 가만히 내려다보면

비극은 언제나 발 뻗고 잘 때쯤 찾아온단다"

...

"겁쟁이는 작은 행복마저 두려운 법이라고"

...

"우두커니 서서 세상을 가만히 내려다보면
비극은 언제나 입꼬리를 올릴 때 찾아온단다"




첫 두 문장이 내 이목을 집중시켰고 마지막 두 문장에서 육성으로 감탄하며 소름이 끼치더라. 맘 편히 소소한 행복을 느끼며 지내는 평범한 나날들에 미소를 짓던 어느 날 급작스럽게 찾아온 비극적인 뉴스. 이 노래를 듣는 그 찰나의 순간에 이 장면이 선명하게 그려지더라고. 어쩌면 내가 이런 다크한 내용의 노래를 들을 때 카타르시스 같은 걸 느끼나 봐. 왜, 부정에 부정을 더하면 더 강한 긍정이 된다고 하잖아? 그런 것처럼 내 안 깊숙한 곳에 간직하고 있는 이 무채색의 감정에 비슷한 느낌의 어두운 음악을 들려주면 그 감정이 까만 빗방울들 되어 씻겨내리듯, 좀 후련해지는 기분이야.


2024년은 의대 재도전을 시작하는 내게 다시 한번 중요한 해가 될 거야. 그래서 내 안에 있는 까만 것들을 다시 빛을 발하게 할 수 있도록, 타이밍 맞게 좋은 노래들을 접했다는 생각이 들어. 구석에 쟁여둔 감정이니까 시간이 가며 다시 먼지가 쌓이고 어둑어둑 해지겠지, 그리고 다시 어떤 계기로 인해 씻겨나가고. 난 이런 카타르시스 같은 감정을 즐기나 봐. 이런 감정의 정의가 존재한다는 건 나 말고도 이런 느낌을 경험한 사람이 많고 다들 나름대로의 어두움을 간직하며 산다는 방증이겠지? 사실 나쁘지 않아. 어차피 나만 알고 있는 내 깊숙한 내면의 모습이니까. 하지만 그래도 내년에는 카타르시스 같은 감정보단 진정한 행복으로 미소 짓는 날이 더 많았으면 해. 이 글을 읽고 있는 너희들도.




아무것도 상관없어 - 허회경


"난 아무것도 상관없어 네 맘대로 해도

어차피 내 말 따위는 믿어주지도 않으니"

...

"난 아무것도 상관없어 네 맘대로 해도

어차피 내 눈 따위는 쳐다보지도 않으니"

...

"난 아무것도 상관없어 날 떠난다 해도

어차피 내 옆자리엔 아무도 없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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