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4. 바닥을 찍고 나니 이제야 떠오르는구나 2021~현재
2021년 여름, 개학을 앞두고는 뭔가 나만의 의식이 필요했다.
다음 학기도 잘 버틸 수 있다는 걸 스스로 확신할 수 있도록,
내가 나를 증명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지 궁리하다가 우연히 산에 가볼까 하는 객기가 생겨났다.
왠지 엄마도 내가 모르는 과거의 어느 때에 산악회 아저씨 아주머니들과 함께
연신 꽃 사진을 찍으며 콧노래를 흥얼거리고 산길을 올랐을 것만 같아
괜히 나도 그 흔적을 좇아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오대산 월정사의 전나무 숲길이 좋다는 것만 듣고 훌쩍 떠났다가 산에 매료되었다. 예상보다 훨씬 더 좋았다. 그렇게 오대산 비로봉에도 올랐다.
산에 오르다가 만나는 다람쥐도,
고즈넉한 산사도,
몸에 흐르는 피를 모두 정화시켜 주는 것 같은 맑은 공기도. ‘오르니 참 좋았다.’
2022년. 추운 겨울은 싫지만 겨울이 좋은 이유는 오직 하나, 방학이 있다는 것이다.
엄마를 떠나보낸 지 1년이 지났다.
아직은 엄마의 산소에 오는 것이 낯설다.
새하얗게 세어 버린 엄마의 머리카락처럼 엄마의 묘 봉분 위에도 새하얀 눈이 덮였다. 추워 보였다.
엄마는 여름에 태어나서 그런지 유달리 추운 겨울을 못 견뎌했다. 부디 그곳은 따뜻하길 바랐다.
엄마를 어떻게 기억하면 좋을까 생각하다가 제주도 한라산이 떠올랐다.
2016년 2월에 엄마와 둘이 제주도 여행을 하며 (나름) 즐거웠던 추억이 있었는데 – 이때도 엄마가 예전엔 제주도 음식이 맛있었는데 이제 예전 같지 않다며 음식 타박을 했더랬다 - 그때 한라산에 같이 올라갔다가 얼마 못 가서 내려왔던 일이 떠올랐다.
우리는 호기롭게 겨울 한라산에 올라가려다 눈이 잔뜩 쌓인 주차장에서부터 기겁하고,
그래도 등산화는 신었으니 조금은 가겠지 했지만
결국 미끄러운 눈길을 오를 수 없어 포기하고 내려올 수밖에 없었다.
주변에 물어서 아이젠을 사고 나서야 다음 날에 다시 올라갔는데
등산스틱 같은 장비도 없고 체력도 저질이었던 지라
“이러다 조난당해서 뉴스 나오지 말고 내려가자.”는 엄마의 말에 또다시 금방 내려오고 말았다.
엄마는 학교 조리실에서 그 힘든 일은 하면서도 운동은 잘하지 못했던 것 같다.
무엇보다 무거운 물건을 들고 험한 일을 하느라 무릎이며 손목이며 성한 곳이 없었으니 등산은 무리였지만, 꿋꿋이 산악회에 가곤 했는데 아마 그렇게라도 마음 둘 곳이 필요했었던 것 같다.
내가 엄마 기일을 맞아 제주도에 간다고 했을 때, 상담 선생님은 설문대할망 전설이 떠오른다 하셨다.
엄마를 추모하기 위해 같은 여자인 설문대할망이 만들었다는 제주도에 가는 것이 뭔가 자연스럽게 느껴진다고 하셨다.
주도는 엄마와 연고가 하나도 없는 곳이었지만, 나에게 왠지 외갓집같이 느껴지는 곳이었다.
엄마 산소에 들렀다가 김포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고 제주로 향했다.
눈 덮인 한라산은 여전히 장관이었다.
한라산을 오르는 여러 코스 중에 초심자에게 가장 적절하다는 영실 코스.
백록담을 볼 수 있는 코스는 아니지만, 산을 오르는 길 끝엔 무엇이 있을지 궁금했다.
