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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tsu Aug 09. 2022

나는 새삼스레 몽골로 떠났다.

몽골몽골한 몽골 여행 프롤로그 겸 에필로그

그러니까, 시작은 충동적이었다. 도저히 뭔가 손에 잡을 수 없는 그런 시간, 아무리 펜을 굴려도 자판을 두드려도 느껴지는 건 부족함 뿐인 시간. 쉴 새 없이 똑딱거리는 시곗 소리에 지쳐 드러누워 버린 시간. 그런데 어쩌나 발라당 드러누워봤자 시곗 소리는 멈추지 않는다.


'아무것도 안 하는 건 지금까지 수 없이 반복해왔잖아? 뭐라도 해야지.'


뭐라도 해야 된다는 절박함은 이상한 곳으로 튀었다. 뜬금없이 나는 항공권을 뒤지기 시작했다. 그렇다, 내게 필요한 것은 새로운 공기. "지금 당신에겐 오로지 공기가 필요합니다, 공기, 공기가!” 


이 주 이내에 떠날 수 있으면서도 비교적 저렴하게 구할 수 있는 항공권이 있을까? 해외여행이란 무릇 항공권이 저렴해야 유용할 수 있는 자금이 많아지는 법. 물론 출입국에 있어 코로나 제반에 관한 문제가 없어야 한다. 엔데믹에 걸맞지 못한 행보를 걷고 있는 옆 나라에 화가 치밀었다. 사실 한국에서 가볍게 떠나는 데 일본이라는 막강한 후보를 대체할만한 나라는 없다. 그런데 아직도 쇄국정책을 접지 못하고 있으니 어쩌겠는가, 내가 페리 제독도 아니고.


이것저것 뒤지다 보니 보복 소비라는 생전 처음 들어보는 단어와 함께 말도 안 되게 비싼 비행기표가 나를 당황케 했다. 그나마 베트남으로 향하는 항공권의 가격이 하노이, 호찌민, 다낭 가릴 것 없이 이십만 원대로 최저가를 형성하고 있었다. 아니, 이십만 원 대면 판데믹 이전보다 저렴한 거 아닌가? 역시 이에 맞춰 베트남의 공격적인 마케팅 기사들이 범람하고 있었다. 그렇게 하롱베이로 떠날 길에 오르려던 찰나, 한 여름에 베트남을 간다는 건 죽음을 자초하는 것과 같다는 말이 생각났다. 천국의 표값과 지옥의 날씨를 저울질하던 나는 '맞아, 베트남은 역시 겨울에 가야지.'라는 진리를 되새기며 베트남 관광 공사가 뻗친 유혹의 손길을 뿌리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어디를 가야 할까? 사실 동남아라는 범위를 배제해버리면 내게 맞는 '전체적으로 저렴한 비용'을 소화해낼 수 없기 마련이다. 그건 판데믹 이전에도 이후에도 마찬가지다. 지도를 아무리 돌려봐야 이 주 안에 떠나야 한다면 그 가격이, 그 가격이다. 베트남 관광 공사의 마수가 다시 뻗쳐오고 있었다. 아, 내게 신선한 공기를 제공해줄 나라는 여기뿐이란 말인가?


그런 내게 손짓을 보낸 건 생각지도 못한 곳, 중국과 러시아 사이에 있는 땅에서 솟아오른 가격표였다. 내가 딱 감당할 수 있을 만한 가격, 울란바토르. 말로만 듣던 칭기즈 칸의 나라, 그리고 일종의 닫혀 있는 나라, 몽골. 나는 몽골이 올해 처음으로 무비자 관광을 시행했으며, 코로나 제한이 없고 날씨가 시원하다는 것만 확인한채 타임 리미트의 유혹에 넘어가버렸다. 결제하는 순간까지 나는 몽골에 뭐가 있는지 아무것도 몰랐다. 처음으로 혼자 훌쩍 떠나기로 결심했던지라 내 안 에는 두근거림과 안일함이 뒤섞여 범벅이 되었던 것이다.


