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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나무 Dec 17. 2020

반쪽이랑 하나가 된 이야기

결혼 13주년 기념글

출산 스토리에 이어 결혼 스토리라니.


<직장-집-직장-집>의 반복되는 일상 속에 새로운 소재가 나올 리 없으니 자꾸 과거를 추억하게 된다. 곧 결혼 13주년이 다가오니 이 기억도 희미해지기 전에 한 번쯤 정리해두고 싶어 끄적인다.


12월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한창인 13년 전, 우린 백년가약을 맺었다. 부부의 연을 맺는다는 게 그렇게 큰 의미인지 그땐 미처 몰랐다. 추운 겨울을 끔찍하게 싫어하는 내가 (학기말 업무를 더 싫어했는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사람과 따뜻한 나라로 신혼여행을 떠난다는 사실이 그저 행복했다.


당시 핫했던  신혼여행지 괌(Guam)은 휴양지답게 어딜 가나 신혼부부들로 북적였고, '한여름의 크리스마스'라는 로맨틱한 분위기, 가는 곳마다 흘러나오는 캐럴송이 앞으로의 결혼생활에 대한 설렘을 더욱 부추겼다.

당시에는 신혼부부들이 옷을 맞춰서 커플룩을 입는 게 유행이었다. 지금 보면 너무 촌스러운 파랑, 빨강 커플 난방과 커플 잠옷, 커플 수영복 등을 죄다 맞춰 입고 비슷한 차림의 부부들과 패키지여행을 다녔다.


이렇게 스케줄에 맞춰 돌아다닐 거면 뭐하러 온갖 스포츠 시설이 완비된 호텔(PIC)을 숙소로 정했나 싶게 친하지도 않은 커플들과 호텔 밖 관광 명소를 투어 하며 "알로하~"하면서 사진을 찍는 게 주된 일과였다. 지금 생각하면 낯가림도 있고 밖으로 다니면 에너지를 많이 뺏기는 우리 부부에겐 그다지 적합하지 않은 여행이었다.


그래도 신혼여행은 처음이니 그러려니 하면서 그럭저럭 여행지에서 즐거운 기분을 낼 수 있었다. 본격적인 전쟁은 신혼집에서 짐을 푸는 순간부터 시작되었다. 연애할 때는 온유하고 배려심이 많다고 생각했던 남편과 사사건건 자꾸만 부딪혔다. 사람의 장점이 동시에 단점이 되기도 한다는 사실을 그때 깨달았다.


평소 원칙적이고 깔끔하고 정리 정돈을 잘하는 사람(남편-ISTJ), 융통성이 있고 편안함을 즐기는 사람(나-ISFP)의 조합은 생각보다 피곤했다. (*MBTI 성격 유형 중)


'정리를 잘하는 그'는 여행에서 돌아오자마자 가방 정리를 하려고 했다. '융통성이 있는 나'는 그걸 왜 종일 비행하고 피곤해서 딱 죽겠는 이 시점에 해야 할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친정이었다면 '융통성 넘치는 아빠'가 우선 편안히 쉬라고 날 내버려 두었을 것이고, 이렇게 며칠만 버티면 '정리를 잘하는 엄마'가 보다 못해 가방을 깔끔히 정돈주었을 것이다. 그런데 새로운 나의 집에서는 무조건 쉬라는 아빠도, 정리해주는 엄마도 없었다. 피곤해도 빨리 치우자고 다그치는 남의 편만 있을 뿐.


이런 잔소리를 평생 들으며 살아야 한다니 막막했다. 정리를 해야 한다는 사실이 힘든다기보다 이걸 내가 하고 싶을 때 할 수 없다는 사실, 누군가의 요구에 의해 내 몸을 움직여야 싸우지 않고 집안의 평화가 유지된다는 사실이 미래를 옥죄는 느낌이었다.


그래도 불평은 불평대로, 싸움은 싸움대로, 화해도 화해대로... 그럭저럭 살아내다 보니 아이들이 늘어갔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아기들은 깔끔함을 추구하는 남편의 욕구도, 편안함을 추구하는 나의 욕구도 자연스레 내려놓게 만들었다. 


