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사춘기가 엄마의 갱년기와 겹치지 않은 것을 감사하라 했던가.
방문을 연다. 무질서가 열린다. 분명 어제까지만 해도 각자의 자리를 지키며 질서정연하게 있던 그것들의 엔트로피는 0이었다. 코트와 드레스는 옷장에, 티셔츠와 청바지는 서랍장에, 책과 작고 귀여운 장식품은 선반에, 공룡 인형들은 잘 정리된 침대를 둘러 있었다. 그런데 어떻게 단 하루 만에 이 모든 질서가 무질서로 바뀐 것인지.
<월리를 찾아라>의 한 페이지처럼 틈이 보이지 않을 만큼 비슷한 형상과 색깔이 세 평을 가득 메우고 있다. 어제 머리 감고 던져 놓은 수건은 어디 있을까? 오늘 하교 후에 벗어 놓은 양말 한 짝은? 주걱턱처럼 아래턱을 쭉 뺀 채 입 벌리고 있는 옷장은 먹은 걸 죄다 바닥에 게워놨으니 내일 입을 반바지는 어디서 찾는담.
열에너지가 상승한다. 아이의 방을 바라보는 내 얼굴이 제멋대로 형태를 바꾼다. 일그러지다 못해 녹아내리는 눈 코 입이 자꾸 기화되려 한다. 내 안에서 자란 이 에너지는 아차 하는 순간 의도치 않은, 놀라운 일을 벌인다. 큰 소리를 내거나 물리적 충돌도 서슴지 않는다. 제발 그것이 아이와 내 관계에 방아쇠를 당기지 않았으면 좋겠다.
초등학교 때까지는 아이를 학교에 보낸 후, 기쁜 마음으로 방을 치워주곤 했다. 무질서로 나뒹구는 옷가지와 장난감을 보며 전날의 아이를 떠올렸다. 이 녀석, 피곤해서 옷도 뒤집어 벗어놨네. 이 장난감은 어릴 적부터 갖고 놀던 건데 여전히 버리질 못하네. 방안 모든 것은 내가 정한 규칙에 따라 제자리로 돌아갔다. 그렇게 한참 그곳에서 아이의 체취를 느끼다 보면 묘하게 가슴께가 간질거렸다.
문제는 사춘기였다. 아이의 사춘기가 엄마의 갱년기와 겹치지 않은 것을 감사하라 했던가. 둘 다 호르몬을 무기 삼아 감정의 방아쇠를 당기지 않은 게 신의 은혜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게 호르몬이란 무기가 없더라도 방패는 필요하단 걸 몰랐다. 아이가 던진 한마디에 계속 열이 올랐다. 부글부글 끓은 주전자 속 물처럼 그건 형태를 바꿔 잘 닫힌 뚜껑을 단숨에 하늘로 날려버렸다. 그건 형태만 바뀌었을 뿐 여전히 긴장감으로 고립계에 존재했다.
아이의 방문을 여는 건 다시 내 안에 불을 붙이는 일이었다. 키가 자란 만큼 내 기대도 자랐나 보다. 내가 스스로 만든 규칙을 행동강령 삼아 아이의 방에 붙여놓고, 이 궤도를 벗어나지 말라 손가락을 세웠다. 하지만 그 행동강령이 신께서 만드신 자연법칙을 넘어설 수 없단 걸 왜 몰랐을까.
아이의 마음이 뿜어나온다. 얼굴에 열꽃이 피어 고름으로 터진다. 성장 에너지가 얼마나 크면 그러할까. 그리고 그건 때때로 액화되어 눈물로 흐르기도 했고, 기화되어 입김으로 날아갔으며 물리적 사고가 일어나기도 했다. 그로 인해 우리 관계의 엔트로피는 점점 증가했다.
대화를 시도했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아이의 문제를 훈육이라는 명목으로 짚고 넘어갈 때마다 사용할 수 있는 관계 에너지가 사용할 수 없는 에너지로 변환된다는 점이다. 결국 물리학의 승리인 건가. 고립계에 갇힌 내 모습은 누가 봐도 엉망이었다. 반복되지만 답이 보이지 않았다.
결국 백기를 들고 선배 엄마에게 달려갔다. 그녀는 이 전쟁을 두 번이나 넘긴 베테랑이니 튼튼한 방패 하나쯤 갖고 있을지도 몰랐다. 그런데 내 말을 들은 그녀는 힘겹게 이야기 하나를 털어놓았다.
어떤 엄마가 철저히 자기가 정한 규칙에 따라 아이를 잘 키워 동부의 유명 대학에 보냈다. 엄마는 아이와 사춘기를 겪으며 수시로 방 정리를 두고 충돌했다. 결국 그 일로 관계가 틀어져 회복하지 못한 채 마음의 거리만큼이나 먼 곳으로 아이는 떠나갔다. 그런데 아이는 대학에서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시간이 좀 흐르고, 엄마에게 느지막이 새 생명이 찾아왔다. 이건 신이 주신 기회였다. 다시 찾아온 사춘기에 더는 방 정리로 충돌하지 않았다. 그 엄마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방 정리, 그것 좀 해 주면 어때서.
선배 엄마의 이야기 끝에 우주의 고요함이 흘렀다. 물론 혹자는 아이의 독립성을 위해 방 정리는 스스로 하게끔 가르쳐야 한다고 할 것이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그로 인해 관계가 깨진다면 적절한 사랑의 방식이 더해져야 하지 않을까. 결국 호르몬의 공격을 막는 방패는 그것이었다.
방문을 닫는다. 질서로 돌아온다. 물론 방문을 사이에 두고, 여전히 저쪽은 무질서의 세계겠지만 아이와의 관계 엔트로피를 0으로 만들기 위해 자연의 법칙을 되돌린다. 이런 작업은 신의 영역에 가깝다. 그만큼 엄청난 에너지를 쓰면서라도 우리 관계의 종말을 막으려는 내 노력은 현대 물리학도 풀지 못한 과제다.
신께서도 인간과의 관계 회복을 위해 자연의 법칙을 깨셨으니, 뭐라 하진 않으실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