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답을 아시는가? 나는 30대까지 행복이 뭔지 몰랐다. 그래서 파랑새를 찾아 헤매는 틸틸과 미틸처럼 행복을 찾아 헤맸다.
불행했다는 소리는 아니다. 나는 천성적으로 재미없고 지루한 것을 못 참고, 즐겁고 신나지 않으면 기운을 못 차리는 스타일이기 때문에, 어떤 악조건에서도 웃기고 재미있는 상황을 만들어내는 재주가 있는 사람이다.(자화자찬 같아 쑥스럽지만 진짜다. 인생이 코미디, 한 편의 시트콤이다)
일복이 많아 어디서 뭘 하든 일에 치여 살았다. 다행인 것은 일복만큼 인복과 먹을 복도 많았다. 늘 주변에 협력자가 있었고, 몸은 변두리에 있어도 입은 청와대나 5성급 호텔에 있었다.
밤 10시까지 일하고, 친구들과 새벽 2시까지 술 마시고 놀고, 다음날 아침 8시까지 출근하는 일이 다반사였다. 잘 먹고, 잘 놀고, 재미있게 살았지만, 채워지지 않는 외로움이 있었다. 삶이 만족스럽지 않았다.
지금 생각하면 어려서 철이 없었고, 욕심도 많았던 것 같다.
행복하고 싶은데, 행복이 뭔지 모르겠어서, 수많은 행복 관련 책들을 읽었다.
▲일독권함
그러고 나서 내가 내린 행복에 대한 결론은 아래와 같다.
□ 나 자신과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정신적 육체적으로 건강한 상태
□ 사랑하는 사람들과 맛있는 음식을 나눠먹을 때
□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사랑해 줄 때
□ 나 자신이 자랑스러울 때
□ 간절히 원하는 것을 얻었을 때
□ 자연의 생명력을 느낄 때
□ 매일매일 소소한 기쁨이 이어지는 상태
나는 지금 행복하다. 그리고 이 상태를 계속 유지하려고 애쓰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건강은 잃어본 사람만이 그 소중함을 안다.
가족을 잃어본 사람만이 피붙이를 잃은 상실과 슬픔의 무게를 안다. 직접 겪어보지 않으면 가늠할 수 없는 절망이다.
20대 중반에 아버지를 여의고, 심리적으로 의지할 곳이 없었다. 시시때때로 울음이 터져 나왔다. 그러던 어느 날 깨달았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가 변함없이 나를 지켜주신다는 것을. 그 후로는 더 이상 울지 않았다.
나는 40대 중반에 전신마취를 하고 4시간 동안 대수술을 받았다. 의사는 수술 전 “출혈이 심할 수도 있고, 마취에서 깨어나지 않을 수도 있다”며 겁을 줬다. 2시간 예상이던 수술이 4시간을 넘어도 끝나지 않자 수술실 밖에서 기다리던 엄마는 초주검이 됐다. 어쨌든 나는 다시 살아났고, 그 경험을 계기로 욕심도 많이 내려놓게 되었다. 이후의 삶은 덤으로 받은 인생이라 생각하고 매일 감사하며 겸손하게 살아가려고 애쓴다.
가족 모두 건강하게 저녁 식탁에 모일 수 있으면 그것만으로도 행복한 삶이다.
우리 식구는 저마다 요리 실력이 출중하다. 50년 성실 근면한 주부로 살아온 엄마야 두말할 나위 없는 손맛이고, 나 또한 한 중 양식을 꽤나 그럴싸하게 만들어내는 실력이다. 동생은 소싯적에 일식 주방장의 꿈을 품고 일본에서 2년간 요리 공부를 했었다.(공부는 뒷전이고 연애질만 해 싸서 주방장은 물 건너갔지만, 초밥 솜씨는 일품이다) 유명 식당에서 외식을 하는 것보다 집에서 온갖 요리를 만들어먹는 것이 훨씬 맛있고 실속 있다. 식구들과 함께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먹을 때가 제일 행복하다.
내가 좋아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나를 인정해주고, 칭찬해주고, 사랑을 표현해줄 때, 마음의 빈 공간이 꽉 채워지는 기분이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사랑해준다는 건 얼마나 기적 같은 일인가! 인생에 그런 기회는 자주 오지 않는 것이고, 나는 그것을 경험해봤다. 감사한 일이다.
나 자신이 자랑스럽다는 건 스스로 만족스럽다는 것과 일맥상통한데, 사실 자존감이 흔들리지 않도록 유지하는 게 제일 힘든 일인 것 같다.
내집마련을 비롯해 간절히 원하던 몇 가지를 이루었을 때도 정말 행복했다. 만족감이 상당히 오래 지속됐다.
이밖에도 산책 중 바람의 촉감을 느낄 때, 파란 하늘에 흰구름, 초록의 산등성이, 숲 속의 공기, 햇살의 따스함, 풀향기, 마당에 철철이 피는 꽃, 주렁주렁 달린 온갖 열매들, 이런 것들이 내게 평화와 안식을 준다.
매일 소소한 기쁨이 이어지는 게 행복이라는 건 <빨강머리 앤>에게서 배운 진리다.
별 일 없이 하루를 살고 걱정 없이 잠자리에 들 수 있는 삶... 그런 게 행복이 아닐까 한다.
그토록 찾아 헤매던 파랑새가 결국 내 집의 새장 안에 있었던 것처럼, 행복은 결국 매일 반복되는 일상 안에 있다.
지겹다, 짜증 난다, 인생이 의미 없다 같은 허튼소리를 해대다가도 다람쥐 쳇바퀴 돌듯 하던 일상이 무너져버리면 알게 된다. 그 지루한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 것이었는지.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다. 안 좋은 기억은 빨리 잊어버리는 게 상책이고, 행복했던 기억은 오래오래 간직하기 위해 기록해둬야 한다.
살다 보면 영혼이 상처 받는 경우를 피할 수 없을 때가 종종 있다. 그럴 때 행복했던 순간의 기억은 상처 받은 영혼을 치유해주는 놀라운 능력을 발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