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가미 시어머니는 되기 싫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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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은 나를 어려워하신다. 살갑게 굴지 않아서일까. 딸들 중에 당신들의 치부를 가장 많이 알고 있어서 일까. 경제적으로 심리적으로 일찍 철들고 일찍 독립해서 함께한 시간들이 많지 않아서일까. 나 또한 부모님에 대한 마음이 시어머님을 생각하는 마음보다 못하다. 어설프게 육아서적을 좀 읽어본 견해로 추측컨대,
어린 시절 부모님의 불화로 정서적으로 상당히 불안정했으며, 부모님과 함께 했던 행복한 기억이 1도 없는 것으로 봐서는 그 흔한 동네 뒷산 소풍도 간 적이 없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가족이 무엇인가를 함께 했던 기억이 이렇게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느냔 말이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 아버지는 우리들의 어린 시절 얘기를 해준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가령 "네가 돌잡이 때는 뭐를 잡았고, 네가 몇 살에 걸었으며, 초등학교 때는 어떤 아이였는지"를. 그도 그럴 것이. 집에 들어와 함께 한 시간이 없는데 딸들과의 기억이 남아있을 리가 없다. 그래도 술 한잔 하시면 꼭 하는 얘기가 있다. 너의 대학 등록금 대주느라 내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아느냐고. 8학기 중 두 번 장학금을 놓쳐 딱 두 번 부모님의 도움을 받았는데 그 얘기를 평~~~~ 생 하신다. 고정 레퍼토리다.
병약한 몸으로 네 딸을 홀로 키운 엄마의 삶은, 안 봐도 비디오, 안 들어도 오디오다. 요즘 말로 독박 육아로 애를 넷이나 키우면서 무슨 여유가 있었겠나. 혼자서 애들 넷을 데리고 삼시세끼 밥만 먹여도 정신줄이 왔다 갔다 했을 판에, 놀이공원이며 소풍이 가당키나 했을까. 어린 엄마의 삶이 애잔하면서도 우리가 온전한 가족으로 산 세월이 있었던가 싶어 마음 한구석이 늘 서늘하다. 아버지의 부재는 이제 엄마의 것만은 아니었다.
나는 한참 늦은 나이에 부모가 되었다. 내 부모의 모습을 닮지 않으려 필사적으로 노력했다. 마흔둘에 귀한 아들을 얻고, '유난스럽다' 손가락질당해도 좋을 만큼 끔찍이도 외동아들을 품에 끼고 살았다. 물질적인 부분은 물론이거니와 엄마사랑도 듬뿍 받아 모난 구석 없고 결핍 없는 아이로 키우고 싶어 안달을 했다. 해외여행, 국내 여행할 것 없이 많은 것을 보여주고 많은 경험을 하게 해 주면서 먼 훗날 아들과 나눌 이야기들을 차곡차곡 쌓아갔다.
하여, 너무 구김살 없고, 너무 눈치 보지 않는 그야말로 해맑은 아이로 커 가고 있다. 이러다 뇌까지 맑아져 아무 생각 없는 아이로 크는 건 아닌지 심히 걱정이 될 정도로.
부모님 사랑 드음뿍 받은 막내아들로 자란 남편은 이런 나를 이해하면서도, 아들을 물고 빨고 애지중지하는 나를 못마땅해하며 때때로 아들에게 질투를 했다.
"아들 키워봐야 다 ~~~ 소용없다~~. 늙어서 당신 옆에 있을 사람은 나야 나. 적당히 해라"
"당신 그러다 올가미 시어머니 되는 거 아냐?"
"여자 친구 생겨봐라, 당신 쳐다나 보나. 그때 가서 우울증 앓지 말고 나한테나 잘해"
맞는 말만 골라하니 더 화가 난다. 누가 그걸 모르나. 입 밖으로 튀어나오는 육두문자를 꾹꾹 다시 집어넣고 잘근잘근 씹어 삼킨다.
'콱! 그냥! 그래서 너님은 아들한테 관심도 없는 거니'
워낙 아이를 이뻐할 줄도 모르고 놀아주는 것도 싫어해서 그저 아버지의 자리에 있어주는 것만으로 감사해야 했다. 사실 감사보다는 수시로 이혼을 부르는 행태를 자행했기에, 때때로 '내가 싱글맘인가?' 혹은 '싱글맘이 낫겠어!' 하는 생각이 들만큼 아이를 혼. 자. 키우는 느낌이다. 그럴 때마다 '이런 팔자도 유전이 되나' 싶어 온 세상이 삐딱하게 보였다. 아빠의 사랑을 못 받는 아들이 안쓰러웠고, 그래서 더더욱 아빠의 몫까지 사랑해 주려고 매사에 아들이 우선순위였다.
자식 그렇게 키우는 거 아니라며 수군거리거나 말거나 '받아본 사람이 베풀 줄도 안다는' 개똥철학을 신념이라 우겨댔다. 사이 나쁜 부모 때문에 일찍 철드는 아이로 만들지 않으려고 내 속이 다 썩어 문드러져도 아이 앞에서는 부부싸움도 안 한다. 뜨겁게 사랑하는 부부의 모습은 아니어도 적어도 아버지가 집에 돌아오는 밤을 무서워하는 아이로 만들고 싶지 않았다. 내가 겪은 모든 불행이 내 아이에게만큼은 비껴가기를 온 우주의 기운을 모아 간절히 바랬다. 내 아들만큼은 얼굴에 그늘지지 않게, 그저 철없이, 그저 해맑게 크기를 바랐다.
나는 아직도 아들이랑 오랜 시간 떨어져 있으면 보고 싶고, 궁금하고 빨리 만나고 싶고 그렇다. 유치원에서 아이가 캠핑을 가거나 어쩔 수 없이 아이를 놓고 지방에 일을 보러 가야 하거나 하면 분리 불안증이 생긴다. 시간마다 전화를 해대고 밥은 먹었는지 이모네서 지내는 건 괜찮은 건지, 엄마는 안 보고 싶은 건지. 똥 마려운 강아지 마냥 일에 집중을 못한다. 오히려 아들은 왜 자꾸 전화하냐는 듯 귀찮아하는데 말이다. 아들 없이 잠드는 밤이면 침대가 너무 썰렁해서 자꾸 보일러 온도만 더 높인다. 너무 허전하고 그립다. 뭐 그런 그리움이라는 것이 만난 지 10분 만에 깨지는 게 현실이기는 하지만.
잠자리 독립을 해야 하는 시기가 훌쩍 지났음에도 아들은 아직 혼자 잘 마음이 전혀 없다. 5살 때부터 내년에는 형아가 되니 혼자 자야 한다고 매년 훈련을 시켰는데 여전히 소용이 없다. 아이 방도 준비되어 있고, 입으로는 "그만 떨어져 자야 한다" 계속 말은 하면서도 아이도 나도 마음의 준비가 아직 안되었다. 한 시간에 한 번씩 잔소리를 해대고, 제발 좀 빨리 커라 커라 커라 하면서도 하루라도 떨어져 있으면 분리불안이 찾아오는 건,
아들이 아닌 나다.
싸우지를 말던가, 그리워를 말던가.
오늘도 이 정신병적 육아맘의 의식은 안드로메다를 왔다 갔다 하며 하루가 가고 있다.
이러다 진짜 나, 올가미 되는 건 아니겠지???
집착이 아닌 사랑이라 우겨본다. 헤헤.