아빠가 된 남편은 수시로 토를 게워내고 식사 시간에도 응아를 하는 아이들을 씻기면서 깔끔함을 기대하는 건 사치라고 생각한 듯하다. 더 이상 제멋대로 어질러진 장난감을 보고 화를 내지 않았다. (라고 썼다가 화내는 횟수가 줄었다고 정정.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엄마가 된 나도 쉬고 싶을 때 쉬는 게 아니라 아기의 욕구대로 움직여야 하니 내 멋대로 융통성을 발휘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었다. 수유 텀이라는 원칙을 지켜야 했으며, 온갖 것을 입에 가져가 빠는 아기 때문에 계속해서 치우고 씻기기를 멈출 수 없었다.


육아는 고되고 피곤했기에 사소하게 부딪히는 일도 있었지만 조금씩 포기하고 내려놓는 것을 배우는 기간이기도 했다. 점점 자기주장을 하고 싸우는 횟수가 줄어들고 "당신도 짠하다. 당신도 힘들겠다"는 전우애 혹은 동지애로 보듬고 살아가게 되었다.



지금까지 결혼 후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미국에 도착한 바로 그날이다. 낯선 삶을 시작하며 얼마나 막막했던지 우리는 세 살 난 아들과 셋이서 손을 잡고 간절히 기도했다. 이곳에서 잘 살아남게 해 달라고. 원하는 바를 다 이루고 돌아가게 해 달라고.


타향에서의 삶은 힘들기도 했지만 같은 배를 탔다는 소속감과 어려움을 헤쳐나갈 동기, 가족의 소중함을 깨닫게 된 시간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제자리로 돌아와 결혼 10주년을 맞았고, 아쉽게도 10주년은 하와이에서 보내자고 약속했던 꿈을 이룰 수 없었다.


일상은 여러 가지 변화와 사건 속에서도 아무렇지 않은 듯 지속된다.  가만 두면 시간이 흐르고 아이들도 큰다. 그렇게 11주년, 12주년, 13주년을 맞았다. 이제는 특별할 것도 없고 딱히 간절함도 없는 13주년인데 그냥 지금의 편안함이 감사하게 다가온다.


언제부턴가 여행을 다녀오면 나도 모르게 빨리 정리해 놓고 쉬자며 짐을 풀어 빨래를 돌리고 있다. 오히려 빨리 치우자고 채근하던 남편은 침대에 누워 잠이 든다. 처녀 때는 입에도 안 대던 생선이나 해산물이 지금은 고기보다 맛있고, 남편도 요즘은 종종 삼겹살 타령을 한다.


사소한 집안일을 누가 해야 할지 날을 세우던 것도 이제 신경전을 하지 않게 되었다. 내가 양보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서는 곳에 따라 풍경이 다른 법이니 둘이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렇게 부부가 되어 가는 건가. 여기까지 맞춰지기까지 참 많은 시간을 함께 인내하고 의지하며 온 것 같다. 지금은 각자의 일로 많이 바쁘고, 아이들도 어리고 손길이 많이 가서 서로를 바라볼 시간이 많지 않지만, 언젠가 다시 신혼처럼 둘만 남는 시기가 오면 그때는 여행도 다시 다녀오고 싶다.  


기왕이면 아직까지 못 가 본 유럽으로 배낭여행을 하면서 우리의 스타일대로 여유롭게 자연을 즐기고, 천천히 조식을 먹고, 느긋하게 이동하면서 '한중진미(한가로운 중의 참맛)'를 제대로 느끼는 여행을 즐기고 싶다.  

상상만으로도 행복한 까닭은 우리에겐 아직 유딩과 초딩이 셋이나 있으며, 여행은 커녕 집 앞에 커피를 마시러 나갈 여유도 없다는 사실 때문이다. 제2의 신혼이 되어 여행하게 된다면 거꾸로 세 아이들과 복닥복닥 하면서 지내는 젊은  시절을 그리워하고 있을 수도 있겠다.


아무튼  그럭저럭 살다 보니 13주년이 되었다. 이렇게 20주년,  세월이 흘러 50주년 때도 서로를 존중하고 배려하면서 건강하게 살았으면 좋겠고, 욕심을 더 낸다면 제2의 신혼여행도 (물론 지금의 남편과) 꼭 다녀올  있으면 좋겠다.


아모타, 백년행락이 이만한들 어찌하리. 

유럽여행이 뭐길래. 남편이 좋은 건가 여행이 좋은 건가 헷갈리지만, 꿈을 이룰 생각만 해도 미소가 번진다.


혼자서 행복한 회상과 상상 끝~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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