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4. 바닥을 찍고 나니 이제야 떠오르는구나 2021~현재
출근해서 1-2주는 정신없이 지나갔는데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고 나니 우울감이 쓰나미처럼 덮쳐왔다.
특히 금요일 저녁부터 온갖 감정들이 폭풍처럼 휘몰아쳤다.
그걸 이겨내려고 와인을 사다가 한 두잔 홀짝거리며 마시던 것이 점점 늘어나 한 병은 마셔야 견딜 수 있었다. 내가 고아가 되었다는 사실을. 이젠 엄마 없는 자식이라는 걸.
다시 상담을 시작하고 우울증으로 인한 수면 장애를 돕는 약을 먹기 시작했다.
호스피스 병동 간호사 선생님이 소개해 주신 강의
(강좌명이 좀 거창하긴 했다. ‘그림책을 활용한 죽음교육 리더 양성’이라니)도 듣게 되었다.
알고 보니 내가 졸업한 대학원의 평생교육원에서 열린 강좌라 반가웠다.
비록 온라인으로 만나는 사람들이지만,
다들 소중한 누군가를 떠나보내고 상실감과 슬픔을 겪은 사람들이라서 그런지 서로를 이해하고, 보듬어주고, 함께 울어주는 것에 익숙했다.
그리고 그것이 치유가 된다는 걸 느꼈다. 아파 본 사람들이 아픈 사람들을 이해할 수 있는 것 같다.
특히나 죽음은 더욱 그렇다.
사랑하는 사람을 다시는 어떻게 해도 볼 수 없다는 걸 경험하지 않고서는 절대로 공감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 생각이 나를 더더욱 외롭게 했다.
강의에서는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와 데이비드 케슬러가 쓴 『인생 수업』과
여러 죽음을 주제로 한 그림책을 읽었다.
그림책 중에 『살아 있는 모든 것은』을 읽고 생각을 정리한 것이 메모장에 남아 있었다.
2021년 3월 26일
‘어려서도, 늙어서도 그 사이 어느 때라도 끝이 올 수 있단다.’
Q1. 언제 올 지 모르는 인생의 끝에 후회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시나요?
→ 하고 싶은 일, 미루었던 일을 생각만 하지 말고 직접 해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역할, 해야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삶도 의미 있지만, 무엇보다 내가 진정한 ‘나’로 살아갈 수 있는 시간을 충분히 보내야 후회 없는 마지막 순간을 맞을 수 있을 것이다. 자기만을 생각하는 이기적 삶 보다는 다른 사람과 함께하며 그 속에서 ‘나’를 발견할 수 있는 삶을 누린다면 후회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비는 잠시 쉬다가 죽는단다.’
Q2. 나비는 어디에서 쉬다가 죽게 될까요? 당신에게 죽기 전 쉴 수 있는 곳을 정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어떤 곳이길 원하나요?
→ 나비는 자유롭게 날다가 향기로운 꽃 위에 앉아 있을 때 가장 편안하고 기분 좋을 것 같다.
나에게 죽기 전 쉴 수 있는 곳을 정할 수 있다면, 되도록 병원이나 낯선 공간보다는 집이나 나에게 익숙한 공간에서 쉴 수 있었으면 좋겠다. 가족들이나 친한 친구들과 음식을 나누고 이야기를 하면서 쉴 수 있었으면 좋겠다.
(아이 손에 박힌 가시를 빼주는 그림에 대한 질문)
Q3. 살아가는 동안 앓거나 다쳤을 때 누군가의 도움을 받거나 치료를 받고 나았던 경험이 있나요? 그때 마음은 어떠셨나요?
→ 한동안 마음이 너무 힘들어서 병원 치료와 상담을 통해 도움을 받았던 적이 있었다. 당시 혼자서 지내던 터라 엄마가 걱정이 되어 주말에 오셔서 달래 주시기도 하고 보살펴주신 적이 있다. 그때는 몰랐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엄마가 걱정하는 마음이 없었다면 병원 치료와 상담을 받아야겠다는 용기를 갖고 시도조차 못했을 것 같다. 혼자가 아니라는, 누군가가 나를 위해 애태우며 마음 쓰고 있다는 것이 큰 힘이 된다는 것을 느꼈다.
2021년 4월 9일 오후 11:48
엄마가 떠나간 지 49일 하고 하루가 지났다.
엄마는 정말 이승을 떠나 저승으로 긴 여행을 떠난 걸까. 괜히 차오르는 눈물이 아프다. 아침엔 체육 수업이 있어 옷을 갈아입다 묵주 팔찌가 손가락에 걸렸는데 툭 끊어져 버렸다. 가느다란 고무줄에 아슬아슬하게 엮여있던 구슬들이 뿔뿔이 흩어졌다. 몇 년 동안 차고 다니던 팔찌가 맥없이 끊어져 버리니 당황했다. 흩어진 구슬을 눈에 보이는 것만 주워 담아 주머니에 넣었다.
