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15일(월)에 검단산-용마산-남한산성 연계산행을 하려다가 또 실패했었습니다. 같이 간 친구와 함께 두 번째 도전과 두 번째 실패였어요. 넉넉히 6시간이면 되는 산행인데, 검단산을 워낙 자주가다 보니 물 한 병 없이 쫄랑쫄랑 시작한 게 패착이었습니다. 용마산 정상즈음에서 한 시간가량 내려가 다시 남한산성에 들어야 하는데 그때부터 이미 체력에 한계를 느꼈습니다. 남한산성에 들지 못하고 아래 식당에서 밥을 먹으며 6월에는 준비를 좀 더 해서 서울 밖의 산에 가보자 했고, 6월 3일 토요일에 제천 월악산에 다녀왔습니다.
월악산과 계룡산 중에 고민했어요. 당일로 다녀올 거라 거리가 중요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산이 좋아야 했습니다. 대전과 제천은 차로 가면 시간은 비슷하게 걸리더라고요. 대전은 언젠가 가볼 일이 생길 것 같기도 했고, 월악산이 꽤나 힘들고 또 그만큼 좋다고 해서 이번 산행은 월악산에 가보기로 했습니다. 월악산 주봉이 남쪽에 단 하나밖에 없는 영봉이라는 점과, 한국의 5대 악산 중에 하나라는 점이 너무 매력적이었어요. 험한 산들을 다녀보니 그 힘든 길을 올라가는 이유들이 있더라고요.
토요일 새벽 다섯 시에 출발하기로 했는데, 전날 잠을 두 시간정도밖에 못 잤습니다. 다음날 일찍 뭔가가 있으면 오히려 잠이 잘 못 드는 성격이라 컨디션이 좋지는 않았어요. 친구 차를 타고 꾸역꾸역 잠을 쫓아가며 제천 월악산 초입에 도착하니 여덟 시 반쯤 되었습니다. 가는 데에는 휴게소를 포함해 두 시간 반쯤 걸렸어요. 등산화를 신고 전날 얼려둔 물과 에너지바를 잔뜩 챙겨서 등산을 시작했습니다. 월악산 등산 코스는 여럿인데 저는 덕주사로 들어가 영봉을 오른 뒤 다시 코스를 돌아 덕주사로 내려왔습니다. 월악산은 차량이 아니면 접근이 힘든데, 덕주사 앞 휴게소 근처에 차를 대고 그 주변에 계시는 택시를 타 보덕암까지 간 뒤 영봉을 올라 덕주사로 내려오는 일방향 코스가 저는 제일 마음에 들었습니다. 제가 오른 길로 내려오는 등산을 별로 좋아하지 않거든요. 하지만 택시비가 아깝기도 하고(3만 원쯤으로 들었습니다) 굳이 그렇게 까지야 하는 생각이 들어 이번에는 순환하는 코스로 영봉을 다녀왔어요.
휴게소에서 영봉까지는 편도 6km, 국립공원피셜로는 3시간 40분 정도 걸린다고 합니다. 산이 험한 편이라 경사가 가파른데, 계단으로 올라야 해서 중간에 꽤나 힘든 구간이 있습니다. 계단을 50분 정도 올라야 하는 길인데, 전날 잠을 많이 못 잔 탓에 평소보다 체력이 달려 고생했습니다. 물을 안 챙겨갔으면 아마 도중에 내려와야 했을 정도였어요. 6월 초라 온도가 그리 높지 않았고. 그날 구름이 중간중간 도와줘서 다행이지 더운 여름에는 못 오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자랑이지만) 제가 꽤나 힘들어 한 산이니 등산 경험이 꽤나 있으신 분들이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가시는 걸 추천드립니다. 한 시간 반쯤 오르니 몸에서 땀이 확 나고 정신이 들더라고요. 그 뒤로는 열심히 올라 960고지 이후에는 잠시 능선을 타다가 다시 영봉에서 꽤나 높은 계단을 올라야 했습니다. 마애불 이후 나오는 정말 힘든 계단구간에서도 뒤돌아보면 경치가 너무 좋았고, 월악산은 충주호를 끼고 있어 960고지 이후 능선에서 보는 경관도 참 좋았어요. 송계삼거리까지 2시간 정도 걸려서 뭐야 이게 다인가 했는데 주봉인 영봉 등산은 그때부터 시작입니다. 1시간 정도 더 걸려 영봉을 오르고 나니 월악산이 명산인 이유를 잘 알겠더라고요.
저와 친구는 사실 정상에서 경치를 오래 감상하거나, 정취를 느끼는 편은 아닙니다. 정상에서 15분 정도 있다가 다시 후다닥 하산을 시작해서 열심히 내려오고 보니 두시가 조금 못되었더라고요. 덕주사 앞 휴게소에서 영봉을 다녀오는데 다섯 시간 반쯤 걸렸으니 이번에도 아주 빠른 산행이었습니다. 잠을 잘 못 잔 덕에 계단코스에서 친구에게 꽤나 밀렸었는데 다녀오고 보니 제 탓만은 아니었어요. 근처에 수안보 온천이 있어 잠시 들러 목욕을 한 뒤 앞에 있는 국숫집에서 국수와 감자전을 먹었습니다. 국수와 감자전이 생각보다 가격이 너무 싸고 양이 많아 깜짝 놀랐어요. 길이 막히기 전에 서울로 돌아오기 위해 좀 서둘렀고, 집에 도착하니 오후 여섯 시였습니다. 여름이라 아직 해는 밝았고 집정리를 하고 그날을 아주 일찍 잤습니다.
월악산은 악산인 이유가 있습니다. 한국의 5대 악산이 월악, 설악, 치악, 운악, 삼악이라던데 월악과 설악을 다녀왔으니 이제 세 산이 남았습니다. 치악은 언젠가 한번 가게 될 것 같아요.
등산이 MZ에게 유행이었던 시간이 살짝 지났지만 그래도 등산하는 데 제 또래나 20대분들이 거의 없어서 놀랐습니다. MZ는 정말 서울에만 있나 봐요. 영봉 정산에서 월악을 2천 번 넘게 오르신 80대 할아버지를 만났습니다. 등산지팡이에 구슬이 달려있는데 딸랑딸랑 소리를 내며 내려가시는 속도도 아주 빠르셨어요.
월악은 주봉인 영봉을 보는 코스는 모두 난도가 높습니다. 신륵사에서 오르는 길이 3.6km로 제일 짧으니 조금 걱정되시는 분은 이 코스로 길게 다녀오시면 될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는 보덕암코스로 하봉 중봉 영봉을 지나 제가 간 덕주사코스로 내려오시는 걸 추천합니다. 12km가 조금 넘고 시간은 7시간 정도로 생각하시면 넉넉하실 것 같아요. 국립공원이라 등산로가 잘 되어있지만 등산화(중등산화를 언제나 추천합니다)와 물, 간식을 꼭 챙기셔야 합니다.
등산 이후에는 15분 정도 거리에 수안보 온천이 있습니다. 많이 낡아졌지만 개운하게 목욕하고 돌아오시는 게 좋아요. 땀이 많이 나거든요. 저는 그 앞 이화동 잔치국수에서 늦은 점심을 했습니다. 감자전이 정말 맛있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