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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나무 Sep 22. 2021

추석은 휴일이 맞나요?

같이 쉬어 가요~

<작년 추석에 쓴 글>


추석이다. 아이들은 사촌들을 만나 신이 났다.


밤늦도록 저희들끼리 몰려다니며 시시덕거리고 깔깔대며 놀다가 하룻밤 잠도 같이 잤다. 일어나자마자 눈곱도 안 뗀 채 또 같이 놀고 밥을 다섯 끼나 함께 먹으며 시간을 보냈건만 헤어지는 순간은 또 눈물 바람이다. 헤어지기 싫어서. 아쉬워서.


어쩜 이렇게 정이 많은지 우는 아이들을 보니 피붙이를 막 떼어 놓으려는 매정한 어른들 같아서 다시 또 장소만 바꿔 놀기를 허락했다. 오랜만에 게임도 무제한, 과자도 무제한 자유가 허락된 시간이라 아이들은 흥분해서 발걸음이 신이 났다.


때마침 외가 이사를 해서 아랫집이 없는 필로티형 2층이라 아이들은 더욱더 눈치를 보지 않고 쿵쾅거렸다.  신이 난 발소리 장단을 제지하지 않아도 되는 어른들도 기분이 좋아 웃고 떠들며 마음껏 풀어졌다.


다이어트한다고 작정만 하다 실패하며 스트레스받은 걸 명절 음식으로 보상받겠다는 듯 바삭한 튀김과 기름진 떡을 연신 입에 집어넣으며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내가 어린 시절의 추석 풍경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칠 남매 중 다섯째인 어머니의 친정, 즉 우리의 외갓집은 항상 아이들로 북적였다.


여러 사촌들 중 중간 나이였던 나는 비슷한 또래의 언니 오빠들과 동생들 사이에서 말할 수 없이 즐거웠다. 밤이 새도록 다락방에 올라가서 수다를 떨기도 하고, 씨름 대회를 하기도 하고, 불꽃놀이도 했다.


장난기 많은 사촌오빠들과 골목길에 불꽃을 점화한 후 사람들을 놀라게 하는 위험한 장난도 쳤고, 오락실에 가거나 화투로 고스톱을 배우는 일탈도 허락됐다. 한창 놀다가 밥때가 되면 평소에는 먹지 못했던 기름진 음식이 한상 차려지고, 놀다가 와서 집어먹는 약과식혜도 명절 즐거움의 하나였다. (백석의 시에 나오는 정겨운 가족들의 모습이 내 어린 시절과도 닮아있다^^)


당시에는 사촌들과 몰려다니며 철 없이 노느라 명절은 그저 즐거운 날, 선물 같은 시간이었다. 그러나 결혼을 해서 명절이 다가오니 어릴 때의 설렘은 더 이상 없다. 다행히 차례가 없는 집이라 우리 식구의 밥 걱정만 하는데도 그렇다.


어른이 되어서야 '큰 외숙모는 명절 전에 그 많은 음식을 어떻게 준비했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엄마는 친정에 왔다고 앉아서 상을 받고 수다를 떠는데, 외숙모는 분주하게 부엌을 오가며 상을 차려냈다.


한 번도 아니고 수차례 밥상과 술상을 끝도 없이 차려내는 게 명절이라니. 그럼에도 지금까지  떠오르는 숙모의 모습은 언제나 웃는 얼굴이다. 웃으며 더 먹으라고, 따뜻할 때 먹으라고 쉬지 않고 먹을거리를 챙겨주셨다. 숙모는 진심으로 웃고 싶으셨을까?


항상 친절한 모습으로 묵묵히 일하셨던 뒷모습에 미안함과 감사함을 이제야 느끼다니 죄송할 뿐이다. 내 유년시절의 명절이 즐거웠던 건 누군가의 수고와 희생의 결과였다는 것. 우리 아이들이 행복하게 명절을 보내고 추억할 수 있는 것도 어른들의 희생과 노력이 있기에 가능하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는다.


앞으로의 명절은 누군가의 희생 위에 또 다른 누군가는 당연하게 즐기지 않았으면 한다. 어린 시절 아이들의 명절이 즐거웠던 건 사실 기름진 음식 때문이 아니라 나누고 편히 쉬고 놀 수 있는 분위기 때문이 아닐까.


일상에서의 피로를 풀고 쉴 수 있는 시간이 어머니, 며느리, 딸들에게만 노동의 시간으로 대체된다는 건 누가 봐도 부당한 일이다. 가족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희생하는  자발적 노동은 스스로의 선택이니 그렇다 치자.


다만,  훗날 내 딸이 평일에는 일하고, 휴일에도 또 다른 비자발적 노동에 시달린다면 많이 속상할 것 같다. 노동 없는 명절을 선거 공약으로 만든다면 허경*이라도 찍어주겠다는 아줌마들의 농담은 진담일지 모른다.


미국에서는 마트에도 안내문이 있었다.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우리 직원들도 휴일에는 가족들을 만나야 합니다>라는 내용의 문구였다. 마트의 계산원도, 택배를 배달하는 노동자도 휴일은 쉬어야 한다는 분위기가 때론 낯설었다.


이제 우리에게도 명절은 모두가 즐거운 날, 휴식과 힐링의 시간이 되었으면 한다. 조금 맛없으면 어때? 조금 불편하면 어때? 모두에게 쉼이 허락되는 진정한 휴일이 당연한 명절의 모습으로 바뀌어가길 바란다.


***참고로 저희 양가는 제사도 없고, 가족이 먹을 음식만 합니다. 유(교)슬람주의에 시달리는 여자들이 여전히 많아 안타까운 마음으로 올린 글이니 오해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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