정신없이 바쁜 때가 지나고 운동복을 갈아입고 보니 주머니에 구슬이 걸렸다. 잠깐 고민하다 휴지통에 넣었다. 이제 떠나려는 것 같아서, 보내야 할 것 같아서. 땅에 묻고 싶었지만 묻을 데가 없어서 그냥 버렸다. 휴지 쓰고 버리는 것과 똑같이 매몰차게.
그러고는 울었다. 바람이 불어서 울고, 슬퍼서 울고, 울컥해서 울고, 쓸쓸해서 울고. 어쩔 수 없어서 울었다. 우는 것 밖에는 달리 방법이 없었다.
2021년 5월 3일 오후 8:16
가끔 쓸쓸하고 아픈 나에게
힘들지? 그동안 안 힘든 척 하느라 애썼어. 있는 힘을 쥐어 짜내 괜찮은 듯 가면 쓰고 연기하느라. 너의 슬픔을 알아주는 사람이 없어 외로웠을 텐데. 티 안 내고 조용히 숨어있었구나.
그땐 뭐라도 해야 했으니까. 엄마가 곁에 있었을 때는 실낱같은 기회라도 붙잡아야 했고, 아무것도 할 수 없었을 때는 하다못해 곁이라도 지켜야 했으니까. 나를 돌볼 겨를이 없었지. 내가 망가져도 엄마가 좀 더 머물러줄 수만 있었다면 뭐라도 했을 거야. 미안해. 그게 최선이었어.
이제 나 혼자 남았어. 오롯이 나 혼자.
혼자라는 게 이렇게 서럽다니.
혼자라는 게 이렇게 슬프다니.
혼자여서 이렇게 아픈 걸까.
아프고 힘들 땐 그냥 울어버려. 눈물이 차올라 심장이 젖을 때까지 소리내 울어도 돼.
괜찮아, 괜찮을 거라 믿어.
2021년 6월 4일 오전 1:01
엄마, 안녕
엄마가 떠나간 지 여러 날이 지났는데, 시간이 지나도 스치는 기억 속에서 가끔 난 길을 잃고 헤매는 기분이 들어.
그때마다 엄마가 떠나갔다는 게, 이제 여기에 없다는 게 다시 각인 되는 것 같아 아프고 슬퍼.
잊어야 할까, 그리워 해도 될까?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 엄마의 생일이 있는 7월이 되었다.
엄마가 살아있었다면 환갑을 맞아 어디 여행이라도 갔을 텐데,
엄마는 혼자 멀리 하늘나라로 여행을 떠나버렸다. 같이 갈 수 없는 곳으로 가버리다니, 야속했다.
2021년 8월 5일 오후 8:08
어린 시절의 내 모습은 그리 찬란하지도, 아름답지도 않았다. 사춘기에 접어들어 폭발한 열등감과 여드름에 주눅 들어 있었고, 경제적으로 풍요롭지 못한 집안 사정을 걱정하며 지질한 하루하루를 겨우 보내다 보니 어느새 모자란 어른이 되었다.
어디로 어떻게 가야 할지 몰라 방황하며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을 때, 별거 아닌 사소한 일이 도화선이 되어 내 안의 온갖 부정적 감정과 고통을 터트렸던 일이 있었다. 엄마와 가열차게 싸우며 머리채를 잡히고 얻어 맞으면서도 끝내 잘못했다고 빌지 않았다. 도리어 나는 과연 엄마의 딸이 맞을까, 내 마음을 왜 엄마는 알아주지 않을까, 서러움에 절어있었던 기억이 떠오른다. 기나긴 밤을 울다가 울다가 지쳐서 부은 눈으로 잠이 들었다 일어나면 멍한 얼굴로 나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갈지 방황하기도 했던 것 같다.
이제 와 생각해 보면 엄마도 어린 시절 엄마의 엄마로부터 충분히 사랑과 보살핌을 받지 못했던 것 같다. 엄마는 사랑받아 마땅한 사람이었지만 할머니로부터 비난을 듣기 일쑤였고, 일찍 자립해서 홀로 살아가는 방법을 몸으로 익히며 살아왔다. 하지만 마음 한 구석이 텅 빈 채로 어른이 되었을 것이다. 뭐든 똑소리 나게 해냈던 엄마는 자식을 번듯하게 키우려 무진 애를 썼을 것이다. 비어있는 본인의 마음을 살필 새도 없이 일상을 살아가다 어느새 머리가 커져 버린 딸이 본인 생각과 다른 주장을 할 때 아마도 어찌할 바 모르고 그저 혼내는 것밖에 할 수 없었던 것이 아닐까.
