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아들과 나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페리파토스 Feb 18. 2022

글 안에 나 있다.

자기 검열의 덫. 이 글이 내 글이다 왜 말을 못 하니.



벌거벗은 자신을 쓰라.
추방된 상태의, 피투성이인.
데니스 존슨

                                                               





육아를 하면서 문득문득 낯선 나를 발견하고 그 낯선 모습을 직시하는 일이 고통이 되었다. 고통의 근원지를 물어 물어 찾아가다 보니 내면 아이라는 존재를 알았다. 많은 육아서에서 말한다. 외면하려 했던 어린 시절 나를 불러내 그 상처를 돌봐주고 위로해 줘야 한다고. 네 잘못이 아니었다 말해 줘야 한다고. 부모님을 용서하고 이해할 수 있을 때 진정한 내면의 평화가 찾아온다고. 그래야만 나도 내 아이에게 상처 주지 않을 수 있다고.



용기를 내어 써보기로 결심을 했는데, 뭐가 이렇게 어려운 건지. 어린 시절 이야기도, 실패한 결혼생활도 이제는 다 괜찮아졌다고 생각했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막 써버리고 나면 원 없이 후련해질 줄 알았다. 그런데 쓸 때마다 명치끝이 아프고 잠을 못 이루는 거 보니 아직 괜찮지 않은가 보다. 밝은 문체로 써보려 해도 자꾸 우중충, 어두컴컴 해지는 나를 만나게 돼서 자꾸 쓰는 게 싫어진다.



아들의 언스쿨링 일상을 써보겠다고 했던 매거진도 전혀 못쓰고 있다. 아이의 이야기를 쓰다 보면 전부 내 잘못인 것만 같고, 부족하다는 말로는 부족하리만큼 형편없는 부모 사이에서 더 상처받고 있는 것은 아닌지 마음이 저릿저릿하다. 아이를 보면서 자꾸만 나의 어린 시절이 오버랩되고, 부모님에 대한 미움이 패키지처럼 따라붙는다. 아이를 통해 고스란히 드러나는 부모의 자질과 수많은 실수, 그 실수 때문에 상처받는 아이. 이런 내가 들키고 싶지 않은 마음이 글을 못쓰도록 나의 손가락에 주문이라도 걸었을까.



가족들은 내가 이런 글을 쓰는지 조차 모르니 마구마구 토해내 버려도 아무도 모를 텐데. 심지어 독자들은 지나온 내 인생에 아무 상관없는 분들이고, 다 알아버려도 어찌해 볼 도리가 없는 과거일 뿐인데. 부모님 이야기, 나의 가족 이야기만 쓰려고 하면 마음에 먹구름이 몰려온다.





오늘 밤도 써놓은 글들을 붙잡고 자기 검열에 들어간다. 내가  글에  우주의 우울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모습을 쳐다보는 일은 여간 고역이 아닐  없다. 아닌 척했지만 여기저기 눈에 띄지 않게 담아 놓은 원망의 감정들도 전부 가지치기해 버리고 싶다. 독자들은  무슨 죄인가. 이유 모를 우울과 원망의 글들을 읽어야 하니 말이다. 나를 쫓아다니는  지긋지긋한 감정들과 이제 그만 헤어지고 싶다. 싸악 걷어내어 버리고  살배기 아이처럼 맑은 영혼만을 담고 싶지만  속에 있는  내가 아닐 테지. 이것저것 지워낸  속에 과연 내가 있을까





쓰면 쓸수록 나라는 사람의 정체성을 모르겠다. 지금의 나와 내가 쓰고 있는 나는 같은 존재인가? 누구의 이야기를 쓰고 있는 것인가? 문득 지금의 나라는 존재가 낯설다. 낯선 것이 지금의 나인지 과거의 나인지도 분명치 않다. 과거를 기억하면서 현재의 존재를 의심하게 되었다는 건, 통째로 편집된 기억들 때문인가. 과거의 나를 지우고 싶은 욕망이 지금의 나를 낯선 존재로 만드는 것인가. 의도적으로 편집된 시간들을 소환하여 그 퍼즐을 맞춰 주면 비로소 지금의 나를 받아들이게 될까






목구멍에서 뭉근하게 치밀어 오는 자기 연민에게 말을 걸어본다. 오랫동안 “오려두기 “ 두었던 " 날들" 대해 쓴다면, 그것이 치유가   있겠느냐고. 벌거벗은 자신을 쓰는  작가라는데 그럴 용기 있느냐고. 계속  자신이 있느냐고.



그만 쓸까....

안 쓴다고 뭐라 할 사람 아무도 없잖아...

쓸수록 선명해지는 아픔이 있다는 건,

아직 치유할 때가 오지 않은 것 아닐까...



아무리 개그로 양념을 치고 긍정으로 버무려봐도 발가벗겨진  인생은 희극이   없다는  팩트다. 나는  아직까지도 이토록 나의 비극을 마주  용기가 없는 것인가.  혼자 편집해 버렸다고 사라질 시간들이 아니라는 것을 글을 쓰면서 더욱 선명하게 마주해야만 했다.



잠시 멈추는 게 나을까. 아닌 척 소소한 일상들을 쓴다면 그 우울이 내 것이 아니게 될까.


머리에 꽃을 꽂기 직전이다. 놓친 정신줄 붙잡으며 새벽에는 글을 쓰지 말아야겠다 다짐하지만 또 쓰고 있는 나를 보게 되겠지?

일기 같은 글을 쓰고 발행할까 말까 하다가 발행 버튼을 누르겠지?


그럼 그냥 써지는 대로 
써보는 걸로 ~











매거진의 이전글 공감 불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