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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규선 Dec 13. 2021

모친의 일상(日常)


현용이는 어디 외출했냐?

방에 있어요!

그래?


조금 전까지 거실에서 서성거린 아들을 보셨지만, 그것을 까마득하게 잊고 궁금해 물으신다.


뇌경색 환자인 모친을 우리 집에 모신 지 벌써 5개월이 되었다.


처음 한 달은 집에서 무료하게 TV를 보거나, 낮잠을 자는 것이 하루 일과여서, 나는 시간 나는 대로 모친을 휠체어를 태워 동네 공원을 산책하였고, 또 대형마트에 가거나 멀리 교외로 드라이브를 하였다.


그렇지만 내 스케줄도 있고, 그날의 날씨, 모친의 컨디션 등 변수가 많아 1주일에 1~2번 하기도 쉽지 않았다.


그러다가 지난 9월 초부터 송파구에 있는 데이케어센터 (노인대학)에 다니시는데, 처음에는 잘 적응하지 못하다가 어느 정도 익숙해진 요즘에 와서는 재미없어 가기 싫다고 하여 모친을 설득하는 것이 고역이었다.


그러면 모친께 노인대학에서 노래, 춤, 그림 그리기 등 다양한 교육을 받아 많은 분들이 회복되었다고 얘기하면, "그래! 그곳에 가면, 시간 잘 가고 배울 것도 많아 "하면서 주섬주섬 등교 준비를 하신다.


어느 날 아침에 모친은 "이 나이에 나는 서울대학에 다닌다" 고 하셔서 무슨 말인가 했더니, 서울에 있는 노인대학에서 '노인'을 빼고 그냥 '서울대학'이라고 농담하셔서 옆에서 모친의 승차를 돕던 요양보호사가 "어르신! 정말 유머가 뛰어나시네요!  맞습니다!" 하면서 맞장구를 쳤다.


그런 날은 모친에게 하루가 빨리 지나가는 날이었다.


코로나로 바깥출입이 힘들어지고, 날씨도 쌀쌀해져 집에만 있기에 답답한 모친께 나는 하루에 한두 분 지인들에게 전화를 연결하고 있다.


뇌경색이 있기 전에는 하루가 멀다고 30분은 기본으로 통화해, 나는 모친께 "전화가 고장 난 줄 알았다"며 가끔 농담했다.


그렇지만 요즘 손아래 고모나 사촌누님에게 전화하실 때는, "목소리가 짜랑짜랑하네! 목소리 들어서 반가워! 를 시작으로, 이미 장성해 결혼했는데도 "아이들은 결혼했어?  손주는 몇 명이야? 올해 고모는 몇 살이야?  아직 한창이네! 그럼 내 나이는?" 하며 되묻다 보니 통화시간은 그리 길지 않다.


왜냐하면 며칠 전에 통화한 내용과 다르지 않아 모친이 단기 기억장애가 있는 환자라는 사실을 고려하여 친절히 받아주지만 그것도 자주 하다 보니 피곤해 부담이 된 것이다.


어제는 모친과 단둘이 멀리 시외로 드라이브한 후에 외식하였고, 모친이 몇 개월 전까지 혼자 사셨던 마포 집에도 들렀다.


그런데 집에 도착해서는, "내가 오늘 어디 갔나 왔냐? 너도 갔었어?"


??


"네가 나의 수족이 되어 맛있는 것을 먹고, 구경도 하며 좋았는데, 도대체 어디에 갔었는지, 갔다 온 것 같기는 한데 통 생각이 나지 않으니, 이게 내 정신이냐!" 하며 한숨을 쉬셨다.


그렇지만 평상시에는 조용하다가 갑자기 돌변해 난폭해지고, 집을 나가거나 생떼를 부리는 어느 치매 환자와는 달리, 모친은 예쁜 치매라며 사촌 누님이 나를 위로하였다.


모친은 30년 전에 여동생과 결혼한 사위에게 지금도 깍듯이 예의를 지키신다.


그런데 몇 번 만난, 내 사위에게도 예외는 아니었다.


손주 사위도 손님이라며 모친은 외출하지도 않는데 집에서 빨간색 반코트를 입었고, 사위에게 "과일 좀 들어요!" 하여, 나는 "손주 사위이니 그렇게까지 안 해도 된다"라고 말씀드리니 주저주저하셨다.


아무튼 남을 함부로 대하지 않으며, 남달리 배려심이 강한 분이라 주변에 적이 없는, 좋은 인간관계를 가진 것은 모친이 가진 큰 장점이었다.


12월 중순에 접어들어 조금 있으면 내년에 한 살 더 먹는다고 말씀드리니, 모친은 "그럼 내년에 내가 몇 살이야?" 물으셔서,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듣는 똑같은 질문에 나는 모친에게 웃으며 제안한다.


"만원만 주시면 알려드릴게요!"


글쓴이,  서치펌 싱크탱크 대표 이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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