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4. 바닥을 찍고 나니 이제야 떠오르는구나 2021~현재
내가 선생을 하겠다고 교대를 가기 전에 사람 상대하는 일이 이렇게 힘든 줄 알았다면,
나의 사교성이 이렇게 떨어지는 줄 알았다면, 나는 죽었다 깨어나도 교사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비록 수학 실력은 좀 떨어졌어도 언어 분야 실력은 나쁘지 않았는데,
문제는 읽고 쓰는 능력에 비해 말하는 능력이 부족해서 소위 ‘말발’이 잘 먹히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사람과 어울리는 것은 늘 힘들었고, 학교에서 학생들과 학부모를 상대하는 건 엄청난 스트레스였다. 우울증은 어쩌면 잘못된 직업선택이 가져온 결과일지도 모르겠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나서 여전히(어쩌면 예전보다 조금 더) 우울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내 주변에 좋은 사람들이 있다는 믿음이 있었다.
그 사람들 덕분에 조금 더 다정한 어른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했다.
사람들과 사귀는 것은 늘 어려웠지만, 그래도 좋은 사람들을 만난 것이 나의 구원이 되었다.
일단 복직하던 해에 같은 학년 담임을 맡으며 친해진 3명의 친구들(사실 나이는 다르지만, 나이 차이가 위아래로 대여섯 살 정도인데 친하면 다 친구니까)과는 평소에도 이야기를 자주 나누며 여러 가지를 공유한다.
주로 모바일 메신저 서비스(카oo톡)를 통해 수시로 메시지를 보내는데,
말로는 웃기기 힘들지만 밈(meme)과 이모티콘,
한 친구를 적당히 놀리는 말(전문용어로는 ‘멕이는’ 말)을 섞어가며 웃기는 걸 좋아한다.
학교에서 겪는 어이없고, 황당하고, 화나고, 기분 나쁜 일부터 소소한 일상까지 나눈다.
그렇게 친구들과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이 주는 따뜻함이 있다.
자주는 못 만나지만 대학원 동기 언니들과도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누며 가깝게 지냈다.
일단 만나면 말이 쉴 새 없이 오가고
몇 시간을 떠들고도 오늘 못다 한 이야기는 다음에 또 하자면서 헤어지곤 하는데,
우리는 그 이유가 같이 심리학을 공부한 만큼 사람들의 마음에 관심이 있어서 아니겠는가 추측하곤 했다.
서로 다른 일을 하지만, 서로가 가는 길을 항상 응원하게 되는 사이이다.
나를 사람답게 살게 해 주신 은인을 꼽자면 단연코 상담 선생님일 것이다.
2017년 8월부터 시작해서 매주 한 시간씩 나의 모든 이야기를 들어주신,
세상 어느 누구보다 나와 오랫동안 대화한 분이시다. 엄마에게도 하지 못한 온갖 이야기들을,
게다가 매번 펑펑 울면서 하는 이야기를 항상 진심으로 들어주시고
내가 미처 헤아리지 못한 나의 마음까지 읽어주신 덕에 내가 살았다.
선생님이 늘 같은 자리에서 같은 모습으로 나를 믿어주셨기에,
폭풍 치는 바다에서 매번 집어삼킬 듯 파도가 덮쳐와도 의연하게 맞서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던 것 같다.
위기의 순간마다 어떻게 나의 마음을 다스릴지 살펴주셨고, 내 마음속 ‘쭈구리’를 찾아 달래주셨다.
머릿속에서만 맴돌고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한 말들을 할 수 있도록 연습시켜 주시기도 하고,
어려운 결정을 앞둔 순간에 아버지보다 더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셨다.
언제든 힘들 때면 연락해 달라고, 언제든 같은 자리에서 무엇이든 다 들어주시겠다고 하신 말씀은
아직도 마음을 찡하게 울린다.
사람이 사람을 병들게 하고 심지어 죽음으로 끌고 가기도 하지만,
결국 사람을 살리는 것도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 같다.
상담 선생님을 잘 만나 7년 넘게 시간을 보낸 덕분에 그 사실을 알 수 있었다.
회자정리(會者定離)라고 했다.
쭈구리’처럼 쭈글쭈글하게 살았던 내가
이제는 조금 멀쩡하게 살 수 있겠다 싶은 때가 되자, 그만 상담을 종결해도 될 것 같다고 먼저 말씀드렸다.
시험 기간이면 다 공부하지도 못하면서 가방에 문제집을 잔뜩 싸 짊어 다니고 다니듯,
항상 해결하지도 못하는 문제들을 이고 지고 살던 내가
시간이 흘러 더 이상 어떤 문제도 내 안에서 꺼낼 것이 없게 된 때가 그즈음이었다.
상담 선생님과 마지막 상담은 생각보단 담담하게 잘 끝났지만,
사실 끝이라고 생각하니 지나온 시간 동안 힘들었던 여러 기억이 떠올라서
괜히 북받쳐 오르는 여러 감정들이 또 나를 울게 했다.
슬픔이 물이라면, 차오르기도 하고 빠져나가기도 하는 것이라면,
내가 살아온 시간의 대부분은 물이 빠져나가지 못하고 잠겨버린 세상에서
숨을 참은 채 견뎌야 하는 시간이었다.
상담을 하며 조금씩 열린 수문을 통해 눈물이 흘러나갔고,
슬픔을 덜어내며 서서히 잠겨있던 세상이 드러나자
그제야 뭔가 제대로 보고 느끼고 경험할 수 있는 기분이 든다.
물속에서 볼 땐 흐릿하고 때로는 왜곡되어 보이던 세상이 이젠 또렷하게 보인다.
그걸 도와주신 분이 상담 선생님이셨으니, 그저 감사할 수밖에.
2025년 초여름 무렵이었을 것이다.
2016년에 3학년 아이들을 맡아 가르쳤을 때, 우리 반이었던 아이를 우연히 만났다.
피로에 절어있는 얼굴로 버스를 타고 집 앞 정류장에서 내렸는데, 낯익은 얼굴 하나가 인사를 했다.
“선생님 아니세요?” 낯선 목소리로 말했다.
J는 어릴 적 얼굴이 남아 있었는데
이제는 멋진 목소리를 가진, 훤칠한 청년이 되어있어서 신기했다(아이가 어른이 되는 동안 나만 늙었다).
그 장난기 가득하던 꼬맹이가 지금은 성악을 전공한다기에 또 놀랐다.
“언젠가 네 노래도 들을 수 있는 거니?” 그런 날이 오면 좋겠다. 또 자랑해야지.
사실 J가 유명한 사람이 되지 않아도 괜찮다.
지금 의젓한 모습으로 나에게 반갑게 인사해 준 것만으로도 충분히 자랑스럽다.
내가 잘못 가르치지 않았다는 증거로서 내 앞에 나타나 준 것만으로도 모자람이 없었다.
상담 선생님이 나를 살리셨듯이, 나도 사람을 살리는 수준까지는 못 미치더라도
내가 만나는 아이들이 사람답게 자라도록 제대로 가르치고 싶다.
바르게 배워서 반듯한 어른으로 자랄 수 있기를 바란다.
먼 미래에 내가 ‘한 때 아이였던 반듯한 어른들’ 덕분에 살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