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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니얼 May 31. 2022

사투리도 이저븐당께

기억

전라도에서 36년간을 살아온 토종 전라도 사람이다. 술에 취하면 본능적으로 사투리를 쓰지만 평소에는 의도적으로 표준말을 쓰려고 노력한다. 그래설까 이도 저도 아닌 이상한 억양으로 말할 때가 많고 감정을 표현 할 때는 로보트 같다는 소리도 듣는다. 사투리를  대해 부정적인 편이다. 사투리를 쓸 때면 오히려 멋있다고 말해주는 친구들도 있지만 직장생활에서의 사투리는 오해를 사는 경우도 있고 갑자기 화낸다는 느낌을 줄 때도 있어서 가능하다면 안 쓰고 싶다. 나름 노력도 했고 예전에 비하면 많이 줄어들었다. 그래서인지 고향에 내려가면 서울말 쓴다고 핀잔을 듣기도 한다. 오랫동안 무의식적으로 사용하던 사투리도 점점 잊어버린다. 인생의 거의 모든 시간을 사투리를 쓰고 살았는데도 말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많은 것들을 잊어버리고 못하고 살아간다.


중학교 때 왕따를 당했던 안 좋은 기억이 있다. 원인이야 많겠지만 어렸을 적 가난했고 부모님은 사이가 좋지 않았다. 심리적으로 안정감이 없었던 나는 주변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고 항상 꾸질꾸질한 차림새였다. 냄새난다고 놀림도 많이 받았다. 몸집도 작고 하는 짓도 우스웠고 건들면 민감하게 반응하니 괴롭히기 좋은 요소들을 많이 가지고 있었다. 놀림의 대상이 되는 건 불 보듯 뻔한 거였다. 당시 나를 괴롭혔던 애들의 이름과 얼굴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동창회에 나가지도 않았고 고향에 내려가더라도 만나기 힘들지만 가끔 그때 왜 그랬는지 물어보고 싶은 마음이 생기기도 한다. 이미 지나간 일이고 대부분 치유가 되어버린 애써 기억하지 않으면 생각도 나지 않는 낡은 기억이다.


이름도 기억나지 않은 어떤 애를 괴롭혔던 기억이 있다. 그 친구는 동생과 손을 잡고 걸어가고 있었는데 내가 쫓아가서 그 친구의 가방을 발로 차고 도망쳤다. 그 친구의 동생은 주저앉아 울었고 쌍심지를 켜고 나를 바라보던 그 친구의 표정이 아직도 선명하게 잊혀지지 않는다. 이 기억을 꺼낼 때마다 너무 미안하고 괴롭다. 상처를 받은 것보다 누군가에게 상처를 준 기억은 더 오랫동안 지워지지 않고 나를 괴롭힌다. 그땐 왜 그랬을까? 나보다 약한 존재에게 내가 당했던 설움과 분노를 표현했던 것 같다. 찌질하게도 말이다. 어렴풋한 기억으론 그 친구도 나와 비슷한 처지였다. 친구들에게 따돌림과 괴롭힘을 당하고 있었다. 내 모습이 그 친구에게서 보였고 그게 싫었던 것 같다. 시간을 돌릴 수만 있다면 그 순간을 고치고 싶다. 내가 사투리를 점점 잊어버리는 것처럼 굳이 꺼내지 않으면 생각나지 않는 기억처럼 그때의 안 좋은 기억을 그 친구가 잊어버렸길 간절히 바래본다.


많은 감정들 기억들을 잊어버리며 살아간다. 잊어버렸다고 생각한 것들이 문득문득 기억의 수면 위로 올라와 자신을 돌아보게 만들고 웃음 짓게도 한다. 바보 같은 행동을 했던 자신 때문에 때론 욕이 올라오기도 한다. 기억이란 인간이 가진 축복이기도 하고 상처의 딱갱이를 떨어뜨리는 못된 녀석이기도 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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