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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nnah Aug 14. 2017

우연히 당신을 만났다

무어라 해야할지 몰랐지만 그래도 웃었다

근황은 가끔씩 듣고 있었지만

그래도 그 곳에서 마주치게 될 줄은 몰랐다


요즘 사람들로 붐빈다는 카페에서

겨우겨우 문 앞 끄트머리에 자리를 잡고

친구가 더 좋은 자리가 없나 둘러보겠다고

간 사이에


카운터 안쪽에서 앞치마를 두른 당신이

나를 보았다


그렇게 오래전일인데도

바로 알아봤는지

당신이 웃었다


그래서

나도 웃었다


그날 친구와 그 카페에서 수다를 떠는 내내

나는 무슨 생각인지

왜 그런지도 모르고

묘한 의무감과 호기심으로


당신이 일을 하고 주문을 받으며

몇 번이고 웃는 것을

몰래 바라보았다


차라리 당신이 직원이어서, 바빠서 다행이었다

똑같이 손님이었으면

어색한 안부인사 따위를 나누지 않는 것도

오히혀 어색했을 테니까


당신이 몇 년 전에 결혼한 것을

후배를 통해 들어서 알고 있었다


당신은 나에게 미안해한 일이 많았고

나도 결국엔 당신에게 미안했다


실은 당신이 내게 미안해한 것보다

내가 훨씬 더 많이 미안해했어야하는데

그러지를 못했다

그게 내내 미안했다


그 시절의 나는 너무 어렸고

너무 이기적이었으니까


혹시

그래서 나는

아직도 이별 중독자처럼 살고 있는데


당신은 단란한 가정을 꾸리게 된 걸까?


당신이 나를 잃고

그 시절의 꿈을 접고

그 대신 사랑스런 아내와 아이를 얻었다면


그 시절의 꿈을 끝내 놓지 않고

돌을 겨우 쌓아 올리듯 조금씩 구체적인 무언가로

만들어가는 행운을 얻게 된 나는


이미 당신을 잃고

또 얼마나 많은 것을 더 잃게 될까?


나는 그것이 두려운가?

아니면 기꺼이 받아들일 각오를 다지는 중인 걸까


잘, 지내는 척 미소짓는게

그럴듯하게 근황을 읊는게

다 무슨 소용이 있을까

어쨌든 나는, 당신은

각자의 선로 위를 달리고 있다

살아있다

살고있다


그걸로 충분하니까

그래서

마치 과거의 전우를 다시 만난 심정으로

우리는 서로를 보고 웃었다


차마 다시 돌아가고 싶지는 않을

치열한 전쟁터였을지라도

오랜 세월이 지난 뒤에 돌아보면

이상한 노스탤지아를 자아내기 마련이니까


역시 세상은 이상한 우연으로 가득차있고

그 날의 커피는 무척 맛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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