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4. 바닥을 찍고 나니 이제야 떠오르는구나 2021~현재
예전에 2학년 담임을 맡아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그림책에 관심이 생겼다.
그러다가 만난 책이 ‘레오 리오니’가 쓴 『프레드릭』이었다.
프레드릭은 「개미와 베짱이」에서 베짱이 같은 캐릭터다.
자기 혼자만 즐기는 한량인 베짱이와 달리,
프레드릭은 삶에서 아름다운 것들과 이야기를 모아 친구들에게 나누어준다.
나도 프레드릭 같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많이 읽지는 못하지만 글을 읽고, 좋은 문장을 기록해 두곤 한다.
한때는 ‘시요일’이라는 앱에서 날마다 소개되는 시를 보다가 마음에 드는 시를 공책에 옮겨 적어두기도 했다. 나중에 엄마가 쓰던 수첩을 보다 보니 엄마도 마음에 드는 시를 적어두곤 했었더랬다.
좋은 글이 주는 힘이 있는 것 같다. 엄마와 그걸 공유했다는 것이 신기했다.
글 말고 영화도 모은다. 좋은 영화는 마음에 울림을 준다.
애니메이션 ‘코코(Coco)’를 본 덕분에
죽은 자는 산 사람의 기억 속에 머무르며 저승의 삶과 연결된다는 걸 알았다.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Everything Everywhere All at Once)’를 보면서
나와 엄마 사이에서 느꼈던 감정과 생각을 발견하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영화를 보며 그 이야기 속에 나를 대입해 보기도 하고, 내가 누리지 못한 세계를 간접 경험하기도 한다.
아침은 항상 라디오를 켜는 것으로 시작한다.
아침 라디오 방송에서 DJ가 기운을 북돋우는 말,
하루를 힘차게 시작할 수 있도록 응원하는 말로 에너지를 전해준다.
그 별것 아닌 것 같은 말들이 스며들어 일상의 고단함을 견디게 해 주었다.
저녁에는 ‘배철수의 음악캠프(고등학생 때부터 들어온 나의 ‘최애’ 라디오 프로그램)’를 애청한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온 수많은 말들은 대개 바람처럼 지나가지만
어딘가엔 (아마도 무의식 속에) 남아 있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그것들이 나의 ‘말발’을 키우는데 한몫했으리라 생각한다.
노래도 모은다.
가사가 좋은 노래도, 멜로디가 좋은 노래도, 따라 부르기 좋은 노래도, 어떤 분위기에 좋은 노래도,
운동하며 들으면 좋은 노래도, 노래방에서 따라 부르기 좋은 노래도.
그 노래들의 문장들은 각인되어 남곤 한다.
2023년 가을,
한때는 매주 정신건강의학과를 찾아야 했던 나는
원장님으로부터 이제 병원 오지 않아도 되겠다는 말을 들었다.
우울증을 다스리는데 6년의 시간이 필요했다.
그리고 2025년 2월, 상담 선생님과 상담을 종결했다.
내 삶에서 우울증이 다시 오지 않으리란 법은 없다고 생각한다. 잠시 휴지기 일지도 모른다.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게 아니니까.
많은 소중한 것들이 나를 구했고, 하루하루를 채워준 이야기와 멜로디가 나를 살게 한 것 같다.
언젠가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사람이 표현했던 말을 기억한다.
처음엔 커다란 바윗덩어리에 짓눌리는 것 같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그 바위가 점점 깎이고 작아져 돌덩이 같았다가
나중엔 손에 쥘 정도의 차돌 크기가 된다고.
호주머니에 넣을 정도가 되면 그럭저럭 살아갈 만하다고.
하지만 절대 없어지진 않아서 살다가 어느 순간 호주머니에 손을 넣으면
서늘한 기운이 닿아 슬퍼지곤 한다고.
엄마를 잃고 보니 정말 그랬다.
마음이 부서지고 깨져서 어찌할 수 없을 정도로 앓다가 조금씩 괜찮아지고
또 아프다가 다시 다독이는 것을 반복하다 보니,
이제는 울지 않고 조금 담담하게 엄마가 돌아가셨단 말을 다른 사람에게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엄마의 생생한 모습을 떠올리면 눈물이 난다. 특히 엄마의 문장들은 아직도 나를 울게 한다.
어릴 때 얼굴에 심하게 난 여드름 때문에 한의원에서 약을 지었던 적이 있었다.
하필이면 약이 완성되어 찾으러 오라고 한 날, 한겨울에 눈이 엄청나게 내렸다고 했다.
엄마는 차도 잘 다니지 못할 길을 걸어서 약을 가지러 다녀왔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엄마는 당신만의 방식으로 나를 열심히 사랑해 왔다.
그 사랑 덕분에 앞으로 남은 나의 시간 속에 엄마가 없다고 해도 잘 살아갈 수 있을 것 같다.
엄마의 문장들이 나를 살게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