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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nnah Jul 12. 2017

그 날 밤의 스쿠터에서

난 혹시 유령인 것은 아닐까

그 날

도로에 쌓인 눈이 아직 채 다 녹지 않았던

추운 겨울날


스쿠터를 탄 네 뒤에 타고

몇 번이나 휘청거리거다

결국 스쿠터를 세울 때 기어코 넘어져서

내 다리에 생긴 멍이

너와 이별한 후에도 한참을 남아있던

그 날


사실 가장 아찔했던 순간은

공사 때문에 도로위에 깔아놓은 철판 위에서

빠르게 달리고 있던 도중에

휘청했던 바로 그때였어


만약 그때 우리가 넘어졌으면

뒤에서 빠르게 달려오고 있던 큰 차가

여지없이 우릴 덮쳐버렸을테니까


요즘 이상하게 문득문득 그 순간이 생각나

그리고 가끔은 이런 생각도 들어

혹시 나는 그때 죽었는데

바보같이 죽은 줄도 모르고

이렇게 계속 나로 살아가고 있는건 아닐까?


만약 그때 죽었다면

지금 알고 있는 많은 것들을 몰랐겠지

네가 그렇게 잔인한 사람이었다는 것도

내가 그렇게 바보같은 사람이었다는 것도


그땐 그야말로 스쿠터위에 있던

너와 나 둘밖에 이 세상에 없었던 시절이었으니까


그렇게 죽지 않아서 다행이다

그렇게 죽지 않아서 다행이다


그렇게 생각하다가도


그냥 그런줄로만 알고 행복의 절정에서 죽는게

차라리 나은건가

그 즈음 찢겼던 마음과 남은 상처를 생각하면

뭐 그런 바보같은 생각을 해보다가


그래도 역시 그렇게 죽지 않아서 다행이야


더 좋은 사람을 찾을 거야

그래서 가짜 행복말고

진짜 행복 속에서 죽을거야


아니 차라리 다음번엔

진짜라고 믿고 있을 때

죽을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하는 건가


이렇게 시니컬해진 것도

지금까지 내가 살아있는 덕분이겠지


그래서인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지

문득문득 소름이 돋도록

생생하게 떠오르는

그때 그, 흔들리던 스쿠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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