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편지를 펼쳐보다
오래 묵고 낡은 상자 하나를 꺼냈다. 후보생 시절에 받은 편지와 쪽지들을 모아 둔 종이상자다. 벌써 20년을 보관할 만큼 소중한 추억들이 담겨 있다. 그중 오래되고 낡은 편지 하나를 찾아 꺼내 들었다.
2002년 한. 일 월드컵의 뜨거운 열기가 채 식기 전에 군대 입대했다. 내 나이 24살이었고, 엄마는 43살이었다. 지금 내가 44살이니 연세라고 표현하기 조차 어색하고 적은 나이였다. 엄마의 나이가 되었는데도 나는 아직도 철이 없는데 당시 엄마는 딸을 군대에 보냈다.
낡은 종이상자에서 꺼낸 것은 "사랑하는 나의 딸"로 시작되는 엄마의 손편지이다. 내 기억에 있는 엄마에게 받은 처음이자 마지막 편지이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오랜 시간 집을 비운 딸을 생각하며 꼭꼭 눌러 적은 엄마의 글씨가 담겨있다.
사랑하는 나의 딸 애진이 보아라.
정말 몇 년이 흐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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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보내 놓고 엄마의 마음은 너무도 아팠단다.
지난 일을 돌이켜 볼 때 집에서의 생활이 즐거움보다는 힘든 일 마음 아픈 일이 너무도 많았던 생활이 모든 일들이 마음에 사무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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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에서 자유롭게 생활하다 군대란 울타리 안에서 생활하기가 말과 같이 쉽기만 하겠지.
열심히 살자. 살다 보면 좋은 날이 많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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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하루가 이렇게 시간이 안 갈까.
우리 딸 면회 날짜만 손꼽아 기다리는데 왜 이리 지루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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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하루. 아니 단 몇 분이라도 너를 잊어 본 적이 없다.
아침을 먹을 때 점심 아니 저녁 그리고 과일 먹을 때. 그래서 피는 물보다 진하다고 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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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군생활을 하겠다고 결심을 하고 들어갔을 땐 네게도 무언가의 큰 결심이 있었겠지.
맡은 바 생활에 충실해가며 열심히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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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잘 먹고 운동도 열심히 하고
하루하루 우리 딸 만날 날만 기다린다.
딸을 사랑하는 엄마가(02.8.1)
사랑하는 딸
우리 딸 편지 받고도 일찍 편지 못해 정말 미안. 미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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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다섯째부터 수류탄 던지기에 들어갔다고
위험하니까 정신 똑바로 차리고 해라.
이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딸이니까? 알지
우리 딸이 군에 입대한 지도 다섯째 주.
어떻게 생활하는지 더욱더 궁금하다.
반찬은 무얼 해서 먹으며 침실(?) 내부반은 어떻게 생겼는지
면회 날만 기다려진다
그나저나 우리 애진이 떡볶이 안 먹고 싶니
사회에 있을 땐 일주일에 5일은 먹었던 거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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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복무 하는 동안 힘들어도 즐거운 마음으로 한다라고 생각하면
조금이라도 위로가 될 거야.
우리 딸 잘할 수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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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몸조심하고 건강해라. 잘 때 이불 잘 덮고자
요즘 가을 찬바람 난 것처럼 저녁과 새벽에는 싸늘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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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는 날까지 안녕
일주일이면 우리 애진이 만나러 간당. 히히
엄마가(02.8.10)
20대이던 딸은 40대의 중년이 되었고 아이를 셋이나 출산했다. 세상을 배우고 알아가는 데는 아직도 갈 길이 멀었는데 이제 엄마는 내 곁에 계시지 않는다.
그때는 엄마의 마음을 미처 알지 못했다. 엄마가 해주는 모든 것들이 당연했으니까. 사랑도 관심도 배려도 엄마니까 당연히 베푸는 것이라고 여겼다. 세월은 항상 제자리에 머물 것만 같았고 엄마도 항상 그 모습 그대로 그 자리에 영원히 계실 것만 같았다. 철이 없고 무지한 딸년이었다.
"너 같은 딸 낳아서 키워 봐라. 그래야 내 맘 알지" 하셨는데 딸 하나로는 안되었는지 딸을 둘이나 낳았지만 엄마의 마음을 알기에는 아직도 부족하기만 하다.
엄마.
엄마의 사랑하는 딸 애진이예요.
엄마의 바람대로 군복무 하는 동안 힘들어도 즐겁게 맡은 일 충실히 하며 생활했어요. 그랬더니 진급도 하고 세월이 이만큼이나 흘렀네요. 엄마 딸 참 대견하죠. 앞으로 남은 군생활도 잘 마무리할 거고요. 전역 후에도 멋지게 살 거예요. 엄마의 이쁜 손주들도 잘 키우고 중호랑도 잘 살 거예요.
하늘에서 이미 다 보고 계시죠? 엄마 딸이 얼마나 씩씩하고 잘하는지 말이에요. 너무 걱정하지 마시고 우리 딸 잘 살라고 응원해주시고 사위. 손주들 건강하도록 잘 지켜주세요.
엄마 많이 보고 싶어요. 사랑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