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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규선 Jan 16. 2022

누님의 행복


주말 오후에 여동생 집에서 옛 추억을 얘기하며 오랜만에 크게 웃고 떠들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주중에 주간보호센터를 다니는 모친을 위해 주말에는 뭘 할까 고민하다가 어렸을 때 함께 살았던 사촌누나와 이모(모친의 이종사촌동생)를 처음 초대해 자리를 마련했다.


1년에 한두 번 집안 행사 때 잠깐 안부를 묻는 정도라서 마주 앉아 제대로 대화할 기회가 없었고, 힘들게 살았던 그 시절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얘기하고 싶었다.


내가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직장 초년생 시절까지 약 15년간 '굴레방다리'라고 불리는 서대문구 북아현동에 살았다.


맞벌이를 하는 부모님을 대신하여 누나는 집에서, 이모는 모친 가게에서 일하며 우리 3남매를 도왔고, 20대 중반에  결혼하며 우리 곁을 떠났다.


두 분은 공통점이 많은데, 나보다 3살 위 동갑이고, 어린 나이에 일찍 부모님과 사별한 동병상련이었고, 사돈지간이지만 성격도 잘 맞아 요즘도 수시로 만나 친구처럼 지내고 있다.


최근에 카톡을 보니 흥미로운 영상이 보여, 나는 사촌누나에게 언제부터 피아노를 치기 시작했냐며 운을 띄었다.


7년 전에 입문했는데 나이를 먹으며 손놀림이 둔해 정식 코스는 포기하고, 좋아하는 곡만 치는데 최근에 '은파(Silvery Waves)'를 연습하고 있다고 하였다.


와!  대단하다고 박수를 치면서, 순간 내 코끝이 찡했다.


그 당시 시골에서는 형편이 안되어 작은 아버지 댁인 서울 우리 집에 머물며 공부하려 했으나 초등학교를 졸업한 지 2년이 지나 중학과정을 따라가는 것이 무리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학원에서 6개월간 자수를 배워 조그만 디자인 회사에 다니다가 적성에 안 맞아 그만두었다고 하였다.


피아노 얘기가 나오니, 지금 판사로 근무하고 있는 누나의 딸이 떠오른다.


누나는 수원여고 주변 단칸방에 살았는데 조카는 결코 주눅 들지 않았고, 여느 아이들과 다르게 철이 든 야무진 모습을 보였다.


조카는 피아노 학원에서 밤늦게까지 연습을 하였고, 그 당시 좁은 방안에 그 흔한 피아노도 놓을 형편이 못되어 집에 돌아와서는 흰건반과 검은건반을 그려놓은 긴 종이를 피아노 인양 두드리며 맹연습하여 수원시내 초등학교 피아노 경연대회에 수 차례 상을 받았다.


그때 피아노를 전공하려던 꿈이 있었지만 가난하여 포기하였고, 공부를 잘해 법조인으로 방향을 바꾸었다.


결국 그녀는 어렵다는 사법시험에 합격하였고, 경쟁이 치열해 더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는 사법연수원에서 연수생 1,000명 중 39등으로 졸업했는데, 이는 100명 중에서 4등 하는 셈이었다.


그녀는 머리가 좋지만 얼마나 집념이 강한지 알 수 있었는데, 어려운 집안 사정 때문에 피나는 노력 외에는 성공할 수 없다는 사실도 일찌감치 깨달았다.


누나는 지금도 영어를 배우고 싶지만 기초가 전혀 없어 아쉽다며, 선택한 것이 '그림 그리기' 라면서, 휴대폰에 저장되어 있는 뎃상, 수채화, 아크릴화 등을 보여주는데 범상치 않는 실력자임을 알 수 있었다.


또한 내가 중고교 시절에 북아현동 집 옥상에서 부친이 혁대와 지갑 등을 만드는 공장도 운영했는데, 몇 명 종업원 이름과 고향 등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어 내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부유한 집안은 아니더라도 누나의 부모님이 살아계셨다면 똑똑한 머리로 배움의 길을 계속 나갈 수 있었으나, 칠순을 바라보는 지금이라도 어릴 적부터 꿈꿨던 취미생활을 할 수 있어 정말 다행이다.


누님!  판사 딸에 서울대 물리학과를 나온 변리사 사위 그리고 손주도 5명이나 봤으니, 지금부터는 건강하게, 재미있게 사세요! ♡


글쓴이, 싱크탱크 대표 이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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