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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lvin Apr 13. 2024

적응기간

그 흉터는 어쩌다가 생긴 거야?

대학생 때 쓰레기를 버리려고 꽉 차있는 쓰레기봉투를 들으려 매듭 부분을 세게 쥐려다 안에 있던 날카로운 캔 뚜껑이 내 손가락을 긁어 살점을 파내었던 적이 있다. 그때 피를 생각보다 많이 쏟아내 학교 내 있는 응급처치실에서 시간을 조금 보냈었다. 그때의 흉터는 아직까지 내 손가락에 선명하게 남아있다. 마음의 상처도 이렇게 예고 없이 찾아올 때가 있다. 상대방의 폭언, 혹은 나를 너무 힘들게만 하는 주변환경 등 개중에는 조금 감당하기 힘든 것들이 있다. 그런 것들 역시 마음의 흉터로 남아 오래가게 되는 것 같다.


타인의 마음의 상처는 감히 보듬어줄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 사람이 어떤 일을 겪었는지, 어떤 아픔을 갖고 있는지, 말로만 들어서는, 직접 경험해보지 않고서는 결코 헤아릴 수 없다. 그래서 나는 소중한 사람에게 그 상처를 기꺼이 품어주겠다는, 아니면 그 아픔도 안고 가주겠다는 얘기를 하는 것은 참 주제넘고 책임감 없는 소리라고 생각한다. 이런 태도보다는 시간이 지나 상대방이 자신의 상처를 먼저 꺼내 보여줄 수 있도록 곁에서 묵묵히 믿고 지켜봐 주는 것, 그리고 그 속얘기를 마침내 드러냈을 때 찬찬히 들어주고 마지막에 "많이 힘들었지?" 정도의 말과 함께 따뜻한 포옹 한 번이면 그것보다 더 상처를 잘 어루만져주는 방법은 없다.


최근 친한 친구 한 명이 부모님 한 분을 급작스런 지병으로 인해 여읜 일이 있었다. 만 24살. 부모님을 보내드리기엔 비교적 어린 나이라고 생각한다. 특히나 오랜 지병 때문이 아닌 갑작스러운 사별은 누구에게나 준비할 시간도 없이 너무나도 버거운 일로 다가올 것이기에 그 무거운 마음을 나는 지레짐작조차 할 수 없다. 미국에 있는 나는 물리적인 거리와 시간 때문에 장례식에 참석할 수 없었고, 친구로서의 기본적인 도리조차 하지 못했다는 죄책감과 큰 힘이 되었을지 모르겠는 짧은 위로의 메시지만 남기는 것 밖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는 무기력함에 며칠 동안 마음이 좋지 않았었다.


그로부터 두 달 즈음 후인 지금, 내 친구는 자신의 블로그에 적응 중이라고 올렸다. 이 친구도 나처럼 블로그에 글을 쓴다. 종종 시간이 날 때 들어가서 염탐하곤 하는데 가장 최근에 올라온 글을 읽고 많은 생각이 들었다. 내가 느끼기에 지금까지 이 친구의 글들은 가볍고 발랄하게 일상얘기를 올리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가장 최근의 글은 그전에 글들과는 다르게 많은 고민이 묻어나있고 조금은 차분하게 글을 써 내려간 것이 보였다. 내가 가장 감명 깊었던 그 친구의 글귀를 살짝만 발췌해 보겠다.




나는 지금 적응 중이다.

새 직장, 새 핸드폰, 새 가족 환경과 생활 방식

갑자기 모든 게 너무 많이 바뀌었다.


사람은 위기가 닥치면 초인적인 힘을 발휘한다고 한다.

어쩌면 내가 그런 상황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고.

힘이 고갈될 수도 있다.


우선, 더 잘 살기 위해 끊임없이 고민하며 적응하려는 낯선 내 모습에

나는 적응 중이다.




적응이란 단어는 내 지금까지의 짧은 인생의 동반자와 같은 말이다. 초등학생 때 4년의 프랑스에서의 생활, 중학교 3년 한국입시, 고등학교 때 미국으로의 이민, 그리고 첫 의대 도전 실패 등 나도 남들에 비해 평탄한 길을 밟아오진 않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 친구의 글을 읽고 무의식적으로 저런 생각을 했던 나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사실 생각해 보면 사람마다 다들 나름대로의 고충이 있고 각 개인마다 힘듦을 견딜 수 있는 한계치가 모두 다르기 때문에 그 고충들에는 순위를 매길 수 없고 그래서도 안된다고 생각한다


결국 본인의 아픔과 상처를 이겨내는 건 본인의 몫이며 그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다. 이겨낸다는 말이 적절한지조차 모르겠다. 상처는 아물지만 흉터가 남듯이 이겨낸다기보단 안고 살아가며 무뎌지는 것이 아닐까. 이 과정을 내 친구는 적응 중이다라고 표현한 것 같다. 내 최애 웹툰 중에 하나인 "내일"에서 이런 대사가 나온다: "사람 인(人) 자가 왜 그렇게 생긴 지 알아? 서로한테 기대라고 그런 거야". 이 친구 주변에 믿고 기댈만한 사람들이 많이 있어서 잘 적응해 나가길 바랄 뿐이고 아픈 만큼 성숙해지고 있단 뜻일 거다. 그게 친구의 마지막 글에서 묻어 나온 것 같고 그래서 난 네가 참 멋있다. 울고 싶을 때 울고 웃고 싶을 때 웃으며 앞으로 계속 소중한 것들을 많이 만들고 단순한 것들에 감사하다 보면, 힘들었던 슬펐던 순간을 그래도 미소 지으며 돌아볼 수 있는 날이 올 거라 믿는다.


어쩌면 우리는 모두 매일을 서로 각기 다른 상처와 아픔에 적응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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