결제를 마치고 나서야 몽골에서 뭐할지 고민을 시작한 나를 기다리던 건 차라리 취소수수료를 감당하는 것이 어떤지 묻는 강력한 유혹뿐이었다. 모든 부킹 사이트에서 수도인 울란바토르 외 다른 어느 지역 숙소도 찾아볼 수 없다는 것, 거의 모든 한국인이 투어 상품을 이용해 몽골을 여행한다는 것을 확인하며 식은땀을 흘리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나는 그니까 다른 사람들과 내내 함께하며 정해진 길을 쭈욱 따라가는 패키지를 갈 수가 없는 사람이다. 그건 내게도 불행이고 나 같은 사람과 함께해야 하는 다른 이들에게도 불행이다.


열흘이 채 안 되는 짧은 여정과 그 기간 동안에도 오락가락할 수 있는 내 컨디션을 고려해봤을 때, 무엇이 최선일까를 따져볼 필요가 있었다. 일단 구글링, 에어비앤비 그리고 현지에서 많이 사용한다는 페이스북 메시지를 통해 어떻게든 몽골 쪽 숙소에 이곳저곳 컨택해보려 했다. 그리고 대략적인 이동시간과 비용, 위험도를 계산해보며 가장 실현 가능한 계획들을 그려보았고, 보통 투어로 가는 남쪽에 고비, 북쪽에 훕스굴 호수에 여러 가지 면에서 부적합 판정을 부여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열흘을 고민하던 나는 무려 여행 전날까지 어떤 예약도 하지 않았다.




출발일 전날 저녁, 이틀 전에 인터넷으로 주문한 배낭이 대전허브에 갇혀 평소에 쓰던 작은 백팩에 억지로 필요한 것만 쑤셔 넣었다. 이건 분명히 어깨끈이 끊어질 거라고 생각했지만 장하게도 백팩은 무사히 성한 채로 여정을 끝내고 돌아왔다. 비행기표와 첫날 숙소만 정한채 떠난 몽골이었지만 대체적으로 그려냈던 계획대로 현지에서 움직일 수 있었고 그 여정은 전혀 예상치 못한 즐거운 경험이었다.


다만 여행하면서 사진과 영상을 찍을 욕심에 작은 카메라와 아이폰을 들고 다니며 고생했는데, 한국에 와서 확인해보니 정말 엉망진창이었다. 영상은 본래 촬영 내내 모니터링해도 원하는 대로 안 나오기 마련인데 보지도 않고 덜렁덜렁 들고 다녔으니 아주 엉망일 수밖에. 더군다나 짐벌도 마이크도 없으니 영상은 울렁거리고 음향은 노이즈가 잔뜩 끼어있어 지켜보기 안타까울 정도다. 심지어 카메라는 24 프레임에 맞춰놨지만 아이폰의 기본 촬영은 30 프레임으로 맞춰져 있어 둘을 같이 편집 못하게 만든 것은 덤이다. 많은 유튜버들이 고프로 하나 들고 다니는 이유는 고프로가 막 쓰기도 좋고 가벼운 것도 있지만 초광각이기 때문이다. 대충 막 들고 다녀도 어느 정도 다 찍혀있고 각이 넓으니 흔들리기도 덜하다. 그렇다, 그들이 무거운 카메라를 안 들고 다니는 데는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여행은 무엇일까? 처음으로 혼자 떠난 여행, 정말로 오랜만에 여권을 들고 떠난 몽골은 내게 여행의 개념을 새로하는 경험이었다. 다음 날에는 누구를 만날지 무엇을 볼지 아무것도 모른다. 오늘 무리해서 걸어 다니는 바람에 죽을 것 같지만, 그래도 눈으로만 담을 수 있는 풍경을 보고 친절하고 좋은 사람들과도 지나칠 수 있었다. 그렇게 하루를 즐기고 다음 날을 기대한다. 이 다음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전혀 알 수 없지만 오늘을 즐기고 내일을 기대한다면 그것만큼 행복한 게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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