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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ost beautiful words

내 모습 그대로 인정받는다는 것

by Kelvin

내가 팔로우하는 한 인스타 계정 중에 내가 좋아하는 사람냄새 많이 나는 컨텐츠를 다루는 분이 있다. @hunter_prosper라는 외국 계정인데 어느 랜덤한 곳에 테이블과 바구니 그리고 종이를 놓고 테이블 앞 큰 도화지에 생각을 많이 하게 되는 질문을 하나 적어놓는다. 예를 들자면, 마지막 이별을 통해 배운 것은 무엇인가요? 같은 질문들이다. 지나가던 몇몇 사람들은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익명으로 종이에 작성하고 접어서 바구니에 넣는다. 나중에 이 계정 주인이 쪽지 몇 장을 골라 읽어주는 그런 컨텐츠를 만들고 있다. 여담으로 최근 한국에서 이 계정을 오마주해 비슷한 컨텐츠를 만드는 분이 계신데 @springman185이다. 난 둘 모두 팔로우 해놓고 새로운 사람 냄새나는 컨텐츠가 올라올 때마다 모두 경청하고 있다.


저 계정에서 다룬 많은 질문들 중 오늘 나는 "What was the most beautiful thing you've ever told?" - "살면서 들어본 말들 중 가장 아름다운 말은 어떤 것이었나요?"에 대해 내 이야기를 나누어보려고 한다. 딱 하나만 꼽아보려고 했지만 그러기엔 선택하지 않은 나머지 언어들이 내 머리속에 여전히 각인되어 있기에 가장 인상 깊었던 두 가지에 대해 써보겠다.




1. "널 볼 때마다 항상 존경할 수 있는 어른이라고 생각해"


직전 글에서 나는 아직 서툰 것들이 많은 신입어른인 것 같다 해놓고 이 멘트를 적어놓은 것이 머쓱하긴 하지만 그런 역설적인 모습까지 나인걸 어쩌랴. 나는 이곳에 그저 나의 이야기를 할 뿐이다.


나는 사실 중학생 때부터 어른들에게 그리고 가끔씩은 또래들에게 애늙은이냐는 소리를 종종 듣곤 했다. 나의 어떤 행동과 어투가 애늙은이 같아 보였는지 기억은 잘 나지 않는다. 그저 그 당시의 내가 나다웠던 것뿐. 하지만 나는 이런 얘기들이 그닥 기분 나쁘지 않았다. 좋게 좋게 생각하자는 마인셋이 어렸을 때부터 있어서였는지 난 이 말이 내가 또래들보다 좀 더 성숙해 보이는구나라는 뜻으로 받아들였다. 실제로 아이 같은 모습보단 어른스러워 보이는 모습이 스며 나오는 것이 내가 추구하는 방향이다 보니 그렇게 생각하게 된 것 같다.


그리다가 최근 내가 되게 어른 같아 보인다는 얘기를 각기 다른 두 사람에게서 듣게 됐다. 내 기준에 딱히 어른스러운 모습을 보였던 건 아니었다. 단지 내 얘기를 조금 나눈 정도였다. 하지만 어렸을 때와 다르게 실제로 어른이 된 후 이 멘트를 들으니 마음을 울리는 정도가 달랐었다. 내가 원하던 성숙한 어른의 모습에 실제로 한 발짝 다가간 느낌이랄까. 내심 뿌듯하기도 했다.


한 친구에게는 브런치에도 많이 써놓은 것처럼 내가 의대를 접고 새로운 길을 찾아서 준비하고 있다는 얘기를 해줬다. 오랜만에 만났던 친구라 서로 얘기할 것들이 많았다. 어른스러워 보인다는 이 친구의 말에 구태여 어느 부분이 그렇게 들렸냐고 묻지는 않았다. 이야기를 하면서 그나마 내가 생각했던 어른스러운 말은 '힘들어도 할거 해야지 뭐 어떡해' 정도가 생각난다. 그저 이런 모습이 내게서 보인다니 감사할 따름이었다.


그리고 다른 한 친구에게는, 사실 한 살 형이지만, 외로움을 많이 타냐는 질문에 딱히 그렇지 않다고 답하고 그 이유를 설명해 줬었다. 긴 얘기라 요약하자면 대학교 1학년 시절 친구 사귀기가 어려운 상황에서 혼자서도 잘 지내는 방법을 나름대로 터득했다는 내용이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자세히 브런치에 써보겠다. 내 얘기를 듣고 이 형은 본인이었으면 그냥 무너졌을 것 같은데 대단하다며 어른 같다는 말을 해주었다. 난 그저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쳤던 순간이 남에겐 어른스러워 보일 수 있단 걸 깨달으며 한 번 더 감사했던 순간이었다.




2. "내가 본 너는 다정다감하지만 끌려다니지 않고 좋고 싫음이 확실해"


나는 지금까지 '다정하다'는 아니지만 비슷한 의미의 묘사를 많이 듣곤 했다. 그중 대표적인 것들은 '착하다'와 '배려심 넘친다'였다. 둘 모두 긍정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 칭찬이라는 걸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저 두 단어들은 내가 개인적으로 그리 좋아하는 말들은 아니다. 그 이유는 역설적이게도 너무 많이 들어봐서.


당연히 처음에는 나도 듣기 좋은 칭찬이었다. 그런데 가면 갈수록 나에 관련한 칭찬이 이것밖에 들리지 않았다. 정말 노이로제 걸릴 만큼 듣다 보니까 나도 생각이 점점 꼬여가면서 칭찬이 칭찬으로 들리지 않게 되어 버렸다. 괜히 '애는 착해'라는 말처럼 애는 진짜 착하기는 한데 다른데 좀 하자 있어 보인다는, 사실은 칭찬이 절대 아닌, 그런 말처럼 들리기도 했다. 또 배려심 넘친다는 말은 종종 우유부단하게 보인다거나, 상대방 입장에 있어서 부담스럽다는 느낌으로 받아들여질 때도 있다는 얘기도 들어봤었다. 그러다 보니 내가 만만하게 보이고 남자답지 않게 보이나 하는 소위 '착한 남자 콤플렉스'라는 게 은은히 내 안에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러던 중 내가 전심으로 좋아했던 한 여자아이가 내게 저 말을 건네주었다. 코드가 잘 맞았던 친구라 사적으로 대화를 나눌 때가 많았다. 개인적인 얘기를 많이 했던 터라 내 성격이 많이 내비쳐졌을 것이다. 나 역시 대화하면서 이 친구를 알아가며 마음이 커져갔었다. 밝고 예뻤던 내가 마음에 두고 있던 친구가 해준 말이기에 기억에 더 남는 것도 물론 있지만, 나조차 어찌 말로 표현하기 어려웠던 내가 되고 싶었던 선한 이미지의 표본, 다정하지만 강단 있는 모습을 직접 묘사해 주니 더욱 마음이 요동쳤던 것 같다. 그동안 내 성격의 단점을 가리고 강점을 부각해내려 했던 노력의 결과를 알아봐 준 것에 대해 감사하기도 했다. 아쉽게도 이 여자아이와는 잘 이어지지 않았지만 이 친구가 해준 저 멘트는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 앞으로도 나의 이런 모습 더 다듬고 쭉 보여줄 수 있기를.




이 둘 말고도 나는 예쁘고 힘이 되는 말들을 종종 들어왔다. 그만큼 내가 열심히 살아왔고 그걸 알아봐 주는 좋은 사람들을 곁에 두고 있다는 방증일 것이다. 앞으로는 나도 주변 사람들에게 이런 말들을 해줄 수 있는 사람이 되도록 노력해 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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