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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현자의 머리카락

나의 머리를 가득 채운 군살들이 다이어트를 못 해서 문제다.

by Boradbury Jan 21. 2025

  나이가 드니 머리가 무거워서. 과감한 단발을 감행한 나의 변명이었다. 중학교 후 처음이다. 갑자기 훤해진 목둘레를 미용사가 쓸어 만지는데 기분이 묘했다. 허전한 건지, 상쾌한 건지. 이럴 때 쓰는 적합한 표현이 있다. 시원 섭섭. 그래도 아침마다 겪는 꾸밈 노동을 반으로 줄일 수 있단 생각에 나름 현명한 처사다 스스로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시어머니께서는 내 긴 머리에 항상 ‘치렁치렁’, ‘거추장스러운’이란 수식어를 붙이곤 하셨다. 나이가 들며 머리가 무거워진다는 건 어쩌면 담지 말아야 할 것들이 많이 담겨서가 아닐는지. 스님은 세속을 떠나 번뇌를 버리기 위해 삭발한다. 또한 고시생은 큰 결심과 각오를 다지기 위해 머리카락을 자른다. 이런 걸 보면 머리카락은 그저 머리카락이 아님이 틀림없다. 

  그렇다면 인간에게 머리카락을 잘라내는 행위는 무슨 의미일까? 사람들은 흔히 애인과 헤어졌을 때, 머리가 복잡할 때, 기분이 안 좋을 때 머리를 자른다. 어쩌면 한 줌 머리카락이 가닥가닥 잘려나가며 잊고 싶은 기억, 잡념, 감정이 함께 떨어져 나가길 바랄지도 모른다. 

  나 역시 그렇다. 머리카락을 자르며 허영, 욕심, 교만 같은 것도 떨어져 나가길 바랐다. 인간 스스로 떨쳐내기 힘든 이 어려운 숙제를 과연 풀어낼 자가 있을까? 선어엔 이런 말이 있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 세상 속 모든 허영과 욕심, 교만을 버리고 평정에 이른 사람만이 내뱉을 수 있는 말이다. 이런 깨달음에 이른 자를 현실을 자각할 수 있는 사람, 세상 모든 유혹을 떨쳐내 무념무상의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 사람, 바로 현자라 한다. 

  하지만 아직 그 단계에 도달하지 못한 난 머리가 늘 무겁다. 오른쪽엔 허영이, 왼쪽엔 욕심이, 뒤쪽엔 교만이 앞쪽엔 잡념이 내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다. 넣기는 쉽지만, 비워내긴 수백 배로 힘들다. 그리고 어느새 그것에 익숙해진 내 머리는 조금씩 늘어난 무게로 인해 머리카락이 무겁다는 착각으로 옮겨진다. 무거운 건 머리카락이 아니다. 나의 머리를 가득 채운 군살들이 다이어트를 못 해서 문제다. 

  사유의 놀라운 효능은 이런 머릿속 군살들을 태워버릴 수 있다는 점이다. 그 과정은 자신을 돌아보게 하며 인간의 본질, 지향해야 하는 세계를 보게 한다. 그러다 보니 열정적 사유는 필요 없는 생각들을 모조리 녹여 버린다. 잡념이 녹아 내린 자리엔 담백한 지혜만이 남는다. 인생 전반에 걸친 깨달음이다. 

  머리를 자르는 행위가 이토록 심오하다면 현자도 아닌 나는 다시 머리를 길러야 하나 잠시 고민도 해 본다. 시쳇말로 현자타임이다. 그것 또한 잡념이다. 

  내게서 떨어져 나온 머리카락들이 바닥에 어지러이 흩어져 있다. 그리고 이제 그 치렁치렁, 거추장스러운 것들은 쓰레받기에 담겨 휴지통으로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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