엄마가 남기고 간 등산화, 등산 재킷, 등산 모자를 쓰고 갔다. 엄마와 함께 산을 오르는 듯했다.
병풍바위를 보고 이만큼 봤으면 되었다며 돌아서 내려갔던 기억이 났다.
한참 올라 윗세오름 대피소 근처에 다다르자, 푸른 하늘과 하얗게 눈 덮인 산이 맞닿은 풍경이 장관이었다.
대부분 사람들은 그곳까지만 보고 하산했지만 나는 길을 따라서 더 가보기로 했다.
한참 눈을 헤치며 걸어 도착한 곳은 남벽분기점이었다.
높게 솟은 봉우리를 바라보는데 구름이 드리워 어두워졌다. 주변엔 아무도 없고 나 혼자였다.
서늘한 한기가 느껴졌다(귀신이라도 나오는 줄 알았다. 그 귀신이 엄마였다고 해도 놀랐을 것이다).
이러다 진짜 뉴스에 나오겠다 싶어서 서둘러 내려왔다.
이만큼 엄마랑 좋은 풍경 같이 봤으면 충분하다 싶었다.
5월에는 지리산에 갔다.
서울에서 버스를 타고 함양의 백무동에 도착하여 하룻밤을 보내고 새벽에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계곡의 물소리, 싱그러운 초록빛을 온몸으로 발하는 이름 모를 풀과 나뭇잎들,
은은한 연분홍빛을 뽐내는 산철쭉,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까지.
지리산은 모든 것이 아름다워서 내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한 걸음씩 걷다 보면 가파른 길이 나오기도 하지만, 그 힘든 길도 결국 계속 걷다 보면 끝이 있었다.
오르다 보면 내리막길이 나오기도 하고 오르다 보면 바위만 까마득히 쌓인 길이 나오기도 하지만,
계속 오르다 보면 장터목 대피소 같이 쉴 수 있는 곳도 나왔다.
등산을 인생에 비유하는걸 세상 뻔하고 하품 나오는 말이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산에 올라 보니 과연 그랬다. 산에 오르고 내려오는 건 살아가는 것과 비슷했다.
무엇보다 산에 오르는 동안은 잡생각이 사라졌고 예쁜 것들만 볼 수 있었다.
사람들에 치일 필요도, 나쁜 사람들의 추악한 모습을 볼 일도 없어서 좋았다.
내가 뭔가를 해냈다는 작은 성취와 정상을 찍었다는 정복감을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
여섯 시 반쯤 오르기 시작해서 열두 시쯤 장터목 대피소에 도착했고, 열두 시 반쯤 천왕봉 정상에 올랐다.
오랜만에 뿌듯했다. 내 힘 만으로 하늘과 더 가까운 곳에 두 발을 디디고 서 있다는 사실에.
여름방학이 끝나갈 무렵, 8월에는 설악산 대청봉에 올랐다.
산꼭대기에 부는 바람이 그렇게 셀 줄이야. 몸이 휘청일 정도로 부는 바람을 처음 느껴보았던 것 같다.
2023년 2월에는 친구들과 함께 한라산 백록담까지 올랐다.
그리고 다시 한라산의 영실코스도 올랐다. 이젠 세 번째라고 제법 풍경이 익숙했다.
그다음 봄에는 다시 지리산. 화엄사를 지나 노고단까지 올랐다.
다음 가을에는 소백산 비로봉과 인왕산을 올랐다.
2024년 2월엔 태백산, 6월엔 친구와 지리산 노고단을 지나 반야봉을 찍고 남원으로 내려왔고, 8월엔 북한산, 11월엔 대둔산…
계절에 한 번씩은 산에 올랐고, 그때마다 조금씩 몸과 마음이 단단해진 것 같았고,
그래서 하늘에 계신 엄마도 피식 웃었으면 좋겠다 생각했다. “너는 언제까지 내 옷을 입고 다닐 거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