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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둥둥 Jul 03. 2024

39. 오늘 꽃시장 다녀왔습니다.

계절을 느끼는 방법이 이렇게도 달라지는군요

 백화점에서 근무하는 5년 동안, 건물 안 창문도 없는 사무실에서 일하지만 계절감은 생생하게 느꼈어요. [시즌] 별로 바뀌는 옷들과 계절별 마케팅을 계획하고 구상하며 봄 내음은 없지만 [봄내음 넘치는 특가상품전] 같은 멘트를 적고, 이벤트를 기획했습니다.


 백화점은 바깥보다 한 달에서 한 달 반쯤 계절이 먼저 바뀝니다. 여름은 가정의 달 시즌이 끝나가는 5월 말쯤 시작되고, 8월 말쯤에 추석이 되며 끝나는 식이죠. 저는 매일 층을 돌며 마네킹이 옷을 갈아입는 소리로 계절이 바뀌는 것을 들었습니다.


 꽃집 사장이 된 요즘은 계절이 바뀌는 걸 꽃으로 확인해요. 호텔에 다닐 때도 그랬지만, 직접 시장을 돌며 그때그때 쓸 꽃을 고르다 보면 지난번에 예뻤던 꽃은 이제 시장에 나오지 않고, 새로운 종류의 꽃들이 물통을 채우고 있습니다. 꽃시장도 계절이 조금 일찍 바뀌는 편이에요. 농장에서 시기에 맞춰 출하하기 때문에 바깥의 날씨보다 살짝 이르게 바뀌고, 수입되는 나라의 계절에 따라 달라지기도 합니다. 웨딩 꽃장식에 사철 필요한 유칼리툽스 시네리아는 이탈리아에서 수입되다가 중국, 호주나 다른 나라에서 오기도 해요. 중국에서 주로 수입되는 시기에는 줄기가 굵고 억세서 아 이제 계절이 바뀌었구나 생각이 듭니다.


 지금 꽃시장은 한참 여름입니다. 네덜란드에서 수입되는 튤립의 양은 확 줄었고, 동남아에서 오는 꽃들은 그곳의 날씨가 너무 더우니 조금 조심해서 사야 할 시기예요. 아직까지 국산 장미의 상태는 괜찮지만 앞으로 점점 얼굴이 작아지고 줄기가 가늘어져 한동안은 에티오피아나 콜롬비아 수입 장미를 써야 할 겁니다. 대신 예쁜 도라지꽃들이 시장에 많이 보이고, 맨드라미, 리시안서스, 백야, 신지매, 해바라기 등 여름 꽃들이 자리를 넓혀가고 있어요. 꽃을 주문하는 고객분들도 시원한 느낌으로 흰색과 초록이 많이 들어간 꽃다발을 주문하는 빈도가 늘었습니다. 저도 기분에 따라 쨍하고 시원한 꽃들과 함께 희고, 작고, 제멋대로 자란 여름 느낌의 꽃들을 냉장고에 가득가득 채워 넣고 있어요.


도라지꽃, 모나르다, 아스파라거스


 지난주에 외국에 사는 어느 분께서 꽃집 근처의 아파트로 프리지아 꽃다발을 배송할 수 있냐고 문의가 왔었어요. 프리지아는 대표적인 봄꽃이고, 시장에는 1월부터 4월 즈음까지 나와요. 향이 좋고 색이 예뻐 그 기간에 많이 씁니다. 하지만 배송을 요청하신 7월 말에는 구할 수 없는 꽃이라 7월 중순쯤 그와 비슷한 꽃을 시장에서 찾아 사진과 함께 다시 제안드린다고 하고 우선 상담을 마쳤어요. 오늘도 꽃시장을 둘러보며 프리지아처럼 생긴 꽃이 있을까 찾아봤는데, 아직 대안을 찾지 못했어요. 저는 여름 내내 수박을 달고 사는데, 지금 이렇게 저렴한 수박이 가을에 가까워질수록 몇 배 비싸집니다. 계절에 맞는 옷과 꽃과 과일은 참 좋은 것이구나 생각했어요. 오늘 꽃을 잔뜩 사 꽃냉장고를 채워뒀으니, 들어가는 길에는 수박을 사 냉장고를 채워야겠습니다.


양재에서 사 온 부레옥잠과 물양배추



 

계절이 바뀌고 한동안은 신나서 새로운 꽃을 사지만, 그것도 오래가지 않습니다. 항상 새롭고 재미있는 뭔가를 찾다 보니 고속터미널, 양재, 과천을 휘젓고 다녀요. 아! 오늘은 연꽃을 처음 사봤습니다. 어떻게 꽃을 피울지 너무 궁금해요.  이제 매장에는 작약은 없습니다. 여름이 주는 새로운 꽃들을 즐길 거예요.


이게 뭐예요? 연꽃!? 두 다발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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