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심 R-30m: 나의 '회복' 일지 2. 신앙 편

Chapter 4. 바닥을 찍고 나니 이제야 떠오르는구나 2021~현재

by Luci

나는 가톨릭 신자다. 모태신앙도 아니고, 굳이 따지자면 ‘엄마 권유 신앙’이다.


어릴 적엔 할머니가 절에 다니셔서 부처님 오신 날(꼭 초파일이라고 불렀다)이면

가족들이 함께 절에 가서 연등도 달고 절밥도 먹었던 기억이 있다.

그러다 절에 가야 한다는 할머니의 압박이 잦아들었는지,

아니면 절에서 기도발(?)이 그다지 통하지 않는다 여겨졌는지 발길을 끊게 되었다.


대학생 시절엔 리처드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을 읽으며(두꺼워서 다 읽진 못했다)

신은 인간이 만들어 낸 존재라고 생각했다.

신이 있다면, 왜 이렇게 세상은 불공평하고, 나는 왜 이렇게 궁상맞게 살아야 하는지 따져 물었을 것이다.

절에 불전함을 놓고, 소원을 비는 기왓장이며 연등이며 초를 팔고,

교회에서 헌금을 기가 막히게 모아서 으리으리한 건물을 올리는 걸 보면,

종교란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람들의 불안과 공허함을 채워주며

합법적으로 돈을 쓸어 모으는 극소수의 사람들과 그들에게 속은 사람들의 집단이었다.


처음 영업을 당한 건 임용되고 첫 학교에서였다.

교무부장님이 어느 날 일요일에 시간 되냐고 물으셨고,

별일 없던 나는 정신 차려보니 그 으리으리한 건물에서 열리는 주일 예배에 참석 중이었다.

‘현타’가 올 무렵 교회 청년부의 2차 영업 공격이 훅 들어왔고 나는 적절히 눙치며 빠져나갈 수 있었다.

교회라고 하면 정말 진저리 났다.


생각이 바뀐 건 내가 붙잡을 동아줄이 필요해졌을 무렵이었다. 아마 우울증을 진단받았을 무렵 같다.

내가 학교에서 일하는 걸 힘들어하고 마음이 둘 곳이 없다 하니,

엄마가 “그럼 성당에라도 다녀봐라.” 한 것이 시작이었다.

엄마는 필요할 때만 신을 찾는 선택형 신자이자,

모든 것은 다 자기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자신교(自信敎)’ 신자였다.

뭔가 복잡한 일이 생기면 타로 점을 보러 갔고, 내가 임용시험 보는 중에는 시험장 근처 교회에서 기도했지만, 정작 나에게 천주교를 권하고도 본인이 성당에 가봤단 말은 한 번도 듣지 못했다.

이유는 몰라도 그냥 ‘성당’하면 이미지가 나쁘지 않아서 가보라고 했던 것 같다.


대학원에 다니면서 학교 안에 있는 성당에 찾아가 예비신자 등록을 하고 교리 수업을 들었다.

수녀님이 해주시는 수업(좋은 말씀을 해주셨지만, 정말 가끔 너무 피곤해서 졸기도 했다. 죄송합니다)도 듣고, 서울대교구의 명동성당, 새남터 순교성지, 절두산 순교성지를 둘러보는 일정도 너무 좋았다.

대학원 동기 중에 한 분께 대모가 되어주십사 부탁을 드렸고, 흔쾌히 받아주셨다.

그분은 정말 모태신앙이어서 어렸을 때부터 성당에서 성경학교 같은 활동도 많이 하시고

여러모로 배울 점이 많은 분이셨다.

2018년 11월에 세례를 받고 그 뒤로는 성실하게 성당에 다니고 있다.

매주 미사 때 성당에 가면 잡생각을 하는 시간이 더 많기는 해도,

한 시간 남짓 차분히 시간을 보낼 수 있어서 좋다.

특히 미사 때 성체를 받아 모시기 전에 하는 기도가 마음을 울린다.

“주님, 제 안에 주님을 모시기에 합당치 않사오나 한 말씀만 하소서. 제 영혼이 곧 나으리이다."

특히 우울증으로 약을 먹던 때에 더 간절한 마음을 담아 소리 내어 기도했다. 제발 좀 도와주십사 간청했다. 엄마가 돌아가신 뒤에는 엄마의 평안한 안식을 빌었고,

주위에서 누가 아프다고 할 때는 낫게 해달라고 빌었다. 기도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다.

사실 기도한다고 하늘에 계신 분이 다 들어주시는 건 아니다.

특히 가슴 아팠던 일은 세례성사 때 나의 대모가 되어주신 강영선 데레사 님을 하늘나라로 데려가신 일이다. 2017년 자궁에서 암이 발견되어 수술을 받으시곤 건강하게 잘 지내시다가

한참 뒤 간에서도 암이 발견되어 투병하시던 중, 결국 2024년 가을에 세상을 떠나셨다. 또 다른 비극이었다. 누군가를 잃는다는 것은 여전히 너무 아프다.

부디 하늘나라는 아픔도 괴로움도 없이 즐거운 곳이기를, 먼 훗날 다시 만나면 웃으며 안아드리고 싶다.

고생 많으셨다고, 기다려줘서 고맙다고 말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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