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방과 웨딩홀에는 깨지는 것들 투성입니다. 예식 한 번에 쓰이는 꽃병들이 보통 250개쯤 되는 것 같아요. 버진로드 입구 장식, 포토테이블, 신부대기실과 하객들의 테이블에 올라가는 유리 실린더도 엄청나게 많습니다. 버진로드를 장식하는 각기 다른 높이의 초도 당연히 유리병에 담겨있습니다. 테이블마다 은은하게 빛나는 초들 역시 유리 초컵과 와인잔에 띄워져 있죠. 높은 센터피스에 달려있는 행잉볼과 꽃 오브제, 무대를 장식하는 잼병 역시 유리입니다. 튤립 실린더 아래 깔리는 흑경들도 유리죠. 눈 닿고 손 닿는 모든 곳에 깨질 것들이 가득해요.
유리들은 일주일 내내 깨집니다. 닦다가, 물 채우다가, 꺼내고 넣다가, 꽃을 꽃다가, 포장하고 옮기다가 깨집니다. 결혼식 당일에는 준비하면서, 점심과 저녁 예식 사이 '뒤집기'를 하면서 수시로 깨져요. 한가득 담겨있는 물이 쏟아지고, 유리조각들이 하객들 자리에 튀면 순간적으로 확 짜증이 나곤 합니다. 그래도 실장님도, 대리님도, 저를 포함한 같이 일하는 모든 동료들은 그때 억지로라도 괜찮냐고, 안 다쳤냐고 먼저 소리 냅니다. 표정과 말투가 사나워도 약속한 듯이 저 말이 먼저 나와요. 그래야 합니다. 짜증보다는 일보다는 사람이 먼저라고 배웠으니까요.
올해만 12번 진로특강을 다녀왔습니다. 5월부터 계약직으로 일하면서 그 수가 많이 줄었지만 스케줄이 맞는다면 쉬는 날에는 꼭 나가려고 합니다. 오늘은 하남의 미사강변중을 다녀왔어요. 잠실로 이사 와서 잠실광역버스환승센터 덕을 톡톡히 봅니다. 특강의 목적은 미래에 어떤 직업을 가질지 고민해보고, 활동 결과를 눈에 보이는 액자로 예쁘게 남기는 겁니다. 보통 4교시, 3시간 반 정도 진행되고 이론수업이 적고 액자를 꾸미고 발표하시는 시간이 더 많아요. 어느 학교를 가든 예쁘고 잘 된 작품을 만들어 내는 게 주관사의 목적이 됩니다. 특강을 결정하는 진로부장님이나 학년부장님, 교장선생님들은 수업 하나하나를 들어가 참관해볼 순 없고 사물함 위에 예쁘게 진열된 결과물들이 중요한 판단의 근거가 되니까요. 그래서 항상 여러 색깔을 사용해서 다채롭게, 빈 공간 없이 꼼꼼하게 꾸미도록 지도해달라는 코멘트가 붙습니다. 열심히 하는 친구들은 알아서 잘합니다. 고민이 되는 친구들은 대부분 귀찮기는 하지만 하고는 있는 친구들이에요.
액자에 테두리를 혹은 전체를 검은색만 사용해서 완성하거나, 테두리 없이 내용만 쓱쓱 적거나, 빈 공간이 많게 완성된 학생들에게 다 끝난 거냐고, 더 하고 싶은 건 없냐고 물으면 그때 그때 답이 다릅니다. 반 분위기나 개개인의 성향에 따라 손을 더 대기도 하고 자기는 이게 끝이라며 손을 떼기도 해요. 저는 적절한 틀이 나오기 전까지는 이래저래 잔소리를 하는 편이지만, 모양을 갖춘 뒤에는 최대한 말을 줄이는 편입니다. 그전까지 충분히 쏟아내고 지도했을 때 나오는 결과물들과 학생들의 집중도는 제 몫이라고 생각해요. 또, 하기 싫다는 친구를 좀 더 예뻐 보이게 하려고 닦달하는 게 싫기도 하고요. 여러 번 물어보고 자주 액자를 쳐다보긴 하지만 별로냐고, 이상하냐고 묻는 학생들에게 언제나 '괜찮다'라고 해줘요. 정말 아닌 것 같을 때에도 우선 꾹 참고 말해줍니다. "괜찮아, 그런데 이런 건 어때?"
지나다 보면 괜찮다는 말이 위로가 됐던 적이 많아요. 그만큼 공허한 말도 없지만 누군가가 열심히 말해주는 괜찮다는 말이 힘이 됩니다. 대부분 다 괜찮아져요. 유리병이야 사면되고, 액자야 조금 안 예쁘면 어떻습니까. 정말 너무 중요하고 심각한 걸 망쳐버린 게 아니라면 좋은 건 아니지만 괜찮기는 합니다. 물론 안 괜찮은 일들도 많죠. 하지만 꼭꼭 씹어 넘길만한 일에는 괜찮다고 해주고 싶습니다.
다 괜찮은 건 아니지만 그건 괜찮아요. 걱정은 많이 하고 우리 방법을 찾아봅시다.
저도 잘못한 일이나, 잘못된 일이 있으면 엄청 걱정이 많은 편이에요. 누군가가 고민과 걱정을 얘기한다면 괜찮은지 아닌지 살펴봅시다. 괜찮은 일에는 최대한의 관용을, 안 괜찮은 일에는 냉철한 결단을 바랍니다. 자주 행복하고 가끔만 불행하기를 빕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