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심 R-20m: 나의 '회복' 일지 3. 운동 편

Chapter 4. 바닥을 찍고 나니 이제야 떠오르는구나 2021~현재

by Luci

예전에 어디에서 우울증인 사람은 세 가지 균형을 잘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는 걸 본 적이 있다.

1. 수면: 규칙적으로 잘 자고 일어날 것,
2. 식사: 너무 적지도 과하지도 않은 양을 하루 두 끼 이상 먹어야 함,
3. 운동: 꾸준히 운동을 하면 좋음.


내 경우엔 정말 상태가 심각했을 때 외에 식사 문제는 없었고, 수면은 약의 도움을 받았는데,

운동이 문제였다.

집에 틀어박혀 있으면 도무지 나갈 생각이 안 드는 때가 많았는데,

그래도 우연한 기회에 나에게 맞는 운동을 찾았다. 달리기였다.


첫 시작은 2016년 가을이었다.

그때도 한참 마라톤 대회가 여기저기서 많이 열렸는데,

같은 학교에서 근무하던 친구가 10km 마라톤 대회에 같이 나가자고 했다.

참가비에 비해 상품이 좋아서(A사 티셔츠, 운동용 가방을 주었다) 좋다며 참가했고,

조금 연습한 덕분에 완주했다.

대회에서 뛰는 중에 흥겨운 음악을 틀어주며 기운을 북돋우는 구간도 있었고,

사람들의 에너지를 공유하는 것도 좋았다.

그 뒤에 그 친구와 한강 나이트 워크 21km 대회도 나갔다.

밤 10시쯤 시작해 다음 날 아침 6시 무렵까지 걸어서(끝에는 기력이 떨어져 기어갈 뻔했다. 너무 객기를 부린 결과였다) 완주했고, 집에 가기 전 기쁨의 순대국밥을 거하게 말아먹은 뒤 헤어진 기억이 있다.


코로나-19 시기에는 다양한 마라톤 대회가 비대면으로 바뀌어서 아쉬움이 컸다.

그러다 엄마가 아팠을 때는 당연히 운동할 엄두조차 내지 못했지만, 가끔 운동할 수밖에 없는 상황도 있었다. 엄마의 병세가 최악에 다다랐을 무렵이었다.

추운 겨울인데도 속에서 열불이 날 만큼 속이 답답할 때,

밖에 나가서 주차장 가로등 불빛에 의지하여 조금씩 뛰면 그나마 막혔던 속이 뚫리는 기분이 들었다.

2021년에는 비대면 대회에만 조심스레 참여하다가

2022년이 되어서 사회적 거리 두기나 코로나-19로 인한 방역 지침이 완화되고 사라지기 시작하면서

달리기도 편하게 할 수 있게 되었다.

혼자 뛰는 게 심심해서

요즘 한창 유행하는 달리기 동호회(A.K.A. running crew)에도 가입해서 몇 달 활동했는데,

태생적으로 내향형 인간인 나에게 완전 외향형의 사람들만 모인 달리기 동호회는 맞지 않았다.

그 동호회에서 알게 된 언니와 부산에서 열리는 10km 대회에 참가하곤 발길을 끊었다.


마라톤 역시 등산과 비슷한 결의 운동 같다.

산도 어디나 비슷해 보이지만 가보면 각각 다른 매력을 가진 것처럼,

마라톤 대회도 같은 거리를 뛰지만 대회마다 볼 수 있는 풍경이나 느끼는 것들이 다 다르다.

부산에서 열린 대회에서는 광안대교를 달리며 탁 트인 바다를 보고 바닷바람을 맞을 수 있어서 좋았고,

서울에서 열리는 대회는 차가 달리던 길을 두 발로 뛰며 도심을 가로지르는 짜릿함이 있었다.

시청에서 시작해 광화문을 지나 경복궁을 한 바퀴 돌고,

남대문을 지나 동대문 시장, 청계천을 바라보며 달리는 건 멋진 경험이다.


10km 대회 참가만으로도 충분했었는데 욕심이 났다.

이젠 목표를 높여 하프마라톤에도 도전해 보겠다고 용기를 냈다.

2023년 5월, 처음 하프마라톤 참가 신청을 했다.

상암 월드컵경기장에서 출발해 고양시 쪽으로 난 자전거길을 따라 21km를 뛰고 다시 돌아오는 코스였다.

결승선이 있는 월드컵공원에 도착하자 갑자기 왈칵 눈물이 났다.

내가 왜 사서 고생을 한다 했나 후회도 되고, 그럼에도 완주는 하고 싶고,

응원해 주는 사람들이 고맙기도 하고, 엄마를 보내며 슬펐던 기억도 나고,

힘들었던 시간들이 떠오르며 여러 가지 감정이 뒤엉킨 눈물이 흘렀다. 그리고 결국 완주했다. 아파도 좋았다.

힘들게 얻어서 더 값진 메달이었다.

보통 대회가 끝나도 인증사진을 잘 찍지 않는 편인데,

한참 줄을 서서 기다렸다가 시상대 위에서 인증사진도 찍었다.

그해 가을에 한 번 더 하프마라톤을 완주했고(기록이 좀 더 좋아졌다!), 이제 남은 것은 풀 코스 마라톤이었다.


2025년 3월, 결국 일을 저질렀다. 42.195km를 완주했다. 객기가 이겼다.

연습을 많이 하지 못해 미친 짓이라고 생각했지만, 포기할 수 없었다.

요즘은 마라톤이 워낙 유행이라 이름난 대회는 참가 신청도 어려운데,

가까스로(2024년에 자원봉사를 하고 마라톤 신청권을 따냈다) 신청한 대회였다.

30km를 넘어서는 정말 그만두고 싶었지만, 악과 깡으로 버텨냈다. 그리고 다음날 출근도 했다.

나라는 인간이 버틸 수 있는 한계가 어디인지 시험한 계기 같기도 하다.


첫 풀 코스 마라톤을 완주하고 받은 메달은 지금 내가 일하는 교실 한 곳에 장식해 두고 있다.

1학년 꼬꼬마들에게 선생님이 받은 거라며 자랑하고, 선생님은 달리기를 잘한다며 뽐낼 때 쓴다.

아이들이 묻는다.

“그럼, 선생님은 몇 등이에요?”

아무래도 애들 앞에선 완주로는 모자라고 순위권에 들어서 몇 등이라고 말할 정도는 되어야 하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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