엄마와 내가 무엇으로 이어져 있는지 모호할 때가 있었다. 소원해진 관계가 회복되는데 많은 시간이 필요하기도 했다. 때론 슬픔도 대대로 물려주고 물려받는 걸까, 사랑의 결핍은 세대에 걸쳐 이어지는 것일까 생각한다.
시를 읽다 보니 어린 시절 가끔 멈출 수 없이 흐르던 눈물과 엄마 얼굴, 지치지 않고 샘솟던 슬픔이 떠올랐다. 엄마는 돌아가시고 이제 이 세상에 계시지 않지만, 그 사실이 가끔 나를 사로잡을 때마다 무너져 내리곤 하지만, 슬픔이 온몸을 짓누를 때 그럼에도 다시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건 내가 엄마의 흔적이기 때문에, 나의 배꼽이 그걸 증명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가을이 왔다. 엄마 없는 첫 명절이 왔다.
추석을 맞아 감사했던 분들에게 작은 선물을 하고 싶었다.
엄마 장례식 때 살뜰히 챙겨주신 이모에게 선물세트를 보내드려야겠다고 생각하곤
동생에게 엄마 휴대전화에 저장되어 있을 이모네 주소를 찾아 알려달라고 메시지를 보냈다.
전에 엄마가 이모에게 새옷이랑 가방을 택배로 보내라고 할 때 저장해 둔 주소가 분명히 있었다.
분명히 있었는데 없다고 했다.
동생에게 그게 왜 없냐고 물었더니 휴대전화 자체가 없다고 했다.
그게 무슨 소리냐고 물었더니 집에 엄마 휴대전화가 없다고 했다.
알고 보니 아버지가 엄마 휴대전화를 팔아버린 뒤 며칠이 지난 뒤였다.
나는 전에 엄마가 의료사고를 겪었을 때처럼 용암보다 더 뜨거운 화가 가슴속에서 치밀어올랐다.
당장 전화를 걸었다.
아버지: 여보세요.
나: 엄마 휴대폰 어떻게 했어?
아버지: 그거 팔았지.
나: 왜? 미쳤어??? 그걸 왜 팔아?? 그게 어떤 건데!! 당장 다시 가져와!!!
아버지: 아니 어차피 쓸 사람도 없으니 그랬지. 일단 그 가게 가서 물어볼게.
(얼마 뒤)
나: 휴대폰 찾아왔어?
아버지: 없대.
나: 아니 그걸 어떻게 한 마디도 안 하고 팔아!!!! 거기 엄마가 찍은 사진이며 이것저것 다 저장되어 있고, 엄마가 거의 마지막으로 통화했을 때 녹음 된 것도 있는데!!!!! 이제 엄마도 없고 엄마를 기억할 수 있는 것도 없잖아!!!! 미쳤어 진짜!!!! (오열)
아버지: 아니 그렇게 중요한 거면 니가 챙기든지 해야지.
나: 나는 당연히 집에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 세상에 나가서 물어봐. 누가 그걸 팔 생각을 해!!!!! 이런 상황이면 미안하다고 해도 모자랄 판에 지금 내가 잘못했다는 거야?
아버지: (화를 내며) 미안하다, 됐냐?
나: #$%*($%$%(*)$^ㄲ@! (암튼 험한 말을 했다. 나는 이성을 잃었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엄마의 휴대폰을 날름 팔아버린 이유를 나는 직접 듣진 못했다.
내 기억에 엄마 카드며 금융 관련 정리를 하면서 휴대폰 할부금이 남아 있었던 것 같았고,
나는 그게 완납되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아니었을지도 모르겠다.
그 할부금이 아까워서 인지, 엄마 휴대폰이 비교적 새 것일 때 파는 것이 나을 거란 판단에서였는지,
휴대폰이 자리를 차지하는 게 아까워서 인지,
엄마 물건을 보는 것이 괴로워서 인지 무슨 이유에서 그런 짓을 저질렀나 아직도 모르겠다.
알고 싶지도 않았다. 잘못을 하고도 뻔뻔한 태도는 여전했다.
인생의 교훈 또 하나는 ‘사람 고쳐 쓰는 것 아니다.’라는 것이다.
내 평생 써본 적 없는 말로 저주의 문자메시지를 보낸 뒤, 내 휴대전화 연락처에서 아버지 번호를 지웠다.
그렇게 아버지와 연을 끊었다.
아버지, 동생과 잘 지내라는 엄마의 유언을 지키지 못해 비통했지만,
이건 내가 견딜 수 있는 임계점을 넘는 일이었다. 엄마 말이 맞았다.
진작에 호적을 파서 나갔다면
내가 아버지의 딸이라서 느끼는 치욕스러움을 경험하지 않았어도 되었을 텐데 생각했다.
시간이 지나고 보면 엄마 말이 대부분 맞았다. 이런 순간에서도 맞는 게 화가 나서 미칠 지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