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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병리과가 정확히 뭔데?

What is pathologists' assistant?

by Kelvin

중학교 때부터 달려온 의대라는 목표를 접은 지 반년 정도가 되어가는 지금, 나는 새로운 목표인 Pathologists' assistant라는 길을 택해 나아가고 있는 중이다. 한국에는 없는 이 직업을 직역하면 병리학자 조무사 정도가 되겠다. 조무사라는 단어가 들어가는 것에 비해 하는 일은 꽤나 중하고 석사과정을 필수로 거쳐야 하며 생각보다는 벌이가 있는 직업이다.


먼저 병리학이 정확히 무엇인지 알아야 이 직업을 이해할 수 있다. 병리학의 사전적 정의는 이렇다.


"병의 본질적 성질을 연구하는 의학의 한 분야. 특히 병을 일으킨 원인을 탐구하거나 질환에 의한 신체 조직이나 기관의 기질적, 기능적 변화를 연구하는 학문이다. 병리 해부학, 병리 조직학, 비료 병리학, 병태(病態) 생리학, 병리 화학 등의 하위 분야가 있다."

-출처: 네이버 국어사전


의미는 정확하지만 조금 딱딱하고 너무 포괄적이라는 느낌이 든다. 개인적으로 조금 더 쉽게 의학 쪽으로 포커스를 두고 뜻풀이를 하자면 이렇다.


"인체 조직/체액 등을 여러 가지 검사와 처리를 통해 특정 질병의 성질을 가지고 있는지 확인하고 병의 진단을 궁극적 목표로 두며 그 질병에 관한 치료방안을 제시하는 의학의 한 분야"


그래서 미국에서는 병리학자들을 이렇게 표현하기도 한다: "병원 무대 뒤에서 빛나는 의사들의 의사."


난 중학교 때부터 병리과가 이런 분야라는 것을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그게 내겐 아주 매력적이었고 만약 의대에 진학했어도 나는 세부분야를 고민 없이 병리학으로 선택했을 것이다.


자, 그렇다면 이제 내가 하고자 하는 이 pathologists' assistant는 어떤 일을 하는 것일까?


대표적으로 조직검사가 있다. 환자에게서 떼어낸 조직이 병리과로 도착하면, 그 조직을 병리학자가 그대로 보고 '음, 이건 어떤 종류의 암이고 이렇게 치료를 하면 되겠군'이라고 바로 진단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거쳐야 하는 중간과정이 아주 많다. 몇 가지 예를 들자면, 갓 받아온 환자의 조직을 특정 모양과 방향으로 잘게 혹은 얇게 썰어야 하기도 하고, 특정 염색약으로 조직을 염색해야 하기도 하고, 급속냉동처리, 방부처리 등 여러 처리과정이 필요하며, 마지막에는 이 조직을 현미경 슬라이드로 만들어 이 슬라이드를 병리학자에게 제출하면, 그때 비로소 병리학자가 현미경을 통해 환자의 조직을 검사하여 진단과 치료방안을 내는 것이다. 저 모든 중간과정들을 미국에선 pathologists' assistant들이 맡아서 한다. 나는 한국에 의대에 다니는 친구가 없어 정보가 제한적이지만 한국에서는 이 중간과정들을 병리과 전공의들이 모두 도맡아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 직업을 plan B로 확정 짓게 된 계기는 같이 협업하던 patholgist's assistant 한 분을 쉐도잉 하게 되면서이다. 한국에서 쓰이는 쉐도잉의 의미는 영어를 들으면서 따라 말하는 학습방법이라 하는데 미국에서는 쓰이는 의미가 다르다. 미국에서의 shadowing은 특정 분야에서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의 하루를 같이 따라다니면서 보내며 질문도 하고 그 직업을 가진 사람의 하루는 어떤지 직접 경험해 볼 수 있는, 즉 그 사람의 그림자가 되어 따라다닌다라는 의미로 쓰인다. 직업 면접을 볼 때, 특히나 의료계열 쪽 직업들은 shadowing 경험의 유무를 중요하게 따지는 경우가 많다. 인터넷 서치로만 조사한 직업에 대한 정보와 직접 그 현장에 가서 보고 듣고 경험해 본 것과는 차이가 크기 때문이다.


이 분의 하루를 쉐도잉 하며 많은 환자들의 수많은 신체장기들을 볼 수 있었다. 내 눈앞에 신장 하나가 떡하니, 다른 스테이션에는 잘게 썰린 유방 조직이 떡하니, 또 다른 쪽에는 길게 늘어진 대장 조직이 떡하니 놓여있는 광경을 목격했었다. 그 조직들을 직접 만져가며 이런저런 처리를 해가는 pathologists' assistant의 모습을 보며 난 확신할 수 있었다. 이런 곳에서 일하고 싶다고. 의대를 준비하면서는 느끼지 못했던 기대감과 설렘을 이 날 하루 쉐도잉을 하면서 느끼게 됐기에 어렵지 않게 새로운 방향으로 키를 잡을 수 있었던 것 같다.


당시 바로 석사 프로그램에 지원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대학원에 지원하기 위한 필요조건이 몇 가지 부족했다. 학부 때 듣지 않았던 수업 몇 가지를 필요로 했고 의대입시시험처럼 대학원 입시시험 GRE라는 것 역시 봐야 했다. 그래서 현재 여전히 하고 있던 research assistant일을 주 40시간에서 30시간으로 줄이고 남는 시간을 수업과 GRE 시험공부로 채우며, 반 직장인 반 학생의 삶을 살고 있다. 연말까지 이런 생활을 하고 원서를 넣을 계획이다.


새 출발의 도입부를 걷고 있는 지금이다. 반 직장인 반 학생의 삶은 내 생각보다 조금 더 고되고 힘든 요즘이기도 하다. 하지만 새 출발이라는 이 단어 하나가 나를 계속 앞으로 나아가게 만들어주고 있다. 또한 최근 인간관계를 조금 넓히는 노력을 조금 했는데 아주 감사하게도 그 노력의 대가로 마음 맞는 사람들을 예상보다 꽤 만나게 되어 새로운 친구들과 교류하면서도 에너지를 많이 얻고 배우고 있다. 아마 pathologists' assistant 관련한 다음 글은 원서 작성을 할 시기인 12월쯤에나 쓸 것 같다. 하지만 그동안 나는 누구보다 열심히, 꾸준히, 성실하게 걸어 나가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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